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당시 관객은 60만 명에 머물렀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한국 영화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코미디에 가깝다"며 극찬했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숨은 명작'으로 다시 거론된다.
최근 영화 '와일드 씽'으로 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손재곤 감독의 대표작 '이층의 악당'은 흥행과 작품성이 엇갈린 대표적인 한국 영화로 남았다.
2010년 11월 개봉한 '이층의 악당'은 전국 60만5224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성적이었다.
이 영화는 '달콤, 살벌한 연인'(2006), '해치지않아'(2020)를 연출한 손재곤 감독의 작품이다. 손 감독은 최근 코미디 영화 '와일드 씽'으로 6년 만에 신작을 선보이며 다시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개봉 당시 최광희 평론가는 "각본, 연출, 연기의 절묘한 삼박자"라고 평가했고, 백승찬 평론가는 "한국 영화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코미디 영화에 가깝다"고 극찬했다. 이동진 평론가 역시 "잔재미로 빼곡하다"는 한 줄 평을 남겼다.
영화 '이층의 악당' 시사회에 참여한 김혜수, 한석규
영화는 단순한 범죄극이 아니다.
20억 원 상당의 문화재를 찾기 위해 홀로 사는 모녀의 집 2층 세입자로 잠입한 사기꾼 창인(한석규)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울증을 앓는 연주(김혜수)와 학교에서 상처받은 딸 성아의 삶이 중심에 놓인다.
보물을 둘러싼 긴장감 속에서도 인물들의 상처와 관계를 블랙코미디 특유의 유머로 풀어낸다.
지금 다시 봐도 인상적인 배우들의 연기
평소 바른 이미지가 강했던 한석규는 욕설도 서슴지 않는 능청스러운 사기꾼 창인으로 파격 변신했다. 반면 김혜수는 화려하고 당당한 기존 이미지를 벗고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주부 연주를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술 없이는 잠들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색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영화 '이층의 악당' 연주 역의 김혜수
특히 김혜수에게도 '이층의 악당'은 배우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는 개봉 당시 "코미디 연기는 내 콤플렉스였다"고 털어놓으며 작품 선택에 대한 부담감을 솔직하게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층의 악당'을 통해 코미디 장르에 대한 편견을 많이 지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손재곤 감독이 배우들의 익숙한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얼굴을 끌어낸 대표적인 사례로도 꼽힌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이장우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현재의 후덕한 이미지가 자리 잡기 전, 한층 슬림한 모습으로 등장한 이장우를 확인할 수 있어 지금 다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긴다.
영화 '이층의 악당' 오순경 역의 이장우
흥행 부진에는 여러 요인이 거론된다.
개봉 직전 발생한 연평도 포격으로 극장가 분위기가 크게 위축됐고, 같은 시기 경쟁작들의 강세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였던 마케팅과 달리 실제 영화는 블랙코미디와 휴먼드라마가 결합된 독특한 색채를 지녔다는 점도 대중과의 간극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럼에도 작품은 시간이 지나며 다시 평가받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통해 "당시 놓치기 아까운 영화"라는 반응이 이어졌고, 씨네21이 선정한 '2010년대 기자들이 놓치기 싫었던 영화 5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화려한 흥행 기록은 남기지 못했지만, 독특한 대사와 블랙코미디, 배우들의 호연은 지금도 한국 영화 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된다.
영화 '이층의 악당' 스틸컷
'이층의 악당'은 결국 흥행 성적보다 시간이 더 높은 점수를 준 작품이다. 개봉 당시에는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 다시 보면 왜 평론가들이 먼저 이 영화를 주목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신작 '와일드 씽'으로 돌아온 손재곤 감독의 작품 세계를 되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다시 꺼내 볼 만한 영화다. '이층의 악당'은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