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6-0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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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아는 창의적인 미드필더 이관우

기사입력 2006.05.13 07:34 / 기사수정 2006.05.13 07:34

손병하 기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6년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많은 축구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이관우(28. 대전 씨티즌) 선수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청소년 대표팀을 세계대회로 이끌었다.

당시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4골을 뽑아내며 맹활약한 양현정을 비롯해 박진섭 심재원 김남일 김도균 등이 포진했던 대표팀은, 숙적 일본을 4강에서 물리치고 중국과의 결승전에서도 승리하며 5전 전승을 기록해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자 청소년 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자연스럽게 이듬해 펼쳐질 세계대회로 이어졌고, 그 기대에 중심에는 최문식과 윤정환을 능가할 테크니션으로 손꼽혔던 이관우란 선수가 서있었다.

포기해야 했던 지난날, 하지만...

▲ 이관우 선수
ⓒ 대전 씨티즌
청소년 대표 시절 이관우는 포워드였다. 최전방에 포진한 원톱형 공격수라기보다는 조금 처진 돌파형 공격수였다. 공격수로서의 득점력은 물론이고 드리블과 패스 감각이 돋보였고, 무엇보다 경기의 흐름을 보는 눈이 무척이나 세련된 선수였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드리블과 패싱력이 좋은 선수들은 과거에도 많았다. 대표적인 테크니션으로 불리던 최문식 선수도 그랬고, 이후 윤정환이나 고종수도 패스라면 일가견이 있다. 헌데, 우리나라 선수 중에는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흐름을 돌려낼 만한 역량을 가진 선수가 쉽게 나타나지 않았었다. 과거 김병수(36. 포항 코치)가 보여주었던 그런 경기의 맥을 정확히 짚을 줄 아는 선수는 사실 찾기 힘들었다.

헌데, 이관우의 플레이는 그런 흐름을 읽는 탁월한 눈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드리블과 패스 그리고 슈팅은 그 정확도만큼이나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관우는 그런 드리블과 패스를 해야 할 타이밍을 아는 선수였고, 그런 타이밍을 적절하게 잡으며 경기 흐름을 만들어 나갔다. 한마디로 '축구를 알고 공을 차는 선수'였다.

그토록 유능한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관우는 세계 청소년선수권에서의 부진으로 팬들의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같은 조에 속했던 프랑스는 지금 세계 정상급 공격수로 성장한 앙리와 트레제게가 속해있었고, 브라질도 우승후보로 평가받던 강호여서 우리가 조별 예선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았었다.

하지만, 첫 경기였던 남아공전에서의 무승부와 브라질전에서의 대패(3-10)가 결국 거센 비난 여론을 불어왔고, 팀의 에이스였던 이관우 선수는 그런 비난의 집중포화를 맞고 말았다. 여기에 각종 부상에 시달리면서 이관우는 끝없이 추락해갔고, 시리우스란 멋스러운 별명과 더불어 유리 몸, 유리 왕자란 듣기 싫은 별명도 함께 생기고 말았다. 특히, 한양대 재학시설 당했던 교통사고는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를 만큼 큰 시련이었다.

이런 부상과 악몽 같은 과거들로 이관우는 한국 축구를 이끌 차세대 유망주에서 그저 그런 보통 선수로 전락해 갔고, 더군다나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체력을 대표팀 선발의 제1원칙으로 삼았던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면서 태극 마크의 꿈은 더 멀어져만 갔다.

고비 때마다 그의 발목을 붙잡았던 부상과 허약한 체력. 이로 인해 이관우는 '꿈'인 월드컵 무대를 번번이 포기해야 했고, 올 초 6주에 거쳐 진행되었던 대표팀 전지훈련에서도 빠지며 독일행이 멀어지는 듯이 보였다. 우리 나이로 이제 곧 서른을 바라보는 이관우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를 '월드컵의 꿈'은 이제 꿈으로만 간직해야 하는 것일까?

치열한 중앙, 과연 자리가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아직 기회는 있다. 현재 대표팀은 독일행 티켓을 거머쥔 선수들이 상당 부분 확정된 상태다. 하지만, 얼마 전 압신 고트비 대표팀 기술 분석관도 '90% 가까이 정해졌지만, 아직 나머지 10%는 결정되지 않았다'라고 밝히며 여전히 선수들에게 기회가 있음을 시사했다. 물론 대부분 조병국 심재원 같은 수비수들을 중점적으로 점검하며 대표팀의 아킬레스건인 수비력 강화를 위한 추가 선발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공격형 미드필더인 이관우에게도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관우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 현재 대표팀 내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지성과 올 시즌 성남의 무패가도를 이끌고 있는 김두현(24, 성남), 그리고 일취월장하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백지훈(21, 서울) 등 쟁쟁한 선수들이 주전을 노리며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박지성 시프트'가 생길 만큼 대표팀 전력의 핵으로 자리 잡은 박지성이 중앙 미드필더 자리를 맡을 가능성이 커 그 자리를 쉽게 넘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헌데 이관우가 정상적인 기량을 보이며 아드보카트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박지성 시프트를 굳이 실행할 필요가 없어진다.

현재 박지성을 중원으로 돌리자는 의견이 주를 이루는 것은 박지성이 중앙에서 더 좋은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이 아니라, 측면 윙어인 이천수의 부활과 현재 대표팀에 믿음직스러운 중앙 미드필더가 없다는 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헌데, 중앙에 박지성 못지않은 새로운 카드가 떠오른다면 박지성의 플레이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측면으로 이동이 대표팀에게 더 효과적이다.

▲ 2005 K-리그 올스타전에서 뛰고 있는 이관우 선수
ⓒ 남궁경상
세기와 경험이 부족한 김두현과 백지훈을 대신할만한 믿음직스러운 중앙 미드필더가 출현해 준다면, 측면에서의 움직임이 날로 발전하는 박지성을 윙어로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박지성이 상대 공격진에서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끊임없이 공간을 찾아 침투하는 그의 창의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상대 수비수의 허를 찌르는 움직임과 패스 연결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단계 성장한 박지성의 최대 강점이다.

헌데, 이런 박지성의 강점은 중앙 미드필드에서 활약할 때보다 측면 공격수로 활약할 때 더 많이 나온다. 한 경기에서 볼을 터치하는 횟수가 많은 중앙 미드필더의 경우 패스와 경기 흐름에 얽매여 있을 수밖에 없어, 창의적인 움직임을 기대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상대가 전력 차가 심하지 않은 팀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관우에게 독일은 마지막 월드컵이다.

이관우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역시 폭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정교하고 예측을 불허하는 감각적인 패싱력에 있다. 이런 이관우의 패싱력이 더 큰 빛을 보기 위해서는 그 패스와 짝을 이룰 효과적인 공간 침투가 있어야 한다.

좌측의 박주영 혹은 설기현이나, 우측의 박지성과 이천수의 움직임과 돌파가 능률적이 되기 위해서는 중원에서 갈라지는 패스의 질이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박주영과 박지성의 경우, 영리하고 변칙적인 플레이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움직임 많은 만큼 그들의 움직임을 살릴 패스는 꼭 필요하다.

박지성과 함께 중원 경쟁을 펼치고 있는 김두현과 백지훈은 적극적인 수비가담 능력과 체력 공격력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고루 인정받고 있기는 하지만, 플레이 메이커가 갖추어야 할 경기를 읽는 눈과 '다음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선택'이란 부분에서는 아직 아쉬움이 많다. 또, 이관우의 발탁으로 대표팀의 중원과 박지성의 활용 방안이 더 폭넓은 선택의 대상이 된다는 점도 이관우에게 느낄 수 있는 매력 중 하나다.

▲이관우 프로필

*생년월일 - 1978년 2월 25일
*신체사항 - 키 175cm, 체중 69kg
*프로데뷔 - 2001년 대전시티즌 입단
*포지션 - MF (미드필더)
*소속팀 - 대전 시티즌
*특기 - 드리블, 패스
*대표팀 경력
1997~1997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대표
1999~1999 시드니올림픽예선 대표
2003~2003 아시안컵예선 국가대표
2003~2003 동아시아축구대회 국가대표
*수상 경력
1995년 전국중고축구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상
2002년 푸마베스트 11 MF 부문 수상
2002년 험멜코리아-스포츠투데이 선정 올해의 선수상(재기상)
2003년 K리그 올스타 인기상 수상
사실 독일 월드컵을 두 달 남짓 남겨둔 현 시점에서 이관우의 발탁 여부는 그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관우의 대표팀 승선에 가장 큰 걸림돌이 체력임을 부인할 수 없고, 현대 축구에서 체력은 더 이상 충분요건이 아닌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90분을 쉼 없이 뛰어다니고도 경기 종료 후 호흡의 흐트러짐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인터뷰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은 어느덧 대표팀 승선의 기본 조건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관우의 기술적이고 전술적인 움직임이 그의 부족한 체력을 보완하고도 남는다면, 이관우의 기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관우, 지난 1997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앙리와 트레제게가 뛰었던 프랑스에 당했던 치욕을, 9년이 흐른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갚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손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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