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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피겨 인사이드] 피겨 사상 최고의 이변, 어떻게 대처해야하나

기사입력 2014.02.21 10:31 / 기사수정 2014.02.21 17:28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지난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싱글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는 미셸 콴(34, 미국)과 이리나 슬루츠카야(34, 러시아)였다. 당시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이들은 각종 국제대회를 나눠가지며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이들 중 한 명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다크호스가 나타났다. 사라 휴즈(29, 미국)는 당시 콴과 슬루츠카야에 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회인 올림픽에서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콴과 슬루츠카야가 실수로 무너질 때 휴즈는 실수없는 연기로 반전을 일으켰다. 시니어 데뷔 이후 단 한 번의 그랑프리 시리즈(스케이트 캐나다) 우승 경험이 있는 그는 강력한 우승후보인 콴과 슬루츠카야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휴즈의 반란'은 지금까지도 피겨 역사상 최고의 이변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12년이 흐른 뒤 휴즈를 뛰어넘는 이변이 발생했다. 21세기 이후 여자싱글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운 김연아(24)를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한 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 러시아)도 아사다 마오(24, 일본)도 아니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 러시아)였다.

소트니코바는 21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팰리스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피겨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해 총점 224.59(쇼트 : 74.64 프리 : 149.95)점을 받았다. 김연아는 완벽한 연기를 펼치며 219.11점을 받았지만 소트니코바에 5.48점이 모자랐다. 홈 어드밴티지의 이점을 안은 소트니코바는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소트니코바는 2014 소치동계올림픽을 대비해 러시아가 육성한 유망주 중 한 명이다. 2011년 강원도 강릉시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듬해 소트니코바는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다. 이후 소치올림픽이 열리 전까지 12번의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2012년 B급대회인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뿐 ISU가 주관하는 그랑프리 대회와 파이널 그리고 유럽선수권과 세계선수권에서는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9위에 그쳤다.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5위에 머물며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러시아선수권에서 라이벌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 러시아)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지난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럽선수권에서는 리프니츠카야에 패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이 때 소트니코바는 202.36점을 받으며 개인 최고 점수를 작성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뒤 소치올림픽에서는 무려 22.23점이나 끌어올리면서 올림픽 챔피언에 등극했다. 사라 휴즈를 뛰어넘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소트니코바의 금메달 획득에 해외 언론 대부분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미국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은 김연아의 점수가 발표되자 '충격'이라며 생각보다 낮은 김연아의 점수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프랑스의 레퀴프는 이번 소치올림픽 여자싱글 결과를 '스캔들'로 표현했다. 이 매체는 "소트니코바는 기술적으로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술적인 면과 성숙미를 볼 때 김연아와 캐롤리나 코스트너가 더 금메달에 가까웠다"며 비판했다.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 달성 여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온 카타리나 비트(독일 1984 1988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 토론 없이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러시아 베티스는 "김연아는 실질적으로 완벽했다. 하지만 심판들은 소트니코바에 비해 약간 부족했다고 판단했다"며 소트니코바의 금메달 획득이 정당했음을 주장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의 경우 콴과 슬루츠카야가 뼈아픈 실수를 범했다. 휴즈는 점프의 퀄리티는 떨어졌지만 단 한 번도 빙판에 넘어지지 않았다.

반면 김연아는 처음부터 끌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2번의 올림픽에 출전해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모두 실수 없는 연기를 펼쳤다. 김연아는 자신의 요소를 무리없이 발휘했지만 가산점(GOE)이 소금물처럼 짰다.

김연아의 점수가 생각보다 낮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소트니코바의 점수는 높았다. 평소 소트니코바는 점프를 비롯한 기술에서 많은 가산점을 챙기지 못했다. 소트니코바는 퀄리티가 뛰어난 점프보다 성공 확률이 높은 안정적인 점프를 구사한다. 하지만 소트니코바는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 수행요소 12개 중 11개에서 모두 1점이 넘는 가산점을 챙겼다.

반면 김연아는 12가지 요소 중 1점이 넘는 가산점을 받은 것은 6개에 불과했다. '점프의 교과서'이자 정교한 기술로 유명한 김연아를 생각할 때 턱없이 낮은 가산점이었다.

소트니코바는 예술점수9PCS)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소트니코바는 74.41점의 예술점수를 받았다. 빼곡한 안무가 가득 찬 '아디오스 노니노'를 연기했던 김연아(74.50)에 겨우 0.09점이 모자란 점수였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소트니코바는 분명히 선전했다. 하지만 여자싱글 역대 최고점인 224.59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수였다.

김연아는 홈 텃세를 어느 정도 예상한 듯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대회 결과를 떠나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실수 없이 마무리 짓는데 집중했다며 힘든 현실을 의연하게 대처했다. 메달 색깔과 관계없이 김연아는 후회 없는 연기를 펼치며 '피겨의 전설'로 남았다. 하지만 억울한 판정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한국 피겨에 다시 찾아오기 어려운 '올림픽 2연패'의 기회도 놓쳐버렸다.

미국의 USA투데이지는 김연아가 석연치 않은 판정을 받은 것과 관련해 심판 구성원 중 문제 인사가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 매체는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 결과가 나온 직후 게재한 기사를 통해 "러시아의 한 애송이를 뛰어난 스케이터 2명보다 우위에 올려놓은 심판 9명 가운데 1명은 부패 인사이며 그 중 1명은 러시아 피겨 연맹 회장의 아내"라고 주장했다.

이번 대회 여자싱글의 주요 심판진은 모두 유럽 출신이었다. 또한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은 러시아에 우호적인 에스토니아와 우크라이나 심판이 대거 참여했다.



미국 여자싱글의 간판인 애슐리 와그너는 판정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와그너는 큰 실수 없이 경기를 수행했지만 총점 193.20점으로 7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점프에서 잦은 실수를 보인 러시아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는 와그너보다 더 높은 200.57점을 받았다.

와그너는 "정말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넘어진 선수가 클린 연기를 펼친 선수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경기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올림픽이 끝난 뒤 경기 결과에 대해 이처럼 뜨거웠던 적은 없다. 많은 이들이 설득할 수 있는 이변은 짜릿한 전율을 준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정은 논란을 야기한다.

김연아 스스로 의연하게 넘긴 것과는 별도로 이번 판정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다.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김연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캐롤리나 코스트너 애슐리 와그너 ⓒ Gettyimages/멀티비츠]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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