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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축구의 2가지 키워드 '카카'와 '호나우지뉴'

기사입력 2009.05.08 02:47 / 기사수정 2009.05.08 02:47

박문수 기자



 [엑스포츠뉴스=박문수]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브라질은 딜레마에 빠진다. 기존의 3R체제의 성공으로 인해 2002년 일본에서(16강 토너먼트 이후 경기는 일본에서 치렀다.) 순항했지만, 히바우두의 AC밀란(이하 밀란) 이적 이후 극심한 부진으로 인해 대표팀과 이별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들은 ‘카카’라는 또 다른 보석을 발굴하게 된다. 밀란에 있어서 카카는 정말 위대한 존재다. 레버쿠젠 행이 유력했던 이 21살의 청년은 루이 코스타라는 거물이 있는 밀란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약관의 카카는 입단 첫 시즌 만에 세리에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이라는 성과물로 세리에 MVP와 최우수 외국인 선수를 차지하게 된다. 2006~2007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당당히 득점왕과 MVP를 차지하며, 2007년 발롱도흐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게 된다.
 
한편, 그의 등장은 대표팀 내에서 또 다른 전쟁을 야기 시켰다. 앞서 언급한 3R체제에서 호나우지뉴도 2002년 월드컵 이후 카카보다 더욱 빛나는 브라질의 보석으로 성장하게 된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베컴을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샤)로 보내는 대신 그를 원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의 갈락티코 정책의 개입으로 인해 베컴은 레알을 호나우지뉴는 바르사를 택했으며, 맨유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크리스티아누 호날였다. 결과적으로, 레알은 베컴으로 인한 막대한 수입과 2006~2007시즌 스페인 라 리가 우승을 달성했으며, 맨유의 경우 지난 2007~200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바르사는 호나우지뉴의 맹활약으로 제2의 드림팀을 구축하게 되었고, 2005~2006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와 라 리가 2연패를 이루게 된다. ‘외계인’이란 별명과 함께 2004년 이후 약 2년 여간 그는 10년 전 호나우두가 그랬듯이 환상적인 퍼포먼스로 축구 팬들에게 탄성을 자아내는 플레이어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이 둘을 보유하고 있는 브라질은 적절한 활용 방안을 내세우지 못했다. 스콜라리의 퇴임 이후, 부임한 파헤이라의 경우 이 둘을 다양한 방법으로 피치에 나설 수 있게 여러 가지 전술을 모색했었지만 실패했다. 그렇다면, 브라질의 진정한 에이스는 누구에게 어울릴까?

 
 1.2002 월드컵
 
스콜라리 체제의 브라질은 3-4-3이라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기존의 브라질이 추구하던 4백을 버린 채, 3백으로 루시우- 호케 주니오르- 에드미우손을 두며, 카푸와 카를로스에게 공격적인 윙백의 역할을 맡겼다. 2명의 미드필더로는 질베르투 실바와 클레베르손(주니뉴 파울리스타)를 두며, 3톱으로 히바우두-호나우지뉴-호나우두를 두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호나우지뉴이다. 당시 22살이었던 이 어린 선수는 선배인 호나우두, 히바우두와 함께 브라질 공격을 지휘해 나갔으며, 대표팀의 5번째 월드컵 우승을 선사한다. 특히,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는 상대 골키퍼 시먼을 당황하게 하는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또한, 이 경기에서 호나우지뉴는 전반 막판 현란한 드리블로 잉글랜드 미드필더진과 수비진을 교란시키며 히바우두에게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카카 역시 2002월드컵에 출전했다. 수원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예선 3차전에서 후반 중반 히바우두와 교체된 그는 상파울루에서 주목받던 유망주답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호나우지뉴가 주연급 조연이라면 그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데코를 제치고 대표팀에 선발된 카카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2002 월드컵이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은 카카에게는 한 발짝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됐고, 호나우지뉴에게는 주연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남긴 대회였다.

 
 2. 밀란으로 이적한 카카와 바르샤로 이적한 호나우지뉴
 
2003년 브라질의 두 스타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레버쿠젠이 유력하던 카카는 레오나르도의 도움으로 밀란에 입단한다. 호나우지뉴는 리켈메에 의해 망가진 바르샤의 재건 일원으로 팀에 합류하게 된다.

호나우지뉴의 2003~2004시즌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시즌이었다. 리그 초반 바르사는 전 시즌 6위라는 최악의 상황을 답습하듯이 부진했다. 그러나 겨울 이적시장에서 영입된 다비즈에 의해 팀은 변화했다. 유벤투스와의 계약기간 마지막 시즌에 누캄프에 입성한 다비즈는 사비로부터 수비부담을 덜어줬고, 호나우지뉴에게는 자유를 부여했다.

이로써, 바르사가 지닌 불안감을 없애주며, 팀의 상승세를 도모하며 시즌을 2위로 마치게 큰 기여를 한다. 당시 바르사의 중심은 호나우지뉴였다. 하지만, 다비즈의 등장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며, 무한한 발전에 힘을 실어줬다. 첫 시즌 호나우지뉴의 성적은 라포르타 회장의 공헌대로 성공적이었다.

카카의 2003~2004시즌은 최고의 시즌이었다. 밀란의 통산 17번째 스쿠데토 획득에 큰 기여를 했으며, 데뷔 첫 해 세리아를 평정한 최고의 메디아푼다가 되었다. 그의 활약에 대해 이탈리아 언론 가제타는 “산시로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최고의 활약을 펼친 유일무이한 선수이다.”라고 표현하였다. 심지어 밀란 팬들은 그를 일컬어 “리베라의 재림”이라고 표현하였다. 게다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인 루이코스타를 벤치로 밀어내며 그는 명실상부 브라질을 대표하는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호나우지뉴는 이후 카카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선사하게 된다. 2004년 에투와 지울리(메시)가 가세한 바르샤는 4-3-3 전술에 특화되었다. 3톱의 왼쪽에 위치한 호나우지뉴는 상대 진영을 지속적으로 괴롭혔으며, 그의 화려한 발재간과 패싱력은 모든 팬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낳았다.

게다가, 그는 크루이프 체제의 바르사 드림팀을 이은 제2의 드림팀의 주축 멤버로서, 바르사의 2번째 빅이어를 선사하게 된다. 특히, 2005~2006시즌 엘 클라시코 더비에서는 레알의 홈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기립 박수를 받는 기이한 장면을 연출하며, 브라질이 아닌 전 세계를 대표하는 축구계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카카 역시 만만치 않았다. 비록, 호나우지뉴라는 그림자에 가려져 브라질 대표팀의 에이스 자리는 차지할 수 없었지만, 그 역시 훌륭한 선수였다. 소속팀 밀란의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밀란의 제3의 전성기에서 큰 기여를 하였다.

 3.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둘

 카카는 디에구 호비뉴와 함께 2003년 골드컵 준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다. 올림픽 대표팀 주축으로 나선 대회지만, 브라질은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미래에 대한 기대를 드높였다. 동시에 파헤이라(2003~2006년 브라질 대표팀 감독)는 카카와 호나우지뉴란 두 명의 스타로 인해,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다.

 초창기 브라질은 4-3-2-1을 택했다. 4백을 두면서 3명이 서는 미드필드에 에드미우손- 제 호베르투- 주니뉴를 두며 카카와 호나우지뉴에게 호나우두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당시 브라질은 호나우지뉴에게 좀 더 공격적인 역할을 맡기며, 순항했다.

두 선수는 비교적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곧 다가올 독일 월드컵에서의 우승 가능성을 드높였다. 하지만, 브라질의 마르지 않는 인재는 새로운 황제 아드리아누를 낳게 된다. 아드리아누의 등장은 대표팀의 변화를 초래하는데, 그 전술은 4-2-2-2이다. 이 전술의 경우, 4백을 두면서 에메르손과 제호베르투에게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하며 카카와 호나우지뉴를 활용하며, 전방에 아드리아누와 호나우두를 배치하게 된다. 이 전술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 대답하자면 답은 'NO'다.

 2005 컨페더레이션스 컵(이하 컨페드컵)에서 브라질은 우승을 차지하며 성공적인 월드컵을 기대하게 한다. 파헤이라 체제의 4-2-2-2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지만, 포워드에 호비뉴를 추가하고 호나우두를 빼게 된다. 동적인 움직임을 선사하는 호비뉴는 카카, 호나우지뉴와 잘 융합하며, 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4-1로 대파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이러한 결과를 가능하게 한 것은 아드리아누의 놀라운 폭발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후 남미예선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브라질은 2006년 월드컵까지 이 전술을 고수하게 된다.

2006년은 브라질에 있어서 최악의 한해로 기억된다. 월드컵을 앞둔 그들에게 카카의 등부상과 아드리아누의 부친상 이후 극심한 슬럼프, 호나우두의 부상 이후 미회복이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설상가상, 소속팀 바르셀로나에서 혹사당한(?) 호나우지뉴 역시 극심한 부진을 겪게 된다. 예선 첫 경기, 크로아티아 전에서는 카카의 중거리 슛으로 승리를 거뒀고, 16강까지 전승행진이었지만, 8강전 프랑스 전에서는 반코트 게임을 내주며 패배하게 된다. 왼쪽을 선호하는 카카와 호나우지뉴는 자주 동선이 겹쳤으며, 호나우두는 전성기에 비해 몸이 많이 무거워진 상태였다.

결국, 그동안 성공리에 진행된 카카와 호나우지뉴의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었고, 이 문제는 다음 사령탑인 둥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렇다면, 이 두 선수의 2006년 월드컵 이후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4. 몰락하는 호나우지뉴와 변화하는 카카
 
2006년 밀란은 세브첸코를 첼시로 보내게 된다. 팀의 구심점인 세브첸코의 이적은 카카에게 커다란 변화를 야기했다. 기존의 트레콸티스타(투톱 밑의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이었던 카카는 메디아푼다(보다 공격적인 성향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변신하게 된다.
 
밀란의 공격은 마치 카카가 없으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카카의 변신은 밀란에 7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선사하게 된다. 인자기(질라르디노) 밑에 카카를 위치시킨 밀란은 그의 빠른 발과 정교한 킥 능력을 앞세워 유럽을 제패하며 강호로서 입지를 다시금 굳히는 듯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이다. 카카는 매번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선호하는 포지션은 트레콸티스타라고 했다. 메디아푼다의 역할을 맡은 카카는 2007년 발롱드흐와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지내지만, 혹사 논란에 봉착하게 된다. 질라르디노의 예상치 못한 부진과 노장 인자기의 분전 아닌 분전 속에서 밀란은 앞서 지적했듯이 카카에게 모든 공격을 맡겼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카카로 하여금 피지컬에 이상이 생기며, 유리 몸 논란에 휩싸이며 자주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게다가,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기도 힘들만큼 그의 몸은 지치게 되었다.
 
바르사의 호나우지뉴는 2006년 이후 몰락한 스타가 되었다. 기대를 모은 독일에서의 활약이 미미하였으며, 어느 정도 예견되었듯이 극심한 부진에 빠지게 된다. 바르사에서는 점점 에이스의 자리를 후배 메시에게 내주게 되었으며, 킥력만 훌륭한 선수로 변하였다.

설상가상, 팀은 무관에 그쳤고, 대표팀과 소속팀 동료 에드미우손은 그를 검은 양으로 비유하며 팀에 해가 되는 선수로 묘사하였다. 급격한 체중 증가와 활동량 부족으로 인해 팀의 미드필더진의 혼란을 야기했으며, 수비적인 문제까지 떠안게 되었다.

결국, 호나우지뉴는 5년간 정들었던 누캄프를 떠나, 카카의 소속팀 밀란으로 이적을 하게 되었다. 브라질 대표팀의 숙제인 카카와 호나우지뉴의 공존을 고스란히 안첼로티가 떠맡게 된 것이다.

현재 호나우지뉴는 밀란에서 계륵의 존재이다. 전반기 준수한 활약을 펼친 그였지만, 후반기 들어 베컴의 영입으로 인해 자리를 잃게 되었고, 어느덧 밀란 공격에 해가 되는 선수로 전락하였다. 그의 킥력과 뛰어난 테크닉은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그의 활동량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제기된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카카와의 동선 겹침은 매우 큰 골칫거리다. 냉정히 말하면, 밀란 전술 특성상 그의 자리는 현재 없다. 게다가, 카카가 홀로 출장한 경기에서의 승률이 두 선수가 같이 출장한 경기보다 승률이 훨씬 높다. 밀란의 리그 초반 2연패 역시 카카의 부재가 컸다.
 
즉, 둘의 호흡은 1+1=2가 아닌 1+1=1의 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5. 결단이 필요한 둥가와 안첼로티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카는 브라질과 밀란의 4-3-1-2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소화할 수 있으며, 그는 에이스로서 충분하다. 클래식한 플레이메이커가 아닌 그는 뛰어난 활동력을 자랑하며, 적절한 수비가담이 이뤄지는 만능 형 선수이다. 게다가, 밀란의 경우 그가 지닌 포워드적 성향을 활용해 2006~2007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결과물을 얻어낸 전례가 있다.

상대편 골망을 뒤흔드는 능력과 골문 앞에서의 침착성은 그의 능력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정확하고 세밀한 슈팅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낸다. 또한, 그는 그 어느 트레콸티스타도 선사하지 못한 괴력의 스피드를 자랑하고 있다. 게다가, 상대 수비수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그는 쉽게 쓰러지지 않는 훌륭한 피지컬도 지니고 있다. 이런 그의 능력은 속공과 역습 상황에서 매우 유용하며, 위협적이다.
 
반면 호나우지뉴는 어떠한가? 그의 현 상태는 추진력을 잃은 로켓과 같다. 그를 뒷받침 해주는 미드필드 진이 엄청난 활동량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이상 그의 가치는 전혀 없다. 게다가, 브라질 대표팀과 달리 밀란에서 패스를 공급하는 역할은 피를로가 할 수 있다. 후반기 이후 더욱 심각해진 호나우지뉴의 부진 문제는 밀란에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활동량의 최고봉 가투소의 아웃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현 상황이다.

그가 전성기 시절 보여준 파괴력을 선사한다면, 앞서 언급한 카카와 호나우지뉴의 동시 기용은 가능할 수 있다. 포워드적 성향이 더욱 짙어진 카카를 전방에 세우면서 그 뒤를 받쳐주는 활동량 좋은 호나우지뉴의 존재는 모든 감독들과 축구팬들의 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그것은 0에 수렴할 정도로 불가능하다.
 
현재 브라질 대표팀은 카카와 호비뉴를 축으로 한 공격을 선보이고 있다. 호비뉴 역시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대표팀에서의 모습은 절정의 기량이다. 그런 그를 뒷받침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카카이다. 실제로, 브라질 대표팀은 카카와 호비뉴 체제의 경기력이 호나우지뉴와 호비뉴보다 더욱 훌륭했으며, 결과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낳고 있다. (또한, 브라질 대표팀이 극심하게 부진했던 2007과 2008년에는 카카가 부상으로 없었다.)
 
아마도, 우리는 호나우지뉴에게서 더 이상 브라질 대표팀의 10번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카카가 부상으로 인해 결장할 경우가 아니라면, 그가 경기에 출장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난 2월에 열린 밀란 더비에서 잠시나마 보여준 적극적인 호나우지뉴가 존재 한다면, 카카의 브라질(밀란)이 아닌 호나우지뉴의 브라질(밀란)이란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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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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