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배구 여제' 김연경 "우승컵 들고 은퇴, 내가 원하던 모습…팬분들 있어 정상 지키고 싶었다" [삼산 현장]

(엑스포츠뉴스 인천, 최원영 기자) 기쁜 마음으로 코트를 떠날 수 있게 됐다.

흥국생명은 8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4-2025 V리그 포스트시즌 여자부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 마지막 5차전 정관장과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26-24 26-24 24-26 23-25 15-13)로 신승을 거뒀다.

인천서 개최된 1, 2차전에서 2승을 수확한 뒤 대전 원정을 떠나 3, 4차전을 모두 내줬다. 홈인 인천서 마지막 5차전을 치렀고, 5세트까지 혈투를 펼친 끝에 고대하던 우승 트로피를 품었다. 2018-2019시즌 이후 6년 만에 챔프전 우승 및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5번째 챔프전 우승이자 4번째 통합우승이다.

'배구 여제' 김연경은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에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챔프전 MVP까지 거머쥐었다. 기자단 투표 총 31표 중 31표를 전부 싹쓸이했다. 역대 2호 만장일치 MVP에 등극했다. 또한 2005-2006시즌, 2006-2007시즌, 2008-2009시즌에 이어 개인 4번째 챔프전 MVP를 수상했다. 

해외리그에서 맹활약한 뒤 2020-2021시즌 V리그로 돌아온 김연경은 2021-2022시즌 중국 상하이 유니폼을 입었다. 이어 2022-2023시즌과 2023-2024시즌 한국 무대에서 우승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라스트 댄스(Last Dance)'를 외친 올해 드디어, 극적으로 우승의 꿈을 이뤘다.



이번 5차전에서 김연경은 블로킹 7개, 서브 1개 포함 팀 내에서 가장 많은 34득점(공격성공률 42.62%)을 선보였다. 올해 챔프전 5경기 23세트서 총 133득점(공격성공률 46.31%)을 만들었다. 지난 4차전에선 역대 V리그 최초로 포스트시즌 통산 1000득점을 돌파하기도 했다.

우승 후 만난 김연경은 "실감 나지 않는다. 하루 뒤 또 경기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연경은 "이게 내가 원했던 마지막 모습이다. 많은 분들이 아직 잘하는데, 정상에 있는데 왜 은퇴하냐고 하신다"며 "하지만 난 이렇게 우승 트로피를 들고 은퇴하고 싶었다. 정상에서 떠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팬분들이 많이 와 응원해 주셔서 힘을 내 마지막에 이길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의 에너지를 받고 배구선수로서의 인생을 살았다"며 "그래서 계속해서 정상에 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을 더욱더 했던 것 같다. 항상 감사하다. 이제 후배들을 응원해 주셨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김연경과의 일문일답.

-울지 않더라.

▲눈물 살짝 흘렸다. 마지막 점수 때 살짝 나오긴 했는데 펑펑 울진 않았다. 다행이다.



-2차전 승리 후엔 우승하면 펑펑 울 것 같다고 했는데.

▲맞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3, 4차전 끝나고 나서 기자분들이 예전 이야기(2022-2023시즌 챔프전서 한국도로공사에 2승 후 3연패로 리버스 스윕 당한 것)를 많이 쓰셔서 속상하긴 했다. 이번 시리즈 1차전에 들어갈 때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3, 4차전을 그렇게 내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너무 큰 어려움이 왔다. 

나 역시 '은퇴를 앞두고 이런 역경이 또 내게 다가오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이겨내려 노력했다. 선수들끼리 화합하기 위해 이야기도 많이 했다. 선수단 너무 고생했다. 이렇게 멋진 마무리를 할 수 있게 해줘 선수들에게 너무 고맙다.

-이토록 힘든 시리즈가 있었나.

▲모르겠다. 오늘(8일)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한국 복귀 후 네 번의 챔프전을 치렀다. 정규리그 1위는 2번 했는데 챔프전에선 이제 별 한 개를 달았다. '별 하나 달기가 이렇게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최근에 많이 했다. 3, 4차전 종료 후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나는 항상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왜 내게 돌아오는 건 이것뿐이지'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5차전에 와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지막 경기라 생각했고 홈이기 때문에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것이라 봤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이런 시나리오는 짜지 못할 듯하다. 너무 좋다.

-양 팀 감독 모두 5세트 13-12서 김연경이 한 디그를 칭찬했다.

▲조금 전에 고희진 정관장 감독님과 인사했는데 '(고 감독 성대모사를 하며) 연경아 네 그 수비가 팀 우승시킨 거다'라고 하시더라.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정관장도 너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챔프전에서 많은 분들에게 좋은 배구를 보여드릴 수 있어 무척 좋았다. 정관장도 정말 최선을 다했다. 부상도 많았고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너무 잘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사실 어제(7일) 이런 생각을 했다. 왜 한 팀이 승리하면 다른 한 팀은 패해야 할까 싶었다. 그게 좀 그렇더라. 상대 팀도 고생 많이 했을 것이고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에 웃게 되니 아이러니한 것 같다. 정관장 선수들 너무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3, 4차전 패배 후 선수들이 불안해했을 수도 있는데.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님이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셨고 나와 주장 김수지 선수도 팀을 이끌어 가기 위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가끔 윽박지르기도 하고 소리 치기도 하지만, 또 '괜찮다, 괜찮다'하며 좋은 이야기도 했다.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줬다. 마지막 순간 이겨내 줘 고맙다. 인천으로 돌아오며 모두 다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다.

-경기에 입장한 뒤 테이핑을 다시 했다.

▲조금 걱정되긴 했다. 상대는 8경기째고 우린 5경기째이긴 했지만 내 나이(1988년생)가 상대보단 조금 많아 체력 면에서 밀리지 않을까 싶었다. 허벅지 쪽 근육과 관절, 무릎 등 여러 부분이 안 좋긴 했다. 이 시기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다 부상을 안고 뛴다. 신경 쓰지 않고 경기하려 했다. 좋은 결과가 있어 기쁘다.

-14-12에서 이고은이 챔피언십 포인트를 위해 공을 올려주더라. *김연경은 후위공격을 시도했지만 상대 박은진에게 블로킹 당했다.

▲사실 그 공이 투트쿠(아포짓 스파이커 투트쿠 부르주)에게 갈 줄 알았다. 리베로 도수빈 선수와 부딪히는 듯한 상황이 있어 내게 줄 수 없는 공이라 봤다. 뒤늦게 욕을 살짝 하면서(웃음)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 하며 공을 처리하려 했는데, 14-13이 됐다. 다들 '야 괜찮아'라고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웃음). 

투트쿠 선수가 끝까지 전위에 있었기 때문에 '네가 하나만 해주라'라고 했다. 이고은 선수가 공을 줬고 투트쿠 선수가 해결해 주면서 잘 마무리됐다. 

난 그보다 3세트 24-24에서 상대 메가(아포짓 스파이커 메가왓티 퍼티위)의 공격이 아웃됐는데, 내가 블로킹하다 네트터치를 해 실점한 게 너무 크게 느껴졌다. 평소엔 하지도 않던 네트터치 범실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은퇴하면 계속해서 악몽을 꿀 것 같았다. 다행히 마무리가 좋아 그런 악몽은 안 꿀 것 같다.



-만장일치 MVP에 대한 소감도 듣고 싶다.

▲아마 기자분들이 양심이 있으셔서 그런 것 아닐까. 4차전 지고 나서 재밌게 기사들을 많이 쓰셨더라. 2년 전 도로공사와의 챔프전 이야기를 쓰시고, 4차전 때 내가 엎드려 있는 사진과 함께 '김연경 또 무너지나'라는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웃음). 그런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으셨던 것 같다. 찔려서 내게 투표해 주시지 않았나 싶다(웃음). 은퇴하는 사람인데 좀 잘 써주시지.

은퇴할 때 챔프전에서 활약하고 통합우승을 달성하고 MVP까지 받을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있을까 싶긴 하다. 이렇게 마무리해 감사하고 만장일치로 뽑아주셔서 감사하다. 근데 조금 밉기도 하다(웃음).

-다 끝났다는 게 실감 나나.

▲경기장 안에 계속 있는데 꿈 같더라. 내일(9일)도 대전이나 인천에서 경기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많은 분들 앞에서 인터뷰하는 것도 꿈 같다. 집에 가서 혼자 있으면서 며칠 지나면 더욱더 실감 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이 참 기억에 많이 남을 듯하다.

-향후 계획을 정한 것이 있나.

▲김연경 재단이 있다. 올해 많은 활동들을 계획하고 있다. 쉬면서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무엇이 내가 원하는 방향일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자신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 있는지 궁금하다.

▲일단 오늘 회식을 제대로 하고 싶다. 금주를 오래 했다. 애주가라 술을 좋아하긴 하는데 시즌에 들어오면서 금주를 오래 했다. 선수들과 회식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재밌는 에피소드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냥 쉬고 싶다. 휴식하면서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여행도 다니고 싶다.

-다시 태어나도 배구를 하고 싶은가.

▲안 하고 싶다. 참 너무 힘든 것 같다. 이 직업이 힘들다는 생각을 이번에 또 하긴 했다. 물론 3차전에서 끝났다면 이런 생각을 안 했겠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구나' 했겠지만 말이다. 마지막까지 어렵게 경기했다. 지금까지 배구하면서 쉽지 않은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마지막까지 날 쉽게 보내주지 않는구나 싶었다. 결과는 무척 만족스럽다. 그냥 배구 다시 하는 걸로 하겠다. 쉽지 않겠지만.



-눈에 밟히는 후배가 있나.

▲사실 선수들이 많이 눈에 밟힌다. 오늘도 챔프전에 처음 들어온 선수들이 많았는데 다 준비가 돼 있었던 것 같다. 훈련할 때도 함께 한다.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 들어와 대견하게 다 자기 역할을 해줘 잊지 못할 것 같다. 오히려 이 선수들이 언니들을 리드하고, 본인들이 '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걸 보며 감동이었다. 선수들 올 시즌 정말 많이 성장했고 잘했다.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하지만 후계자로 뽑을 만한 선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국 배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면.

▲솔직히 한국 배구의 미래에 대해 항상 걱정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국제대회에서 안 좋은 성적을 냈고 침체기를 겪고 있다. 앞으로 가능성이 그렇게 크다고 볼 수는 없다. 세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 선수들을 잘 키워내야 가능할 것 같다. 잠재력 있는 선수들은 많다. 선수들을 어떻게 발굴하고 육성할지 많은 관계자분들과 지도자분들이 고민하셔야 한다. 나도 열심히 도우면서 앞으로 한국 배구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

-이번 시리즈에서 정관장 메가와 주포 맞대결을 펼쳤다. 

▲메가가 이렇게까지 잘하는 선수였나 싶더라. 물론 지난 시즌에도 잘했지만 올 시즌 더 발전한 메가로 돌아오면서 진짜 무서운 선수가 됐다. 우리나라 리그 자체의 수준도 많이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3, 4차전 대전에서 메가가 너무 좋은 활약을 했기 때문에 우리도 놀랐다. 많은 분들이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으론 한국 대표팀이 메가를 인도네시아 국가대표로 만나야 하지 않다. 상당히 무서운 선수가 될 것 같다.

-어떤 선수로 남고 싶나.

▲내가 원했던 마지막 모습 그대로 은퇴하게 되는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아직 잘하고 정상에 있는데 왜 은퇴하냐고 이야기하신다. 그런데 이게 내가 상상했던 은퇴의 모습이다. 우승컵을 들고 은퇴하는 것이다. 4시즌 동안 이뤄내지 못해 항상 안타까웠다. 별을 하나 달고 정상에서 은퇴하는 게 내가 원했던 그림이다.

*경기장에 놀러 온 대한항공 한선수가 인터뷰실에서 문을 열고 인터뷰 중인 김연경에게 인사하자 김연경은 "2위팀 한선수 선수네요"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대한항공은 올 시즌 챔프전 준우승을 기록했다.



-경기장에 가족들이 왔는데 한마디 전한다면.

▲우린 감동적인 가족이 아니다. 가족들은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렸다(웃음). 그냥 고생했다고 하더라. 하지만 가족이 없었다면 내가 여기에 있을 수도, 이 자리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막내딸이어서 언니들과 부모님께 챙김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덕분에 배구에만 집중해 이 자리에 왔다. 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다.

-김연경을 보며 꿈을 키워갈 배구 유망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요즘 어린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화려한 것들을 좋아하더라. 화려하다는 건 눈에 잘 보이는 것들인데 그런 걸 많이 하려고 한다. 그보다는 눈에 안 보이는 것들, 기본기를 잘 다지면 좋을 것 같다. 기본기는 해야 하는 시기가 있어 그 시기를 넘기면 어렵다. 때에 맞춰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 기본기 등에 집중했으면 한다.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승 후 팬들이 많이 울더라.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팬분들이 많이 우셨다. 오늘 너무 많이 와주셨고, 응원해 주셔서 힘을 내 마지막에 이길 수 있었다. 나와 같이 나이 들어가는 팬들도 계시고, 올림픽을 거치며 유입된 분들, 최근에 팬이 된 분들도 계신다. 많은 분들의 에너지를 받고 배구선수로서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정상에 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을 더욱더 했던 것 같다. 항상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제 은퇴하지만 끝까지 잘 봐주시고 후배들 많이 응원해 주시면 좋겠다.

-한국을 떠나기로 한 아본단자 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까.

▲선수들은 감독님에게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배구에 있어서 물음표가 없는 감독님이셨다. 많은 선수들이 본받으려 했다. 많은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게끔 만들어 주셨고 마무리까지 잘 됐기 때문에 정말 감사드린다. 사실 경기 전 선수단과 작별 인사를 나누긴 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팀과 계약을 안 하시는 걸로 알고 있다. 한국 배구에 좋은 영향을 주셔서 감사드린다.




사진=엑스포츠뉴스 인천, 김한준 기자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