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잠실, 이우진 기자) "LG 선수들 생각하느라 긴장한 나머지 유니폼을 못 챙겼다."
갑작스럽게 대체 선발 중책을 맡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유니폼까지 깜빡했다. 등판이 무산된 외국인 투수 토마스 해치의 유니폼을 빌려 입고 마운드에 오른 SSG 랜더스 최민준은 공교롭게도 올 시즌 최고의 투구를 펼쳤다.
최민준은 1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2026 신한 SOL KBO리그 팀 간 11차전에 선발 등판해 5⅔이닝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SSG는 이날 김재환의 결승 투런 홈런 등을 앞세워 LG를 5-3으로 꺾었다. 올 시즌 잠실에서 치른 LG전 6경기를 모두 패했던 SSG는 마지막 잠실 3연전 첫판을 잡으면서 지긋지긋했던 전패 사슬도 끊어냈다.
당초 이날 SSG의 선발투수는 해치였다. 그러나 해치가 우측 어깨 불편감을 호소하면서 계획이 틀어졌고, 시즌 초반 선발로 뛰다 지난 7월부터 불펜으로 이동했던 최민준이 급하게 대체 선발로 낙점됐다.
등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해프닝까지 있었다. 최민준이 자신의 유니폼을 챙겨오지 못하면서 해치의 유니폼을 빌려 입고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최민준은 "LG 선수들 생각하느라 유니폼을 못 챙겼다"고 멋쩍게 웃은 뒤 "해치의 좋은 기운을 받아서 잘 던진 것 같고, (조)형우의 리드가 좋았다"고 돌아봤다.
시작은 불안했다. 1회말 선두 타자 박해민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후 완전히 다른 투구가 이어졌다. 6회말 1사에서 신민재에게 첫 안타를 내주기 전까지 LG 타선에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다.
최민준은 "볼넷을 주고 나면 원래 '큰일 났다'는 생각을 하는데 오늘은 '밸런스 괜찮은데?'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뒤에는 무난하게 넘어갔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포수 조형우와의 호흡도 빛났다. 최민준은 "올해 시작할 때부터 형우와 계속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타자를 상대할지, 내가 어떻게 타이밍을 빼앗으면서 상대할지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는데 오늘 그 부분이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만족스러웠던 구종은 직구였다. 구속 자체보다 공에 실린 힘과 타이밍 싸움에서 효과를 봤다는 설명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건 직구가 스피드가 나오지 않아도 힘이 잘 실리는 느낌이었다"며 "타자들이 변화구를 생각하는 타이밍에 직구를 많이 던졌고, 그걸로 잘 잡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정작 자신이 노히트 투구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최민준은 "마운드에 올라와서도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안 보고 있었다. '다음에는 어떻게 던져야 하지?'라는 생각만 하면서 올라갔다"며 "볼넷 하나는 보였다. 계속 그것만 보였고 안타는 못 봤다"고 웃었다.
6회말 신민재에게 우전 2루타를 허용하며 노히트 행진이 끝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민준은 "그냥 '안타 맞았네' 하고 다음 타자를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오히려 그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노히트보다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였다.
최민준은 "'제발 좀 막자', '6회 좀 막자', '퀄리티 스타트 좀 하자'고 생각했는데 또 못했다. 열받는다 그래서"라고 말하며 웃었다.
SSG가 2-0으로 앞선 6회말 1사에서 신민재에게 2루타를 맞은 뒤 송찬의에게 적시 2루타까지 허용하면서 이날 최민준의 투구는 끝났다.
뒤이어 등판한 김민이 오스틴에게 동점 적시타를 맞으면서 최민준의 책임 주자가 홈을 밟았고 승리투수 요건도 사라졌다.
최민준 역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승리 욕심은 당연히 났다. 6회에 올라가서는 그냥 한 타자만 생각하고 던졌는데 아쉽다"며 "올해 너무 아쉬운 일이 많았다. 잘 기억해놨다가 비시즌 때 잘 준비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날 5⅔이닝은 최민준의 올 시즌 한 경기 최다 이닝 투구였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그는 "그래도 하나 나아졌네"라며 웃은 뒤 "안 바꾸고 믿어주셔서 (감독님께) 감사했다. 이미 지나간 걸 어떡하겠나. 다음에는 또 그러지 않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승리도, 퀄리티 스타트도 아쉽게 손에 넣지 못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선발 기회에서 자신의 경쟁력만큼은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최민준은 "선발 기회만 오면 그때마다 욕심을 낼 거고, 준비하겠다"며 향후 선발 경쟁에 대한 의욕도 숨기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에서 기대 이상의 투구로 존재감을 보여준 최민준이 이날의 호투를 발판 삼아 차후 다시 한번 선발 마운드에 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잠실, 이우진 기자 / 엑스포츠뉴스DB
이우진 기자 wzyfooty@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