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윤준석 기자) 필리핀 마닐라의 한 공원, 열악한 테니스 코트에서 라켓을 잡았던 소녀가 이제 세계적인 무대에서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필리핀 여자 테니스 선수로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알렉산드라 이알라(21)의 이야기가 전세계에 퍼져 감동을 주고 있다.
이알라의 어린 시절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필리핀의 테니스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았고, 그가 처음 경험한 코트 역시 세계적인 선수들이 훈련하는 최첨단 시설과는 거리가 있었다. 균열이 생겨 여러 군데 금이 간 바닥과 구멍 난 네트, 제대로 된 펜스조차 없는 코트에서 라켓을 휘둘렀다.
그럼에도 이알라는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에 대한 꿈을 키웠다.
미국 'ESPN'은 최근 보도에서 이알라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다.
이알라는 4살 때 처음 라켓을 잡았고, 6살 무렵 오빠 미코를 따라 마닐라의 코트를 찾으며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접했다. 테니스를 좋아했던 할아버지 바비 마니에고는 가족들에게 직접 테니스를 가르쳤고, 이알라는 그의 오빠와 함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훈련은 어린 아이에게 결코 쉽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코트로 향했고, 훈련장에서 잡담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마니에고는 이알라에게 상당히 엄격한 훈련을 요구했다.
이알라는 당시를 떠올리며 할아버지에 대해 "그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며 "말대꾸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어린 이알라에게 테니스는 처음부터 마냥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강도 높은 훈련 속에서 재능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승부욕도 보였다. 7살 때 필리핀 주니어 대회에서 자신보다 세 살 많은 선수와 경기하기 전 긴장으로 구토했지만, 막상 코트에 들어가자 완전히 달라졌다. 코치 칼 산타마리아는 당시 이알라를 두고 "그녀는 달랐다"고 회상했다.
급기야 이알라는 13살이던 2018년 오빠와 함께 스페인으로 건너가 '라파엘 나달 아카데미'에서 훈련했다.
결정적인 성장 계기는 프랑스에서 열린 14세 이하 대회 '레 쁘띠 아스'였다. 당시 13세였던 이알라는 결승에서 훗날 윔블던 챔피언이 된 린다 노스코바(체코·세계 6위)를 꺾었고, 이를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알라는 이후 2020년 호주 오픈 주니어 복식 우승, 2022년 US 오픈 주니어 단식 우승을 차례로 거머쥐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뽐냈다.
사실 이알라는 성인 무대에서는 한동안 고전했다. 아시아에선 주니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도 성인 무대에서 사라지는 선수들이 굉장히 많다.
이알라는 달랐다. 특히 2025년 마이애미 오픈(WTA 1000)에서 커리어의 전환점을 맞았다. 케이티 볼리네츠(미국·현 78위), 옐레나 오스타펜코(라트비아·현 32위), 매디슨 키스(미국·현 24위)에 이어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현 8위)까지 꺾으며 준결승에 올랐고,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 갖춘 선수로 이름을 알린 것이다.
2026년에는 한 단계 더 도약했다. 그랜드슬램인 윔블던에서 필리핀 선수 최초로 16강 진출을 일궈냈고, 지난달 워싱턴 D.C.에서 열린 DC 오픈(WTA 500)에선 세계 3위 제시카 페굴라(미국)를 결승에서 2-1(4-6 6-4 6-0)으로 제압하며 첫 WTA 투어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US 오픈 앞두곤 세계랭킹 18위를 찍어 동남아 역대 최고 순위를 일궈냈다. US 오픈에선 3회전(32강)까지 진출한 뒤 이바 요비치(14위)와 3시간 3분의 명승부 끝에 1-2로 졌다. 패했지만 이알라의 경쟁력을 전세계가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US오픈 여정은 끝났지만 이알라의 도전은 계속된다.
그는 중국 오픈(WTA 1000) 출전을 포기하고 랭킹포인트 0점 손해와 WTA 벌금 징계 가능성을 감수하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필리핀 대표로 출전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알라의 결정에 1억1600만 인구의 필리핀이 열광하는 중이다. 이알라는 "필리핀 국가대표팀과 함께 뛰고 경쟁하는 것을 정말 사랑한다"고 강조했다.
마닐라의 열악한 코트에서 세계적인 선수를 꿈꾸던 소녀는 이제 필리핀의 어린 선수들이 바라보는 목표가 됐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낡은 코트에서 라켓을 휘두르던 꼬마 시절 이알라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사진=SNS / 연합뉴스
윤준석 기자 jupremebd@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