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22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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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스님-설민석, 크고 화려한 포장이 오히려 독이 되다

기사입력 2021.01.02 14:52



“권위는 배신할 수 있다. 심지어 그 분야에 커리어가 있을지라도”

작년인 2020년에는 교양 예능의 단골손님인 두 사람의 권위가 무너졌다. 한 명은 혜민스님이고 나머지 한 명은 설민석 강사.

힐링이 메인인 방송의 단골손님이었던 혜민스님, 역사가 메인인 방송의 단골손님이었던 설민석 강사. 이 두 사람의 권위 훼손과 방송활동 중단은 방송 관계자들 입장에선 상당히 타격이 있을 만한 사건이다.



혜민스님은 tvN ‘온앤오프’에서 '남산 뷰' 자택을 공개한 뒤로 '풀(full)소유' 논란을 빚자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대중 선원으로 돌아가 부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하고 수행 기도 정진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스타 역사 강사 설민석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속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더불어 역사 왜곡 논란이 석사 논문에 대한 표절 의혹으로까지 번지자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논문을 작성함에 있어 연구를 게을리하고 다른 논문들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인용과 각주 표기를 소홀히 했음을 인정한다"라며 "책임을 통감해 출연 중인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다"라고 전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하자면, 이 두 사람은 방송국 입장에선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혜민스님은 청소년기를 국내에서 보낸 뒤 미국으로 넘어가 하버드대에서 비교종교학 석사, 프린스턴대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7년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햄프셔대에서 종교학 교수를 지냈다. 2000년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아 예비 승려가 됐고, 2008년 직지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하고 대한불교조계종의 정식 승려가 됐다.

대한민국 대표적인 에듀테이너인 설민석은 연세대 교육대학원을 통해 학사 전공과 다른 길을 선택, 한국사 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설민석 강사는 타고난 입담에 명쾌한 강의로 수강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던 것으로 매우 유명했던 인물이다.

하버드대 출신 스님에 엄청난 유명세를 가진 한국사 1타 강사. 방송국 입장에선 매력적이지 않을 리가 없다.

문제는 그 매력적인 인재를 편하게 기용하려다, 그리고 몇 번의 논란이 이미 있었음에도 큰 고민 없이 쓰려고 하다 사고가 터진 것.

사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긴 있다는 것.

‘방송 제작진들에게 과연 인물을 검증할 시간이 그렇게 많을까’, ‘검증을 위한 제반 여건이 그렇게 충분할까’ 생각해 보면 답은 YES 보단 NO에 더 가깝다. 방송사도 충분치 못한 인력, 낮은 보수, 엄청난 근무시간 등으로 유명한 곳이니까.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제작진이 쓸 수 있는 전략은 단순해진다.

‘재미와 커리어가 보증된 것처럼 보이는 유명한 사람을 (검증 절차 없이) 빨리 기용하자’

이런 면에서 혜민스님과 설민석 강사는 방송 제작진들이 원하는 인재상에 완벽히 부합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두 사람만큼 유명하진 않으니 쓰기 쉽지 않고, 이들보다 더 유명한 사람들은 교양 예능에서 쓸 만한 커리어가 별로 없다.

여러모로 사람을 구하는 곳 입장에선 매력적이고도 유니크한 포지션에 위치한 인재들이었던 셈.

사건이 터지기 전 시점 기준으로 봤을 때, 이들 만큼 유명세, 커리어, 예능적 재미를 모두 갖춘 ‘교양형 예능에 최적화된 인재’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기용했을 때 제작진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일은 ‘저 사람은 큰 사고 안 날 거야’, ‘알아서 자기관리 잘할 거야’라는 믿음을 갖는 정도다. 물론, 검증 제대로 못 한 건 결국 그들의 잘못이지만.

그 ‘알아서 잘해주기’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백선생’ 백종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제성과 전문가로서 인사이트(집밥, 요식업)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는데 오랜 방송활동 기간 동안 사고도 치지 않은 인물. 방송국 입장에선 그야말로 ‘신’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백종원의 사례와 혜민스님&설민석 사례는 여러 차이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포장의 차이’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백종원은 ‘마리텔’ 대흥행 이후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지만 요식업과 집밥이라는 자기 전공 분야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만약 백종원이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을 ‘요리의 신’, ‘셰프계의 신’으로 포장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그가 그리하려고 했다면 방송국에서도 충분히 그렇게 해줬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논란이 터지기 전 혜민스님과 설민석 강사는 어땠는가. 한 명은 ‘힐링의 아이콘’이었고, 한 명은 ‘역사의 신’이었다.

이들이 쓰려고 했거나, 혹은 누군가 쓰게 해준 이 왕관은 한 명의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운 왕관이다. 이런 왕관을 쓰면 얻는 것도 많지만, 얻는 것만큼 세상의 잣대도 한없이 높아진다.

사실 종교에 대한 지식을 잘 습득하는 것, 높은 정신적 수준을 갖추는 것, 깊이 있는 힐링 선사하는 것은 각자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셋 다 잘할 수도 있지만 셋 중 둘을 못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셋 다 못하는 것도 지극히 정상이다) 그리고 설령 셋 다 잘한다 하더라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 행보가 진실성 있게 보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한국사 1타 강사라는 타이틀 역시 ‘모든 역사에 만능이다’라는 사실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역사에 대해 잘 아는 것과 역사 문제를 학생들에게 알기 쉽게 알려주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역사학자와 역사 강사라는 직업이 분리돼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그들의 커리어가 보증하는 것은 종교학 공부 수준, 한국사 문제 풀이 능력 정도다. 기실 이 정도만 해도 엄청 대단한 것이고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능력, 경력, 포지션이다.

두 사람이 그냥 ‘종교학 전문가’, ‘스토리텔링 되는 한국사 문제 풀이 전문가’ 정도 포지션에 있었다면 이 정도로 일이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혜민스님의 ‘풀소유 논란’은 그가 방송 출연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사실 일어나지 않았을 논란이다. 방송 출연을 하더라도 종교학 전문가 중 1명 정도로 포지셔닝 중이었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

또한 스님으로서 면모보단 사업가로서 면모를 좀 더 강조하는 행보를 그간 보여줬다면 ‘풀소유’하더라도 ‘그래 사업가니까’하고 넘길 수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혜민스님의 경우엔 ‘내가 A라는 행동을 했을 때 타인이 B라는 반응을 할 것이다’라는 예측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논란을 피해 갈 수 있었다. 그의 ‘풀소유 논란’은 피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이슈가 아니었으며, 논란을 피하는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가 존재했다.

설민석 강사 역시 ‘역사의 신’으로 포장되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을 마주하진 않았을 것이다. 설령 그렇게 포장됐다 하더라도 주 전공인 한국사 관련 이슈에 대해서만 입을 열었다면 상황이 분명 달랐을 것이다. 한국사 강사가 주 전공이 아닌 분야를 잘 모르는 건 흠이라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혜민스님의 경우처럼, 그를 둘러싼 논란 역시도 피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냥 말만 안 했으면 됐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저자는 자신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고, 역사를 가르치는 강사는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다.

한편, ‘남산뷰’ 자택 공개 논란 끝에 모든 활동을 중단한 혜민스님은 정식 승려가 된 뒤 미국 뉴욕의 아파트를 구매한 것으로 의심되는 부동산 등기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설민석 강사가 나온 연세대 교육대학원은 설민석 석사논문 표절 문제에 관해 심의하고 향후 처분을 내리기 위한 대학원위원회 소집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연세대 관계자는 “본인이 이미 논문 표절을 인정한 상황이어서 위원회에서 조사와 검토를 거쳐 석사학위 취소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 밝혔다.

tvX 이정범 기자 leejb@xportsnews.com / 사진 = tvX ‘온앤오프’-‘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설민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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