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나승우 기자) "축구 선수가 경제에 대해 뭘 아느냐"
최근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를 비판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2026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준우승을 기념하겠다며 꺼내든 임시 공휴일과 대통령궁 초청 계획을 결국 모두 철회했다.
남미 매체 올레는 21일(한국시간) "밀레이 대통령은 선수단 사정으로 국가대표팀의 축하 행사는 없을 거라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밀레이 정부는 리오넬 메시와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단을 위한 6가지 환영 행사 방안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선수들이 축하 행사에 참여할 뜻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계획은 전면 무산됐다.
특히 선수단이 정부의 제안에 제대로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밀레이 대통령이 성급하게 정치적 행사를 추진했다가 공개적으로 체면을 구겼다는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번 월드컵 결승에서 스페인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우승을 눈앞에서 놓친 선수들의 충격은 컸다.
메시를 비롯한 선수들은 결승 패배 직후 눈물을 보였고, 일부는 귀국 행사에도 동행하지 않은 채 곧바로 개인 일정과 소속팀 복귀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밀레이 대통령은 대표팀의 귀국을 국가적인 행사로 만들려고 했다.
카사 로사다(대통령 궁)에 선수단을 초청하고, 팬들과 준우승을 축하할 수 있도록 임시 공휴일을 지정하는 방안까지 제안했다.
우승하지 못했더라도 두 대회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국민과 함께 기념하겠다는 취지였다.
밀레이 대통령은 대표팀이 결승에서 패한 뒤에도 "국가적인 축하 행사를 열 수 있다"며 공휴일 지정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정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정부와 부에노스아이레스시 당국까지 참여시켜 총 6가지 환영 행사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선수단이 불참 의사를 밝히면서 실행되지 못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현지 방송 LN+와의 인터뷰에서 "결승전에서 우승하지 못한 슬픔에 빠진 선수들이 축하 행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대표팀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토록 가까이 다가갔지만 결국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정말 힘든 일"이라며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상황"이라고 선수들의 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정부가 선수단의 의사를 확인하기도 전에 지나치게 성급하게 발표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아르헨티나 매체 엘데스타페에 따르면 대표팀은 애초 결과와 관계없이 카사 로사다를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
정부는 정치인과 관계자들이 참석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통령궁을 선수단에 내줄 수 있다는 제안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선수들은 이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선수들이 우리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옳다. 이것은 우리 쪽의 문제다. 우리가 왜 이 일에 뛰어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선수단의 공식 동의도 얻지 않은 채 대통령이 먼저 공휴일과 환영 행사를 공개했다가 아무것도 성사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밀레이 정부 내부에서도 분노와 책임 공방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본인은 물론, 밀레이의 여동생이자 핵심 측근인 카리나 밀레이와 주변 참모진까지 성급한 발표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 내에서는 이번 결정이 대통령의 이미지를 훼손한 최악의 정치적 판단이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결승에서 패한 선수들이 대규모 축하 행사에 나설 기분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고, 준우승을 이유로 국가 공휴일까지 선포하려 한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접근이었다는 것이다.
엘데스페타에 따르면 한 관계자는 "선수들은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밀레이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들이 정치와 얽히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카사 로사다를 비운다고 해도 메시가 그곳을 방문하는 순간 하나의 정치적 장면이 된다"면서 "선수들은 정치적이지 않은 척하는 행사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밀레이 대통령은 그동안 메시와 아르헨티나 축구계를 향해 날 선 발언을 내놓으며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다.
월드컵 결승 직전 메시가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을 두고 국민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언급하자 "축구 선수들이 경제를 얼마나 아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월드컵 결승전이 끝난 후에는 메시와 함께 사진을 찍고 대표팀의 성과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내년 정치 일정을 앞두고 밀레이 정부의 지지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국민적 인기가 압도적인 메시와 대표팀을 통해 분위기 반전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됐다.
여러 논란 속에 밀레이 대통령은 결국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선수들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꼬리를 내렸다.
한편, 아르헨티나 선수단 일부는 지난 20일 뉴욕을 출발해 에세이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는 아르헨티나 육군 기마척탄병 연대와 군악대가 선수단을 맞았다. 군악대는 2022 카타르 월드컵 당시 대표 응원가로 사랑받았던 '무차초스'를 연주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는 두 대의 버스를 타고 아르헨티나축구협회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일부 구간에서는 오픈톱 차량에 올라 도로변에 모인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대규모 공식 행사는 없었지만 수백 명의 팬이 아르헨티나 국기와 플래카드를 들고 대표팀을 기다렸다.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두 대회 연속 결승에 오른 선수들을 향해 감사와 지지를 보냈다.
사진=연합뉴스 / SNS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