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나승우 기자)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2024년 홍명보 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대한축구협회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대한축구협회 역사상 검찰이나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는 순식간에 '초상집' 분위기가 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6일 오전 9시쯤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 위치한 대한축구협회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관련 자료 확보에 나섰다.
서울시 종로구 축구회관에도 경찰이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이 들이닥친 뒤 협회 직원들은 사무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직원들은 인사 부서를 통해 상황을 전달받은 뒤 "아무것도 손대지 말라"는 안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압수수색은 정오가 지나서까지 계속됐고, 직원들은 상당 시간 외부에서 대기해야 했다.
축구협회 내부에서도 충격이 컸다. 수십 년 동안 협회에서 근무한 관계자들조차 검·경이 협회 사무실을 직접 압수수색하는 장면은 처음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과거 축구협회 고위직을 지냈던 한 관계자는 "예전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정몽준 회장이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며 "이렇게 압수수색까지 당한 것은 초유의 일"이라고 말했다.
내부에서는 '언젠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압수수색은 어느 정도 예고된 수순이었다. 경찰은 하루 전인 지난 5일 홍명보 전 감독을 피의자 신분으로 비공개 소환해 직접 조사했다.
홍 전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 선임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당시 홍 전 감독 선임 과정을 주도했던 이임생 전 기술총괄이사도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협회 고위 관계자뿐 아니라 실무 직원 여러 명도 이미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앞서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등 수사 범위를 계속 넓혀왔는데, 결국 협회 사무실에 대한 강제수사까지 시작됐다.
2024년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결별한 뒤 새로운 국가대표팀 감독을 찾았다.
전력강화위원회 논의를 통해 여러 국내외 지도자가 후보로 올라왔고, 제10차 전력강화위원회에서는 홍명보 감독과 다비트 바그너 감독이 공동 1순위 후보로 평가됐던 것으로 문체부 감사에서 확인됐다.
당시 정해성 전 전력강화위원장에게 최종 후보를 결정할 권한이 위임됐고 홍 감독이 선택돼 정몽규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꼬였다. 정 전 회장이 외국인 후보를 추가로 만나보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고, 정해성 위원장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는 규정상 감독 추천 권한이 명확하지 않았던 이임생 당시 기술총괄이사가 실질적인 감독 선임 업무를 맡은 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 전 이사는 유럽으로 건너가 거스 포옛과 다비트 바그너 등 외국인 감독 후보들을 직접 면담했다.
그러나 귀국 후 전력강화위원들과 충분한 추가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홍명보 감독을 최종 후보로 결정했다는 것이 당시 논란의 핵심이었다.
이른바 '빵집 계약' 논란도 여기서 나왔다.
이 전 이사가 홍 감독의 자택 인근 빵집에서 수 시간 기다린 끝에 만나 감독직 수락을 설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국인 후보는 정식 면접을 하고 홍 감독은 사실상 설득해 데려온 것 아니냐"는 공정성 논란이 폭발했다.
이에 국회 현안질의가 열렸고 문화체육관광부 감사까지 이어졌으나 경찰 수사는 약 2년 동안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이 결정적인 불씨가 됐다.
체코와의 첫 경기 승리 후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연이어 패하며 1승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48개국 체제로 확대된 월드컵에서도 32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여론은 폭발했다.
홍 감독은 사임했고 정몽규 전 회장 역시 자리에서 물러났다.
두 사람은 다시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갔고, 월드컵 실패 이후 과거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제기됐던 의혹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찰 역시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해 수사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로 넘겼다.
금융범죄수사대는 서울경찰청에서도 주요 경제·권력형 사건을 담당하는 수사 부서로 홍 전 감독의 피의자 조사, 이임생 전 이사 조사에 이어 대한축구협회 압수수색까지 이어졌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 선임 과정에서 '홍명보 본인의 역할'이 무엇이었느냐다.
홍 전 감독은 그동안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 자신은 대한축구협회로부터 감독직을 제안받았고 이를 수락해 계약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홍 감독이 자신의 선임 과정에서 협회 관계자들과 사전에 교감했는지, 부당한 절차에 직접 관여했는지, 또는 특정한 행위를 통해 선임 과정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협회 내부에서는 이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당시부터 현재와 비슷한 상황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직원은 "조별리그 3차전에서 졌을 때 이런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놀랍지는 않다"고 전했다.
국회 청문회 이후 의원실들의 자료 제출 요구까지 계속되면서 업무 부담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직원은 "일은 많고 조직은 계속 어수선하다. 모두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대한축구협회를 따라다녔던 '무능', '불공정', '밀실 행정'이라는 비판이 이제는 경찰 수사를 받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사상 첫 압수수색이지만 터질 것이 터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