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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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명보코리아 데뷔전과 호주의 추억

기사입력 2013.08.01 12:09 / 기사수정 2013.08.01 22:19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홍명보 코리아의 데뷔전 2013년 7월 20일. 상암경기장에 일찍 도착해 월드컵 기념관을 찾는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 앞에 발을 멈춘다. 한국 대표팀이 득점하는 장면이다. 승리의 환호보다는 패배의 아련함이 더 길다고 했던가, 이 사진을 찍은 이후의 상황을 아는 사람에겐 이만큼 가슴 아픈 이미지도 없다. 어쩌면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아쉬운 경기로 남을 일전(一戰).

1974년 서독 월드컵, 본선 진출 팀은 열 여섯.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한데 묶어 배당된 티켓은 단 한 장. A그룹 7개국 각축전의 최종 승자는 한국. 1973년 5월 28일, 최종전에서 난적 이스라엘을 1-0으로 물리친 결과다. 연장 후반 4분, 이스라엘 진영 왼편에서 쏘아올린 박영태의 프리킥을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김호곤이 논스톱 발리슛으로 연결, 수비수 정강이뼈에 맞고 미세하게 꺾인 공이 크로스바를 퉁겼다. 관중석의 탄성이 탄식으로 변하는 바로 그 찰나, 19세 신인 공격수의 왼발슛 한 방이 모든 목소리를 함성으로 바꿔놓았다. 아아 차범근!

아시아 B지역 승자는 이란을 잡고 올라온 호주였다. 홈앤드어웨이의 마지막 승부. 10월 28일 시드니 혈전을 한국은 0-0으로 버티는데 성공했다. 마침내 11월 10일 서울운동장(동대문 운동장). 킥 오프 시간은 오후 세 시 였다. 민병대 감독의 승부수는 차범근의 미드필더 기용. 변칙의 출발은 황홀했다. 전반 13분, 문전에서 좀 멀리 떨어진 크로스를 호주 공격수 아보니의 헤딩은 멀리 펀칭하러 나간 변호영보다 반박자 빨랐다. 포물선을 그리며 한국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던 공을 김호곤이 공보다 빨리 뛰어가며 그야말로 마지막 순간에 헤딩으로 걷어내 위기모면. 바로 1분 후 위기 뒤의 찬스라는 속설을 증명하듯 우리의 득점이 터졌다. 호주 수비수 맨프레드의 엇나간 백패스를 골키퍼 프레이저가 가까스로 쳐내자 끝까지 공을 좇아간 김재한이 빈 골문을 향해 가볍게 툭 차넣는 슛으로 1-0. 27분, 이번에는 호주 진영의 문전 혼전 중에 날린 고재욱의 오른발 강슛이 호주 수비수 두 사람의 발을 연이어 퉁기며 필사의 다이빙을 뚫고 골키퍼 왼쪽을 통과하며 네트를 출렁였다. 월드컵 기념관에 걸린 사진은 바로 이 장면을 골문 뒤에서 잡은 한 컷이다. 이제는 이겼다. 우리는 서독으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29분 왼쪽을 파고든 커란의 크로스를 볼제비츠가 달려가던 탄력 그대로 떠오르며 헤딩골로 연결하는 전형적인 영국식 득점으로 2-1. 후반 3분 롱스로인에 이은 혼전 상황에서 레이 바르츠의 강타가 터지며 2-2. 이후 한국은 처절하게 밀렸다. 무수한 찬스를 허용했으되 골은 먹지 않았다. 최종스코어 2-2. 어웨이 다득점 원칙이 적용되지 않던 시절이라 FIFA의 명령에 따라 제3국 홍콩에서 벌어진 플레이오프. 후반 25분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뛰던 메케이의 롱슛이 우리 골키퍼 이세연의 두 팔 위를 통과하며 골문 구석으로 정확하게 날아들어 0-1. 우리의 꿈은 그렇게 스러져 갔다.



<논어> 선진(先進) 편에 升堂入室(승당입실)이라는 말이 나온다. 마루에 올라야 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으로, 모든 일은 순서를 제대로 밟아야 한다는 의미다. 순서를 제대로 밟지 않은 성취는 한 순간에 얼마든지 무(無)로 화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축구가 세계와 당당히 겨룰 수 있는 바탕은 앞서간 사람들의 분투(奮鬪) 덕분이다. 기를 쓰고 오르려 해도 오르려 해도 문턱 바깥에서 좌절하던 애잔한 기억. 끝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던 월드컵 본선. 단 한 번 만이라도 좋으니, 대한민국이 출전하는 월드컵 본선을 단 한 경기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거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으리라 생각하던 수많은 소년들의 열망. 그래서 그 사진 앞을 떠날 수 없다. 몸을 풀러 경기장에 들어서는 태극전사를 성원하는 팬들이 함성이 상암벌이 떠나갈 듯 들려오는데도.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홍명보호 ⓒ 엑스포츠뉴스 김성진 기자]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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