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7.12 21:35 / 기사수정 2008.07.12 21:35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지난 두 번의 연재를 통해 K-리그 드래프트 제도가 무엇이고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드래프트가 가진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 살펴봤다. 그렇다면, 드래프트는 청산해야 될 악법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해야 할 필요악인가. 만약 드래프트를 폐지하고 자유계약제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것들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이것이 이 연재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다.
드래프트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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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연재에서 지적했듯이, 드래프트는 내외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현행 드래프트제도 하에서는 19세 미만 선수가 클럽에 조기에 입단해 육성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로구단이 직접 유망주를 키우는 것에 선뜻 나설 수가 없다. 지정 고교에서 4명을 우선지명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외의 다른 고교에서 선수를 영입하고 싶을 경우 그 선수에게 공들여도 드래프트에 의해 뺏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령 제한은 어린 선수가 조기에 프로에 진출해 기량을 발전시키고 일찍부터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을 막는다는 문제가 있다.
드래프트 제도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구단 재정의 부담을 덜어내지도 못했다. 성공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는 신인선수에게 무조건 3년의 계약 기간을 보장해야 하고, 선수의 가치와 능력과 상관없이 각 라운드별로 획일적인 연봉이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두각을 나타내는, 즉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는 유망주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현재의 드래프트제도 하에서도 분명히 ‘뒷돈’이 존재하고 있음을 예측 가능케 한다.
FIFA 역시 선수 이적 규정을 통해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는 상황에서, 선수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드래프트 제도는 최근의 추세와도 배치된다. 또한, 플레이 스타일이 가장 잘 맞는 선수와 팀의 만남을 방해하여 리그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에서 드래프트 제도의 폐지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단순히 몇 가지 보완책을 가지고 해결하려 하기엔 드래프트제도 자체가 가진 모순점도 너무 많다. 그렇다면, 단순히 드래프트 제도를 폐지하고 자유계약제를 재도입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제도만 바꿔봤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일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 : 유소년 시스템 도입
드래프트를 폐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행 드래프트가 유망주 육성의 연속성을 막는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드래프트제를 자유선발제로 바꾼다고 유망주 육성이 활발해지진 않는다. 드래프트제와 자유선발제에 대한 논의가 오갈 때 가장 쉽게 범하는 오류가 둘의 대립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자유계약제냐 드래프트냐가 아니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K-리그의 신인 선수 수급 방식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중, 고등학교의 학원축구를 거쳐 프로팀에 입단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그 대신에 자유계약제에 기본을 둔 체계적이고 올바른 유소년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구단이 직접 선수를 육성하고 공급하는 것이다. 근본부터의 개혁을 통한 유소년 시스템의 구축 없이는 신인 선수 선발은 그 어떤 방식을 채택하더라도 끊임없이 잡음이 나올 것이며, K-리그의 발전을 논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염불이라고까지 과감하게 말할 수 있다.
근본부터의 개혁: 엘리트 스포츠-생활 체육의 분리
프로축구연맹은 2006년에 드래프트제를 재도입하면서 구단에 클럽시스템 확충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각 프로축구단은 12세 이하(U-12), 15세 이하(U-15), 18세 이하(U-18) 팀을 만들어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유소년 시스템에 불과하다. U-18 팀만 하더라도 현재 K-리그 팀 중 U-18 팀을 직접 운영하는 팀은 없다. 모두 지역 고교 하나를 지정해 위탁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에서 탈피해 유소년 육성이 클럽 시스템 속으로 밀착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프로구단이 전문성과 영속성을 가지고 선수를 육성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 유소년 클럽 시스템과 학원 축구를 분명하게 구분 짓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축구의 장기적 안목에서도 중요하다. 유소년 클럽 시스템이 엘리트 스포츠, 즉 직업 축구선수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 되고 학원축구는 생활체육을 담당한다. 전자는 프로리그인 1,2부에 선수를 수급하고 후자는 세미프로, 혹은 아마추어인 3, 4부와 그 이하 하부리그에 선수를 공급하는 것이다.
유소년 클럽 시스템의 도입은 프로축구 선수로 성장할 선수들에게 좀 더 체계적이고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학원축구가 아마추어로 환원된다면 많은 일반 학생들에게도 정식 경기를 통해 축구를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은 학교졸업 이후에도 ‘조기축구’가 아닌 체계적인 생활체육 클럽으로서의 아마추어 팀을 구성하고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추어 축구의 활성화는 한국의 풀뿌리 축구 발전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다. 세미프로는 물론이고 아마추어 축구 리그가 형성되어 전체적인 축구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연예인이 소속사를 가지고 활동을 하게 되는 것처럼 소속팀을 갖고 뛸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유럽이나 남미처럼 반드시 선수가 학교를 중퇴하지 않더라도, 학교는 다니고 방과 후에는 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는 방식이 이뤄져야 한다. 최근 연예인들은 어린 나이부터 이렇게 육성되는 반면 유소년 축구는 여전히 학원축구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 클럽의 유소년 시스템은 프로를 육성하는 제도로서, 학원 스포츠는 아마추어를 위한 공간으로서 분리돼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대학 축구도 주요 대회 수상 경력 등을 통해 프로축구선수를 꿈꾸는 유망주를 선발하는 것이 아닌, 순수 아마추어로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학원축구의 성적 지상주의 역시 자연스레 타파될 수 있고, 유소년 선수들은 승부가 아닌 축구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는 이후에 창설될 2부리그 등 하부리그를 활성화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축구 선수 중에는 남들보다 축구에 늦게 눈을 뜨는 ‘대기만성형’이 있다. 현재는 그런 선수들이 대학에서 뛰면서 기량을 성장시키는데, 학원축구가 생활체육으로 변하게 되면 이들은 기량을 발전시키는 장소로서 대학이 아닌 2부리그로의 임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는 2부리그에 수준급 선수들 내지는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 유입되게 하여 2부리그 혹은 그 이하 하부리그가 ‘패배자의 리그’가 아닌 그 나름의 흥미와 가치가 있는 리그로 설 수 있게 한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U-리그(대학리그)는 학원체육 선수들로 구성되어 치러지겠지만, 이들 중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 추후에 프로팀과 자유계약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주전공격수 정대세가 바로 이런 식으로 일본에서 프로에 진출한 경우다.
유소년 시스템과 연고지제
유소년 시스템의 확충은 연고지제가 자리 잡는 데에도 중요하다. 프로야구가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각 구단이 확실한 지역 이미지를 구축하며 연고지제를 정착시킨 것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팀’이란 사실만큼 구단이 팬을 사로잡기 쉬운 방법은 없다. 연고제도와 함께 연고의식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 도시에서 나고 자란 지역 선수를 육성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탄생 역시 필수조건이다.
유럽이나 J 리그 팀들은 유소년 시스템 운영에 열성적이다. 해당 지역의 선수를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고지역 출신 선수들은 팬들에게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고,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는 팬들이 구단에 대해 ‘우리 동네 팀’이란 애정을 갖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처럼 드래프트 대신 자유선발제에 기초하여 유소년 클럽 시스템을 실시하면 연고 지역 선수가 자유롭게 연고 구단에서 뛸 수 있게 된다. 이는 구단과 지역 사회가 서로 겉돌고 있는 K-리그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개혁을 위한 협회-연맹-구단의 노력
그러나 유소년 클럽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선수 수급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형성되고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 각 프로구단 등이 ‘개혁’을 위한 의지와 노력을 보여야 한다.
협회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현재 한국 유소년축구의 체계를 변혁해야 한다. 초등학교까지는 클럽과 학원의 차이를 둘 필요가 크게 없지만 중학교 입학 때부터는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 체육의 구분을 지어야 한다.
프로구단에 최소한 U-15(중학교) 팀과 U-18(고등학교) 팀의 직접운영을 의무화시키고, 대신 이들이 소속 선수와의 자유계약을 통한 선수 확보가 가능케 함으로서 프로축구 시장에 선수가 진입하는 방식을 개혁시킬 필요가 있다. 현행 학원축구는 철저하게 생활체육, 즉 아마추어의 영역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학원축구에서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추후에 언제라도 클럽에 입단함으로써 프로의 꿈을 키우면 된다.
현재 K-리그에 신생구단이 창단되려면 10억 원의 가입금과 30억 원의 축구발전기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는 90년대 초반 ‘완산푸마 사태’와 같이 재정적 능력이 부족한 팀이 리그에 편입해 리그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현재는 신생구단의 K-리그 진입에 큰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차라리 한국프로축구연맹은 30억 원의 축구발전기금을 클럽이 유소년 시스템 구축을 위한 비용으로 사용할 것이란 전제 하에 수납 후 되돌려주거나 면제해주는 것은 어떨까? 30억 원이라면 프로구단이 유소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초기비용으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축구발전기금’이 아닐까? 이런 식의 접근으로 기존의 팀과 신생구단의 유소년 시스템 구축을 독려하는 것이 연맹이 할 일이다.
프로구단 역시 유소년 시스템 도입에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K-리그의 현실을 생각할 때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과감하게 이를 먼저 수행하는 구단이 향후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하는 데 가장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되리란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이 왜 재정적인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소년 시스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인천 유나이티드나 대구 FC 같은 시민구단은 드래프트가 있어 빅 클럽과 경쟁하는 부담없이 유망주를 선발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유소년 클럽 시스템을 제대로 도입하는 것이 어떨까?
실제 유소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K-리그 정상급 선수 몇 명을 영입하는 비용에 비해 훨씬 작은 액수로도 가능하다. 시민구단의 재정으로 리그 우승을 노리는 전력을 구축하기는 힘들지만, 선수 육성에 대해서만큼은 최고 수준에 오르는 것은 적은 재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좋은 유망주를 길러내고 이들을 빅 클럽으로 보내며 높은 이적료를 받거나, 혹은 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시켜 적은 투자로 큰 성과를 올릴 수도 있다. 이는 열악한 재정조건을 가진 시민구단의 좋은 생존 방식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마치면서
세 번에 걸친 연재를 통해 현행 K-리그 드래프트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문제점이 있으며 그에 대한 해결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사실 이런 논의는 대다수의 축구팬이 이미 공유하고 공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를 현실로 옮기는 것은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리고 각 구단의 의지와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국가대표팀에 유능한 외국인 감독을 ‘모셔오고’, K-리그 구단들이 공짜 표를 아무리 뿌려봐야 한국 축구가 진정한 발전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올 한해 대한축구협회 예산 652억 원 중 사용처 1위(135억 원, 전체의 21%)가 유소년 축구 활성화 사업이다. 그러나 이는 앞에서 지적했던 유소년 축구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지금의 체계에서는 결코 투입비용에 비해 효율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없다.
물론 여기서 제안된 내용들에 대해 누군가는 현실을 외면한 뜬구름 잡는 소리라며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러 가지 많은 대안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그 대안들의 공통점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한 잘못된 신인 수급 시스템의 개혁’을 담았다는 점이다. 이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 협회, 연맹, 구단, 그리고 많은 축구팬에게 전해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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