기사최종편집일 2024-05-1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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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이 '베테랑'으로 진짜 얻고 싶은 것(인터뷰)

기사입력 2015.08.20 06:45 / 기사수정 2015.08.20 06:34



[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베테랑'이란 말은 평소 류승완 감독이 좋아하는 단어다. '베테랑'의 사전적 뜻은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 류 감독 역시 어떤 일이든 그 분야에서 도를 터득한 전문가들에 대한 존경심을 마음속에 갖고 있다.

영국 소설가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베테랑'을 읽은 기억도 있다. 심지어 그의 영화 '부당거래'(2010) OST에도 '베테랑'이라는 곡이 3번 트랙에 자리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극 속 형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이 단어만큼 잘 맞아떨어지는 단어가 없었단다. 그렇게 영화는 '베테랑'이라는 제목과 함께 세상에 나왔다.

이처럼 '베테랑'이란 말 속에는 류 감독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깔려 있다.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재밌게 할 수 있었던 것들을 모두 녹여낸 작품. '베테랑'은 개봉 후 줄곧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은 물론, 18일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이제는 천만 관객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다.

류 감독을 만난 때는 '베테랑' 개봉을 5일 앞둔 시간이었다. "시사회에서 만난 관객 분들이 좋은 평을 해주셨지만, 아직 일반 관객 분들을 만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긴장된다"며 떨리는 마음을 드러내던, 그와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정말 통쾌한 영화였다.

"'베테랑'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가치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권선징악이라는 주제가 너무나 흔하고 익숙하고 당연해서 그것에 대한 저항으로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라고 표현하는 게 오히려 새로웠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 우리는 현실이 이렇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영화에서도 그런 식으로 묘사가 많으니 현실도 힘들고 영화도 힘든 거다. 그렇게 모두가 다 지쳐 있다가 '그래도 이게 맞는 거 아냐?'라고 했을 때의 그 느낌, 우리가 변화구를 바라볼 때의 신기함도 있지만 직구를 볼 때의 그 시원함이 있을 것이다. 기교를 빼고 순수하게 직구를 확 던져서 그게 '빵'하고 스트라이크가 됐을 때의 쾌감이랄까? 아마 그래서 통쾌함을 얻으시는 것 같다."

-반응이 뜨겁다. 관객들은 ''부당거래'의 15세 판이 아니냐'는 말도 한다.

"이 캐스팅 구도를 보고 ''부당거래'의 스핀오프다'라는 설도 돌았었다. 그런데 '부당거래'와 이 영화는 동전의 양면 같은 느낌이 좀 있다. 일단 '15세 관람가'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주효하게 작용하는데, 영화의 본 사건을 보면 노동문제나 경제권력 시스템이 작동하는 그런 묘사들, 그리고 형사가 어떤 범죄를 수사할 때 사법시스템을 움직이는 방식들. 그런 것들이 어렵게 풀자면 정말 무거운 건데, '부당거래'같은 방식으로는 제가 한 번 해봤으니 뭔가 다음 세대 사람들이 봐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고 싶었다. 스스로도 이제는 우리가 응원하는 대상이 승리하는 얘기를 좀 보고 싶었고. 뒤집히지 않을 것 같은 판인데 '잘 싸우면 우리도 이길 수 있다. 언제까지 지고 살 거냐' 이런 제 생각을 '동전의 양면'이라고 표현한 거다. '부당거래'가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는 가족이나 승진에 대한 갈망 같은 작은 유혹에 굴복하면서 생기는 것을 다뤘다면, '베테랑'은 거기에 저항하고 부딪히고 싸웠을 때 이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를 만든 것이라서 출발선상은 같지만, 전혀 다른 출발지점에서 전혀 다른 목표지점으로 도달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과 대사들이 정말 많았다.

"이 영화가 갖는 쾌감의 수위가 이렇게 올라온 것은 보편적 감수성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저는 영웅 형사를 그리고 싶지 않았다.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서민'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지. 아마 서도철(황정민 분)은 직업이 형사가 아니라 아주 작은 노점을 하는 사람이었어도 자기 노점 주변에서 행패 부리는 불량배들을 보면 싸웠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선 조태오(유아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면서 재벌3세를 만날 일은 없다고 해도 조태오나 최상무(유해진)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학교나 회사에서도 많이 보지 않나. 그러니까 그것을 유쾌하고 경쾌하게 풀면서, 그 안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상식적인 정의가 구현되기 때문에, 그 모습에서 응원을 많이 해주시는 듯하다."

-주인공 조태오가 극 속에서는 다소 시간이 흐른 후에 등장한다. 서도철의 이야기가 좀 더 그려져야 했기 때문인가.

"이 영화가 갖는 진짜 이야기는 대단히 무겁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그 무게감에 관객들이 짓눌리는 건 원하지 않았다. 일종의 워밍업이랄까? 조금 명쾌한 방식으로 관객이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이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마지막까지 도달하길 바랐다. 그래서 농담처럼 시작을 하고 아주 즐겁게, 상대방의 농담에 호의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서 이 배우들이 하는 행동에 관객이 충분히 호감을 갖고, 사건의 연결고리인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는 것이다. 기존에 잘 쓰지 않는 방식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후반부에 가면서는 우리가 응원하고 몰입해 있는 대상이 갖는 감정과 함께 가지 않나. 현재까지의 반응을 보면 그것이 관객 분들과 교감하는 데 있어서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사법정리가 이뤄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제가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사법정리가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뤄지는 정의가 사적인 복수에 의한 사적 정의가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의 공의에 합당한 복수, 공적으로 공복을 입은 사람들이 해내는 것 말이다. 현실에서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상식 바깥의 일이 벌어지니 그런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치가 위험할 정도의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거기에 대한 대리만족이 아닐까."

-마지막에 에필로그가 있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원래 뒤에는 광수대 형사들이 사건을 처리하고 나서 판결이 났지만, 판결은 이들의 삶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이 사람들이 주부도박단을 털러 가는 얘기가 있었다.(웃음) 그런데 이 극 중의 주요 인물들은 광수대 형사들이지만 왠지 이 영화의 마지막은 배기사(정웅인)로 끝나야 할 것 같더라. 배기사가 살아남는 것 말이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를 보고 통쾌함을 얻는 우리 스스로가 힘을 얻는, '우리 이렇게 저항해도 죽지 않는구나'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 영화 속의 최대의 피해자였던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 그래서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스스로 아주 작은 희망을 보면서 개운할 수 있게. 그래서 지금의 방식을 선택했다."

-서도철과 조태오의 대립도 중요한 포인트지만, 배기사의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극 속 인물 중 일반적인 많은 관객 분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분이 배기사 아닐까. 저는 배기사가 굉장히 용기 있고, 정당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배기사가 본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펼치는 장면을 보면 시위하는 사람들이 소장을 상대로 시위하는 게 아니라, 사무직 여직원에게 '죽여버린다'며 큰 소리를 치지 않나. 하지만 문제의 본질이 그 사람이 아닌 것을 알기에, 배기사는 거기에서 빠져 있다. 자기가 싸워야 할 정확한 대상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하는 게 아니라 뺨 맞고 서 있는 거다. 그리고 그 대상을 찾아가서 그 사람을 마주보고, 그 사람에게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해 정당하게 항의한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게, 배기사가 욕도 안하고, 비폭력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을 보니 자신의 뺨을 때린 사람 뒤에 또 다른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도 자기 자식 앞에서 떳떳한 아버지로 존재하려 비폭력으로 대응한다. 극 중 인물들이 스트레스가 막 쌓여서 다 엉뚱한 데 화풀이를 하고 있는데, 배기사만은 그러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삶의 의지를 꺾지 않고 깨어나지 않나. 전 그걸 굉장히 중요하게 봤다."



-조태오의 파티 현장을 덮친 경찰이 허공에 총을 쏘는데, 그 총소리에 사람들이 더욱 신나게 반응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제가 약간 엉뚱하게 구사되는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이다.(웃음) 실제 미국에서 일본 문화를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시사회를 보고 나서 "그 장면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건 미국 애들도 정말 즐길만한 유머다"라고 하시더라. 사실 찍을 때는 이건 내 취향이니까, 그냥 낄낄대고 웃을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폭소가 터지는 것을 보면서 '이게 웃긴 거야?' 오히려 당황했다.(웃음) 그런 게 몇 장면이 있는데, 아마 의외성에서 오는 재미가 아니었나 싶다."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촬영에 협조해 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부산항은 항구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일터이니까, 우리가 영화 촬영을 하는 게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다 감수해주시고 지원해주셔서 찍을 수 있었다. 경찰이 전소장(정만식)을 쫓는 장면은 서울 가리봉동에서 찍었는데 실제 동네 주민들이 사는 곳 아닌가. 배우들은 옥상 뛰어다니고, 또 촬영한다고 하면 장비에 사람들에 난리가 난다. 그래도 다 지원해주셔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특히 명동 장면은 그 뒤로 가면 또 주택가가 있는데 주택가 시민 분들, 또 도로에서 통행하시던 분들이 다 협조를 해주셔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영화가 지금 한국에서 나오고 있는 큰 규모의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영화 제작비보다도 겸손한 규모고, 할리우드 주류 액션영화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데 그것에 필적할만한 감정적인 흥분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은 우리 현실세계 안에서 땀으로 찍어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진심이 느껴진다.

"정말 땀으로 일궈낸 겸손한 결과인 것 같다.(웃음) 어쨌든 자국 영화가 할리우드와 상대를 해 볼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몇 개 안 된다. 일본만 해도 잘 안 되고 있고, 중국은 급성장하는 경제와 국가 정책 때문에 가능한 거고. 프랑스와 우리나라, 인도 같은 몇 개국 제외하고는 할리우드 영화에 제압을 당한 것 아닌가. 뭐 나조차도 할리우드 영화 보는 게 재밌으니까.(웃음) 문화라는 것이 다양할수록, 또 선택이 넓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나. 그런 측면에서 우리 한국영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사람이 자신의 불편함을 조금씩 감수하고 격려해줬기 때문에 관객이 아니면 불가능했다고 본다. 사실 철없을 때는 '만드는 사람이 잘 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정말 '관객 분들과 같이 만들어 나가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베를린'(2013)을 찍을 때는 우울한 마음으로 힘들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편해 보인다.

"그건 같이 만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나를 만들어 준 게 크다. 정말 감사하고 있다.(웃음)"

-영화가 '암살', '미션임파서블5'와 함께 자주 언급된다.

"제가 순수한 관객이면 올 여름이 정말 신날 것 같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작품들의 서로 다른 재미를 즐길 수 있지 않나. 전 영화라는 것은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을 한다는 표현도 불편하다. 우리가 한식을 좋아한다고 매일 그것만 먹을 수는 없는 것처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선택하는 것, 그게 사는 재미라고 본다. 올 여름에 나온 영화들이 이렇게 서로 다른 개성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는 관객 분들이 정말 즐거워할 수 있는 여름이 될 것 같아서 좋은 것 같다."

-흥행 기대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흥행에 대한 것은 사실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저는 항상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항감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따지자면 제 솔직한 심정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베테랑'을 봤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건 제 욕심 아닌가. 제가 감독이기 이전에 관객으로서, 저 스스로가 온전한 하나의 관객이고 싶지, 몇 백 만의 하나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한 명 한 명의 관객이 다 소중한 거다. 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이 정말 즐거움을 느끼고 삶의 에너지를 얻었으면 좋겠다."

-다른 꿈이 있다면.

"이런 생각은 있다. 제가 노인이 되서 죽기 직전에 어떤 인터뷰를 보는데 이 사람이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한 말단 경찰관인 거다. 그리고 이 사람이 토막 인터뷰에서 자기가 어린 시절에 '베테랑'이라는 영화 속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보고 경찰의 꿈을 꾸고 이렇게 경찰이 됐다고 말하는 거지. 제가 어렸을 때 성룡 영화를 보고 꿈을 키워 영화감독이 된 것처럼, 죽기 직전에 그런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삶을 산 영화감독으로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그건, 몇 천 만의 관객 숫자보다 중요한 것이지 않겠나."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엑스포츠뉴스 김한준 기자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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