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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s 인터뷰] 황동혁 감독 "'남한산성', 10년의 신뢰 모두 올인한 작품"

기사입력 2017.10.06 08:00 / 기사수정 2017.10.06 00:24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올해가 벌써 석 달밖에 남지 않았네요. 오로지 '남한산성' 감독 황동혁으로의 삶만 3년 가까이 있었죠. 영화를 만드는 전체 과정이 힘드니까, 살도 많이 빠졌어요. 영화 찍기 전보다 4~5kg 정도 빠진 것 같은데, 현장에서 오히려 더 건강했던 것 같네요.(웃음)"

몇 마디의 말만으로도 영화 '남한산성'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메가폰을 쥐었던 황동혁 감독의 고민과 고충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촬영 현장이 담긴 사진을 보며 '그 때가 오히려 건강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후반 작업과 개봉을 앞두고 바로 이어진 홍보 활동까지 쉴 틈 없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10월 3일 개봉한 '남한산성'은 2014년 1월 865만 관객을 모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화 '수상한 그녀' 이후 3년 반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이전의 '도가니'(2011)와 데뷔작 '마더'(2007)까지, 10년이라는 시간동안 4편의 작품을 해 오며 어느새 대중의 높은 기대를 받는 감독 중 한 명이 됐다.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렸던 가장 치열한 47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 '남한산성'은 3일 만에 162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꾸준한 호평 속에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남한산성'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동혁 감독은 "아무래도 (전에) 흥행을 했으니까 (이번에도) 당연히 해야 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 저 같은 경우는 작품을 할 때마다 장르가 달라졌잖아요. '이 사람이 이걸 또 어떻게 만들었나' 그런 의혹의 눈초리들, 그런 기대가 많은 것 같아서 부담감도 좀 있죠"라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 '남한산성'을 바탕으로 해 당시 시대를 담담하게 그려낸 정통사극으로 주목받았다. '수상한 그녀' 이후 황동혁 감독의 복귀작, 여기에 배우 이병헌과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 등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으로도 이미 충무로에서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황동혁의 정통사극이라는 말은 아직 좀 어색해요. ''수상한 그녀' 감독이 갑자기 무슨?' 이런 느낌일까요.(웃음) 정통사극이 많이 없었나 봐요. 정통사극이라는 게 유난히 강조되는 것 같은데, 제가 만들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런 장르의 영화가 오랜만이어서 그런 것 같고요. 처음부터 계획을 가지고 미술, 의상, 세트 촬영과 조명까지 다 차갑고 아주 서늘한, 진경산수화와 수묵담채와 같은 화면을 만들기 위해서 스태프들과 상의를 하고 시작했죠. 결과물로는 충분히 잘 구현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촬영감독님이 마지막에 디지털 색보정 단계에서 굉장히 많은 공을 들여 주셔서 색감도 잘 나온 것 같고요."

영화는 총 11장으로 구성돼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황동혁 감독은 "그 시퀀스 안에서 집중해서 봐야 될 것을 상징적으로 제목을 달아서, 무엇을 중심적으로 봐야 하는 가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정통사극이, 특히 젊은 세대들인 10대와 20대에게는 어렵게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요. 또 소설에서도 소단락으로 구성이 돼 있으니까, 원작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또 원작도 생각이 날 것이고요"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139분의 러닝타임동안 묵직하게 달려간다. 그 어떤 기교 없이 긴 시간을 이끌어나가는 과정을 만드는 것은 매 순간 영화의 수장에게 주어진 계속된 선택의 문제이기도 했다.

"정말 담백하면서도 세고, 아주 직선적이면서도 담담한 그런 영화를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차가우면서도 안에 뜨거운 것이 끓어오르는, 잔 기교 같은 것도 많이 쓰고 싶지 않았고요. 그래서 슬로우 모션도 하나도 없어요. 아주 사실적인 묘사들을 해보고 싶었으니까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처럼 최근 미국영화 몇 군데에서 느꼈던 서늘한 영화들을 해보고 싶어서 그런 기대감을 갖고 시작했고요.

어려운 점이었다면 저희가 100% 전부 야외에서 찍다 보니까 날씨 같은 경우는 하늘에서 도와줘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북문전투의 경우에는 벌판에서 싸우는 장면을 5일 찍었는데, 그렇게 날씨를 기다렸다 맞추는 일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다행히 촬영 날짜는 거의 다 맞췄고요. 줄일 데를 줄이고 투자할 데를 더 투자해서 조절을 했었죠. 이 영화가 비록 본격 액션 전쟁영화는 아니지만, 4번 나오는 전투 신을 정말 웰메이드로 찍어보고 싶어서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황동혁 감독은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 속에서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분)과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가 만들 때는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제가 소설을 읽었을 때 어느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지 않았거든요. 계속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이들의 말이 너무나 자신의 철학과 신념 하에서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작을 읽으면서도 누구 한 명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웠던, 그 때 느낀 딜레마를 똑같이 영화에도 전달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느 누구의 입장도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영화 안에서 묘사하고 싶었죠."


특정 인물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 아닌, 등장인물들에게 균형을 맞추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영화의 몰입 면에서 봤을 때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에 황동혁 감독은 "흔한 방식의 영화는 아니죠. 기본 구조 자체가 악인을 놓고 선인과 악인의 대결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또 주인공을 놓고 공통의 과제나 목표를 추구해서 해결하는 내러티브는 아니니까요.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남한산성'은 병자호란과 남한산성이라는 공간에 대한 기록이라고 봤어요. 제 나름대로의 정밀묘사이자 동양화라고 생각했죠. 풍경이 펼쳐지고 또 그것을 자연스럽게 던져주면서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태도를 취하게 하고 싶었던, 접근 방식 자체가 기존 영화와는 달랐습니다"라고 설명을 이었다.

이어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재미를 찾아야겠다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경험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도 경험의 영화 체험의 영화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은 것인데, 이 영화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안에 들어가서 내행전, 외행전 안에서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고 병사들이 겪는 추위와 고통, 전쟁의 아픔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쪽에서 재미를 찾으신다면 극적인 감정을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제가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피상적으로 알던 남한산성이나 병자호란, 또 삼전도비처럼 부끄럽기도 했지만 알아가면서 느끼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그런 부분들이 관객들이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이 영화만의 독특한 재미가 아닐까 싶죠"라고 덧붙였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대립하는 신에서는 유독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역시 황동혁 감독의 생각을 대변해준다.

황동혁 감독은 "원래는 아예 음악을 안 쓰려고 했어요. 온전히 말과 공기에 집중하게 하려고요. 그러다가 '조금 불친절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들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마음은 한 마음이었다는 정서를 심어주기 위해서, 그들의 말을 절대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아주 들릴 듯 말 듯 하게 살짝 깔아줬죠. 그들의 목소리와 연기로 이미 음악 이상의 감정을 다 끌어올려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이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전했다.

영화 속 캐릭터에 대한 생각도 함께 이야기했다. "최명길을 더욱 고독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 황동혁 감독은 "김상헌은 서날쇠(고수)같은 평민 대장장이와 교류를 하는 장면들이 많이 있어서 그를 통해 변화하고 부끄러움도 느끼는 모습들이 있죠. 그런데 최명길은 일반 사람들과 그런 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더욱 고독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그렇다면 억지로 무엇을 만들기보다는, 친구는 유일하게 어렸을 때 동문수학했던 이시백(박희순)이고, 강한 목소리에 둘러싸여서 혼자 고뇌하고 고민하는 그런 고독한 늑대 같은 인물로 그리고 싶었죠. 누군가가 '주화파는 명길 밖에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일부러 그렇게 한 측면이 있어요. 절대 고독 같은 느낌이요"라고 밝혔다.

영화를 본 이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영의정 김류(송영창)가 만드는 웃음기 어린 장면들 역시 황동혁 감독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위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든 지점이었다. 또 기품 있고 속이 깊지만 말수가 적은 서날쇠 옆에 함께 하는, 소설 속에는 없는 인물 칠복(이다윗)을 만들어 직언을 날리며 통쾌한 지점을 만든 것 역시 다소 부족해 보일 수 있는 민초들의 단면을 채워 넣기 위한 노력이었다.

'남한산성'은 한 귀로 듣고 흘릴 수 없는, 등장인물들이 전하는 촌철살인의 대사들로도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대사들도 있지만, 황동혁 감독이 직접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대사도 있다.

황동혁 감독은 김상헌의 대사 중 "진정 백성을 위한 새로운 삶의 길이란 낡은 모든 것들이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라는 말을 꼽으며 "저의 철학이 담긴, 공을 들여 쓴 대사입니다. 저만의 상상 속에서 나온 말인데, 결국 김상헌이라는 사람이 마지막에 조선이 이렇게 무너져가는 순간에는 이런 혁명적인 생각을 한 번 하지 않을까 싶었죠"라고 웃었다.

'남한산성'은 그동안 영화와 함께 한 황동혁 감독의 시간 속에서 지금까지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올인'한 작품으로 남게 됐다. 황동혁 감독은 "제가 4번째 영화를 만들었는데, 10년 만에 제가 앞선 세 작품으로 쌓아왔던 모든 신뢰를 이 영화에 모두 다 올인한, 풀 배팅을 한 것이죠. 이 영화를 이 정도의 배우들과 이 정도 규모의 예산으로 만들 수 있는 건 감독으로서는 축복인 것 같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힘듦과 기쁨의 공존'이라고 작품을 만드는 매 순간을 정의한 황동혁 감독은 "새 작품을 만들기까지 고민하는 시간은 늘 즐겁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해요. 제가 뭔가를 선택하고 창작해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복이지만 그 선택의 답안지, 선택지들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건 고통이고요. 또 내놓은 결과물이 결국 대중에게 평가받는 직업이기 때문에 평가를 기다리는 순간까지는 다시 고통이죠. 좋은 평가를 받으면 행복이 있는 것이고요"라고 다시 한 번 미소 지으며 '남한산성'에 대한 관객들의 따뜻한 시선을 당부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김한준 기자, CJ엔터테인먼트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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