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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대전v전북, '뜨거웠던 탈꼴찌' 현장에 가다

기사입력 2008.04.27 00:51 / 기사수정 2008.04.27 00:51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다 저물어가는 4월의 흐린 토요일이었습니다.

대전 퍼플 아레나에선 대전과 전북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경기는 이 날 벌어진  5경기 중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기였을 겁니다. 울산에서는 울산과 성남이 선두권 다툼을 위한 일전을 벌이고 있었고, 수원은 제주를 상대로 8연승을 노리고 있었죠. 서울에는 박주영이 부산에는 안정환이 있었습니다.

이런 풍성한 일전들이 놓여있으니 부진의 늪에 빠져 꼴찌 자리를 놓고 벌이는 이 대결에 관심이 갈 리가 없겠죠. 지난 시즌 김호 감독의 취임으로 기적의 6강행을 이뤄냈던 팀이 대전이고, 오프 시즌동안 조재진 등 파격적인 영입으로 다른 팀들의 부러움을 받았던 것이 전북임을 감안하면 지금 양 팀의 상황이 쉽게 와 닿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양 팀은 꼴찌 자리를 놓고 뛰어야 했습니다.

 
어느 팀이나 그리고 어느 선수나 매 경기 목표를 가지고 90분에 임합니다.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마음가짐은 경기장 안에서 뛰고 있는 스물두 명 모두가 같을 겁니다. 오늘, 대전과 전북의 경우에는 이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다짐이 마음속에 더욱더 크게 자리 잡았겠죠.

이 경기 전까지 대전의 순위는 14위 전북의 순위는 13위였습니다. 양 팀 모두 컵대회에선 승리를 거둔 적이 있지만 리그에선 아직 첫 승 신고를 올리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만난 상대인데, 어쩐지 대전이 조금 편해 보였습니다.

양 팀의 역대 전적은 15승 12무 9패, 지난 시즌 두 차례 맞대결에서도 모두 대전이 2:0의 승리를 거뒀고 올 시즌 컵대회에서도 대전이 2:1의 승리를 거뒀습니다. 전북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칼로가 2군 경기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로 10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아 공격진이 더 엷어지고 말았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전반 45분이 흐르는 동안 골은 터지지 않았지만, 한 시도 그라운드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손과 눈도 같이 바빠져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사진 기자들의 포토라인에서는 쉴 새 없이 카메라의 셔터가 터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기자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죠. 꼴찌 팀의 승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치열함이었습니다.

양 팀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를 보여줬습니다. 대전의 공격수들과 전북의 수비수들은 몸이 부서져라 상대와 부딪혔고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뛰고 구르고 밀쳐댔죠. 평소 같았으면 부딪혀 구르면 누워 일어나지 않았을 선수들이, '악'소리를 지르며 넘어진 뒤에도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다시 달리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토록 절실한 1승이었겠죠.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양쪽을 채운 연두색과 자주색의 물결도 한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자신의 유니폼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 안에서 뛰고 있는 자신의 선수를, 그리고 1승을 위해서 말이죠.

치열한 공방 끝에 전반은 득점 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전북의 최철순은 전반 종료 직전 입은 부상으로 절뚝대며 그라운드를 떠나 후반 교체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후반 시작과 함께 그도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오는 투지를 보여줬습니다.

팽팽하던 0의 균형은 생각보다 빨리 깨졌습니다. 후반 9분 김용태의 패스를 받은 김민수의 슈팅이 전북 홍정남 골키퍼의 손을 지나쳐 그대로 골문을 갈랐죠. 출렁이는 골 망과 함께 그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 연두색의 N석을 제외한 대전의 모든 관중석이 뜨겁게 들썩였습니다. 지난 광주와의 컵대회에서 자신의 프로 데뷔 골을 넣었던 김민수는 정규리그 데뷔 골과 함께 팀의 정규리그 홈 첫 골을 신고했습니다.

김민수의 이 골 이후 경기는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전북의 주장을 맡았던 임유환은 급한 마음에 볼 보이에게 빨리 볼을 주지 않는다며 소리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토록 승리에 목말랐었던게죠.

그러나 마음이 급하면 될 일도 안 되는 건가 봅니다. 전북은 조재진과 스테보를 앞세워 계속해서 대전의 골문을 두드리며 애썼지만, 김형일이 버티고선 대전의 수비진은 빗장을 건 듯 문을 열어주지 않더군요. 그러던 와중에 에릭이 주승진의 패스를 받아 추가 시간에 쐐기 골을 터트렸습니다. 승리를 확정 짓는 골이 터지자 퍼플 아레나는 기쁨으로 출렁였습니다. 그리고 이어 주심의 휘슬이 울렸습니다. 

1승, 그토록 힘겨웠던 1승을 드디어 손에 쥐었습니다. 모든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며 기뻐했고, 대전 서포터들은 오랜만의 승리에 도취된 듯 웃옷을 벗어 던진 채 대전을 연호했습니다. 노장 골키퍼 최은성은 몸을 돌려 응원해준 서포터를 향해 박수를 보냈고, 90분 내내 전북 공격수들을 저지하던 글레디에이터 김형일은 그라운드에 벌러덩 누워버렸습니다. 전북의 스테보는 웃는 얼굴로 최은성에게 다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상대의 승리를 축하하는 매너를 보여줬죠.

돌아가는 대전 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하나 가득 피었습니다. 한 중년 열혈 팬은 인터뷰 중인 본부석 근처 관중석에 내내 머물며 '대전 축구 넘버 원'을 연신 외쳤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대전 관계자들과 선수들의 입에도 미소가 떠날 줄 몰랐죠.

이 두 팀 모두 이제 시작입니다. 대전은 겨우 한 계단 올라섰을 뿐이고, 전북은 더 이상 떨어질 곳조차 없으니 더욱 죽기 살기로 덤빌 수 있겠죠. 시즌은 이제 시작입니다. 2008시즌이 끝날 때쯤엔 대전이 다시 기적을 일으킬 수도, 전북이 시즌 전 다른 팀에게 받던 부러움을 다시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이렇게 K-리그는 어느 한 경기도 버릴 수 없습니다. 이들의 열정은 선두와 꼴찌를 가리지 않고 동등합니다. 오늘로서 대전은 또 다른 목표가 생겼을 것이고, 전북은 탈꼴찌라는 목표가 생겼겠죠. 모든 K-리그 경기에는 그런 목표가 하나씩은 존재합니다. 그 다음 목표는 무엇인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달릴 90분이 즐거운 기다림으로 다가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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