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2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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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십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들.

기사입력 2007.02.17 20:10 / 기사수정 2007.02.17 20:10

안희조 기자

위기의 잉글랜드, '맥클라렌 때문에?'

[엑스포츠뉴스=런던, 안희조 기자] 새해 첫 A매치 데이였던 지난 6,7일도 어느덧 일주일이나 지났다. 이천수의 멋진 프리킥 결승골로 행복한 기억을 남긴 우리와 달리 이곳 잉글랜드에서는 스페인전의 패배(0:1)이후 대표팀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프리미어십과 FA컵, UEFA 챔피언스리그 등 굵직굵직한 대회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와중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스페인전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을 비롯해 최근까지 계속해 이어지고 있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졸전을 생각한다면 극성스럽기까지 한 우려들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지난해 월드컵이 끝난 뒤, 에릭손에 이어 새로운 잉글랜드 대표팀의 수장이 된 스티븐 맥클라렌 감독의 첫 시작은 무척이나 깔끔했다. 8월 16일에 열린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4:0의 대승을 거둔 뒤 9월 유로 2008 예선 첫 경기인 안도라 전에서도 5:0의 승리를 거두며 잉글랜드 축구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스페인전을 포함에 그 이후에 벌어진 다섯 경기에서 고작 1승 2무 2패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단 하나의 승리도 약체 마케도니아에게 거둔 1:0의 신승이었고 그 다음 경기에서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마케도니아와 0:0 무승부를 기록하는 수모를 맛보고 말았다.

스페인전에 끝난 다음날 영국의 거의 모든 신문은 기다렸다는 듯이 맥클라렌 감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부임 당시부터 큰 신임을 받지 못했던 맥클라렌 감독으로서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려 했던 스페인전에서마저 패하며 언론과 팬들의 집중포화를 온 몸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맥클라렌 감독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여전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표팀 부진의 조금 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데 골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프리미어십에는 외국인 선수가 너무 많아.

 영국의 '더 선'지는 FA컵 5라운드를 하루 앞둔 16일, 2페이지의 지면을 할애해 60퍼센트에 육박하는 프리미어십의 외국인 선수 비율과 전 대표팀 감독이었던 그래햄 테일러(GRAHAM TAYLOR)의 걱정을 함께 기사화했다. 

'더 선'지가 지난 2월 9일~11일 사이 유럽 각국의 톱리그 경기 출전 명단의 국적비율을 자체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잉글리시 프리미어십이 총 272명의 선수 중 164명의 외국인 선수가 이름을 올려 60.3%를 기록, 가장 높은 외국인 선수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분데스리가(56.4%)와 포르투갈 수페르리가(49.6%)가 그 뒤를 이었고 지난 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의 세리에-A는 27.2%를 기록, 조사 대상 리그 중 가장 낮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현재 BBC 라디오 five의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는 그래햄 테일러는 이 기사에서 ‘프리미어십의 거대클럽들이 결국 잉글랜드 축구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뱉어냈다. ‘외국 선수들의 무분별한 영입으로 어린 잉글랜드 유망주들이 프리미어십에서 경험을 쌓을 기회를 잃고 있다’는 것. 또한 이탈리아 세리-A 외국인 선수 비율을 비교하며 이것이 이탈리아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래햄 테일러가 1990년부터 1993년 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의 수장을 맡고 있던 가운데, 1992년 잉글리시 풋볼 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가 분리 출범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기사를 통해 '당시 새로이 출범되는 프리미어리그가 잉글랜드 축구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길 바랬었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을 가진 빅클럽들은 이제 그저 그들의 욕심만을 채우기에 바쁘다. 빅클럽들의 구단주나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와 같은 사람들은 잉글랜드 축구발전과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관심이 없다.' 라며 비난의 화살을 프리미어십 빅클럽들에게 돌렸다. 

이와 함께, '이대로 간다면 5년 이내에 외국인선수의 비율은 80%로 올라갈 것이며 10년 이내에 잉글랜드가 주요 대회 예선에서 탈락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고 현재 6위인 피파랭킹도 웨일즈나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추락할 것.' 이라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내 높았다. 실로 이 기사의 통계에 따르면 15년 전, 20.8%에 불과하던 프리미어십의 외국인 선수의 비율은 10년 전 43.6%, 5년 전 56.1%까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더 선'지의 기사가 나오기 3일 전에도 런던의 지역 일간지인 '런던 라이트'에서도 “Foreign legion 'too big'"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앞선 내용과 비슷한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프로선수협의회(PFA)회장인 고든 테일러(GORDON TAYLOR)는 이 기사에서 ‘프리미어십이 외국인 선수들의 종착역(finishing school for foreign players)이 되어가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무분별한 외국선수의 영입이 우리의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끼쳤고 나아가 대표팀에게까지 해를 입히고 있다. 속히 그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단적인 예로 잉글랜드의 전도유망한 공격수인 테오 월콧도 아스날에서 충분한 출전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들었다.

고든 테일러는 '성적의 압박을 받는 감독들이 어린 영국선수들을 경기에 내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UEFA가 추진하는 각 클럽들이 일정 수 이상으로 그들의 지역출신 선수들을 보유하도록 하는 정책을 지지한다.' 며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예로 제시했다.

양날의 검으로 다가 온 리그의 거대화와 세계화

1980년대 리버풀 훌리건들의 난동으로 헤이젤, 힐스브로의 참사가 연이어 발생하며 유럽대회 출전권을 박탈당한 영국프로축구는 한 동안 침체의 시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단절된 채 오랜 시간동안 외로운 변화와 개혁을 힘겹게 추진해야 했다. 하지만 1992년, 프리미어리그의 출범과 함께 자본의 투자와 제도적 지원이 이어지며 영국프로축구리그는 부활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제 세계의 모든 축구선수들이 꿈의 무대로 여기는 곳으로까지 발돋움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급격한 양적 팽창은 클럽운영의 지나친 자본집중, 자국 유망주들에 대한 외면과 같은 그 이면의 부작용 또한 함께 길러왔다. 사실 이번 그래햄 테일러와 고든 테일러가 언급한 문제점들과 그에 대한 염려는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오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지난 2005년 2월, UEFA는 외국인 선수 제한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공표했다. 2006시즌부터 UEFA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에 참가하는 팀의 스쿼드를 25명으로 제한하고 그 가운데 자국선수를 2006년에는 4명, 2007년에는 6명, 2008년에는 8명씩 반드시 포함시키는 내용이다. 또한 스쿼드에 포함되는 자국선수의 숫자 중 절반 이상은 클럽의 유스시스템에서 성장한 선수여야 한다는 조건도 덧붙이고 있다. 고든 테일러가 마지막에 언급했던 UEFA의 정책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잉글랜드 프로축구 내 클럽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영국의 어린 선수들은 세계의 뛰어난 선수들을 직접 보고 경험하며 경쟁력을 갖출 수 있으며 만약 리그의 팽창을 이끌어 온 자유로운 자본의 활동이 제한되면 결국 발전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레딩의 스티븐 코펠 감독은 ‘더 선’지의 기사를 통해 ‘대표팀의 문제를 프리미어십과 억지로 연관시키는 것은 헛수고이다. 각국 리그사이의 벽들이 점점 얇아지는 것이 현재의 추세이며 클럽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2018년 월드컵 유치를 희망하는 잉글랜드는 양적으로 큰 성장을 거듭한 프리미어리그와 좀처럼 축구종주국의 체면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대표팀의 부진이라는 상반된 결과물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대표팀의 입장에서는 클럽팀과 리그가 조금 더 자국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고 클럽과 리그는 대표팀보다는 더 많은 자본을 창출할 수 있는 팀의 세계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좀처럼 마주하기 힘들어 보이는 이 두 평행선상이 어떤 방향으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잉글랜드의 이 고민이 클럽과 대표팀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추구하는 세계 축구계의 뜨거운 화두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안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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