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2TV '조선로코-녹두전'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번 보면 오래 남는 숨은 명작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유'는 나만 알기 아쉬운 콘텐츠를 찾아 이 콘텐츠를 봐야 이유를 짚어드립니다. [편집자주]
(엑스포츠뉴스 이유림 기자) 드라마는 흥행을 예측하기 어렵다. 시청률은 작품의 성패를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지만, 높은 시청률이 곧 명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꾸준히 회자되는 작품들은 대체로 탄탄한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그 점에서 '조선로코-녹두전'은 한 번쯤 다시 꺼내 볼 만한 작품이다.
KBS 2TV '조선로코-녹두전(이하 '녹두전')'은 2019년 방송 당시 5~8%대의 시청률을 보였으나, 작품의 완성도에 비하면 더 큰 주목을 받아도 아쉽지 않은 드라마다.
'녹두전'은 미스터리한 과부촌에 여장을 하고 잠입한 전녹두(장동윤 분)와 기생이 되기 싫은 처자 동동주(김소현)의 이야기를 그린 조선판 로맨틱 코미디다. 여장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로맨스와 미스터리, 성장 서사가 촘촘하게 얽힌다.
이 작품을 추천하는 첫 번째 이유는 단연 장동윤과 김소현의 케미스트리다.
김소현은 기생이 되기를 거부하는 동동주를 연기하며 특유의 밝고 사랑스러운 매력은 물론, 복수심을 품은 인물의 무게감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해를 품은 달', '옥탑방 왕세자', '군주-가면의 주인' 등 여러 사극에서 활약했던 만큼 동양적인 분위기와 안정적인 연기력이 작품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KBS 2TV '조선로코-녹두전'
장동윤 역시 전녹두를 통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다.
자객들의 습격을 피해 진실을 찾고자 과부촌에 여장을 하고 숨어드는 설정은 자칫 희화화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캐릭터를 웃음거리로 소비하지 않고 진지하게 접근했다. 덕분에 여장은 단순한 장치가 아닌 인물의 생존 방식으로 설득력을 얻었다.
무엇보다 여장한 녹두와 털털한 동주의 조합은 기존 로맨틱 코미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신선한 매력을 완성했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과정은 보기만 해도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녹두전'의 진짜 강점은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 되는 관계성에 있다.
동주는 광해군(정준호)에 의해 역모죄로 집안이 몰살당한 뒤 홀로 살아남은 인물이다. 삶의 이유는 오직 복수뿐이었다. 반면 녹두는 자신을 노리는 자객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과부촌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동주를 만나 운명이 얽히기 시작한다.
각자의 비밀을 감춘 채 가까워진 두 사람은 수많은 위기를 함께 넘기며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하지만 사랑이 싹트는 순간, 더 큰 진실이 드러난다. 녹두가 광해군의 아들이자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할 뻔했던 왕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설정은 단순한 신분 반전을 넘어 두 사람의 감정을 극한으로 몰아붙인다.
동주는 평생 죽이고 싶었던 원수의 아들이 자신이 처음으로 살고 싶게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 앞에서 깊은 내적 갈등을 겪는다. 녹두 역시 평생 찾아 헤매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이 오히려 삶을 흔드는 진실이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KBS 2TV '조선로코-녹두전'
두 사람의 관계가 절정에 이르는 장면은 동주가 광해군을 향해 활을 겨누는 순간이다.
복수를 완성할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동주의 화살은 광해군이 아닌 그의 뒤에서 녹두를 노리는 자객에게 향한다. 복수보다 구원을 선택한 이 장면은 '녹두전'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여성 서사다. 최근에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익숙하지만, 2019년 방영된 사극에서 이러한 시도는 더욱 의미가 있다.
동주는 시대의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인물이다. 기생이 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복수 역시 누군가를 대신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완성하려 한다.
과부촌 여성들 역시 단순히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다. 각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직접 행동하며 서로를 구한다.
특히 행수는 "지켜야 할 건 절개가 아닌 목숨이니 고개를 빳빳이 드세요"라며 절망에 빠진 여성에게 손을 내민다. 여성도 스스로 선택하고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대목이다.

KBS 2TV '조선로코-녹두전'
무거운 이야기만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여장을 들키지 않기 위해 벌어지는 크고 작은 해프닝은 작품의 웃음을 책임지고, 녹두와 동주의 설레는 로맨스는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았다.
여기에 동주를 향한 순애보를 품고 있던 차율무(강태오)가 훗날 광해군에 대한 반정을 일으켜 인조가 되는 반전까지 더해지면서 극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긴장감을 높였다.
인물들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갈등 구도 역시 몰입감을 끌어올렸다.
결국 '조선로코-녹두전'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 사극이 아니다. 독특한 설정 위에 탄탄한 관계성과 설득력 있는 여성 서사, 웃음과 감동, 반전까지 촘촘하게 쌓아 올린 작품이다.
사진=KBS 2TV '조선로코-녹두전', (유)조선로코녹두전문화산업전문회사, 프로덕션H, 몬스터유니온
이유림 기자 reason17@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