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0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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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리의 그린라이트] 넥센 조상우가 보여준 '기다림의 미학'

기사입력 2014.04.08 07:33 / 기사수정 2014.04.07 22:31

나유리 기자
2013 시즌 미디어데이에 구단 대표 신인 선수로 참석했던 조상우. 사진 ⓒ 엑스포츠뉴스DB

[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기다림의 미학.' 넥센 히어로즈의 신인 투수 조상우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구다.

지난 1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두산의 시즌 1차전. 넥센의 선발 브랜든 나이트가 흔들렸다. 좌익수 비니 로티노의 실책이 겹쳐 3실점(비자책)한 나이트는 4이닝만 소화한 후 마운드를 내려갔다.

넥센이 2-3으로 뒤지고 있는 5회초 등판한 투수는 조상우. 조상우는 김현수-호르헤 칸투-홍성흔으로 이어지는 두산의 중심 타선을 범타로 돌려 세우더니 이어진 6회에도 삼진 2개를 곁들여 삼자범퇴 '퍼펙트'로 막아냈다.

조상우가 마운드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사이 윤석민의 역전 만루홈런이 터졌고, 승리에 쐐기를 박은 넥센은 조상우에게 데뷔 첫 승리를 선물했다.

그런데 경기후 수훈선수 인터뷰를 위해 덕아웃 뒤에서 만난 조상우의 표정은 의외로 덤덤했다. 기분이 어떻느냐고 물으니 "정말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그저 그렇다. 얼떨떨하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심심'한 답변이 돌아왔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분명했다. 차분하고 조근조근한 말투였지만 자신감이 느껴졌다. "올 시즌 중간 계투로서 '애니콜'처럼 언제 어디서든 등판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면서 "이제는 공을 원하는대로 던질 수 있다. 컨트롤이 좋아졌고, 구위도 향상됐다"고 호투 배경을 슬쩍 공개했다. 연투 부담도 없단다. 그는 "5,6이닝씩 던지는 투수가 아니기 때문에 거의 매일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는 선배 박병호가 건네준 첫승 기념구를 인터뷰 내내 두 손 안에 꼭 쥐고 있었다.

조상우가 첫승 기념구를 손에 쥐고 있다. 사진 ⓒ 엑스포츠뉴스 나유리 기자

그리고 다음날. 경기전 목동구장에서는 때 아닌 피자 파티가 열렸다. 바로 전날 승리 투수였던 조상우가 피자 30판으로 '한 턱'을 냈기 때문이다.

조상우의 활약에 염경엽 감독도 '싱글벙글'이었다. 피자를 앞에 두고 취재진과 마주한 염경엽 감독은 "상우를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카드로 쓸 수 있는 시기가 온 것 같다. 행운의 시즌이 되는 첫 발을 내딛었다. 경기 결과가 좋은 쪽으로 풀려서 상우한테도 좋은 일 아닌가. 더군다나 2이닝을 막아줘서 좋다"며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 이어 "자신감 얻게 상우 기사 좀 많이 써주세요"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조상우는 3일 두산과의 시즌 3차전에서 다시 등판했다. 5회 1사 주자 1,2루 상황에서 선발 문성현의 뒤를 이어 마운드에 오른 조상우는 김현수-칸투를 공 7개로 처리했다. 시즌 개막 이후 11타자 연속 '퍼펙트'였다.

그런데 다음 이닝인 6회 선두 타자 홍성흔에게 2루타를 내줬다. 올 시즌 첫 피안타였다. 양의지의 적시타때 홍성흔이 홈을 밟으면서 평균자책점 0의 행진도 깨졌다. 흔들릴 법도 한데 조상우는 굳건했다. 추가 실점 없이 아웃카운트 2개를 더 잡았고 그날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경기가 끝난 후 조상우는 "오늘 맞은 안타와 실점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볼넷 때문에 내준 점수가 아니고 안타를 맞았으니 괜찮다. 별다른 감흥이 없다"고 말했다. 시즌을 길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을 던질 때 모자가 벗겨지지 않는다. 사진 ⓒ 엑스포츠뉴스DB

지난 시즌 중반 염경엽 감독은 넥센 마운드에 '노란불'이 켜졌을 때도 조상우를 쉽게 1군에 부르지 않았다. 좋은 재목일 수록 2군에서 뛰며 경험을 쌓아 1군에 진입해야 한다는 것이 염 감독의 지론이다. 올 시즌에는 야수 강지광이 그렇다.

그리고 보란듯이 조상우가 날고 있다. 기다림에 꽃이 핀 셈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 섣부른 판단일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증거는 충분하다.

투구시 고개가 돌아가며 모자가 벗겨지던 '단점'도 고쳤다. 제구도 한결 깔끔해졌으며 강속구는 여전하다. 스피드건에 찍힌 최고구속은 156km.

조상우는 더 완벽한 제구를 위해 구속을 낮출 생각도 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구속을 낮춘다고 무조건 제구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낮추지 않을 생각이다. 지난해에는 투구시 고개가 돌아가면서 자꾸 모자가 벗겨졌는데, 지금 계속 신경쓰고 있다. 포수를 보면서 던지려고 생각하다 보니 고쳐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누구보다 명쾌히 파악하고 수정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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