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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V ①] 세계배구가 '빛의 속도'로 갈 때, 韓배구는?

기사입력 2012.05.17 10:02 / 기사수정 2012.07.11 19:46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한국남자배구에 있어 2012년 런던올림픽 진출은 매우 중요하다. 2004년 아테네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연속으로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에 걸쳐 한국남자배구는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에 초청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많은 원성들이 쏟아졌지만 세계 배구의 흐름에 뒤쳐진다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월드리그와 월드컵 그리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남자배구는 세계 강호들의 빠른 플레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전광석화 같은 빠른 토스로 그들이 한 템포 앞서갈 때 우리는 예전의 플레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세계 배구의 추세를 따라가자는 자성의 목소리는 계속 나오고 있다. 반면 우리 몸에 맞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 낫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올림픽 예선전 및 월드리그 등 국제대회를 앞두고 있는 한국배구는 중요한 과제를 풀어야한다. 올림픽에 출전하거나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매거진V ①] 세계배구가 '빛의 속도'로 갈 때, 韓배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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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의 우렁찬 기합소리는 체육관의 여백을 수놓았다. 충북 진천선수촌에 모인 남자배구대표팀은 온 힘을 다해 볼을 치고 네트 위를 뛰어올랐다.

대표팀의 수장 박기원(61) 감독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몸 풀기를 마친 선수들은 서브 연습에 들어갔고 리시브 훈련도 이어졌다. 또한 세터 권영민(현대캐피탈)과 공격수들의 호흡 플레이도 이어졌다.

권영민의 토스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고 선수들의 움직임도 매우 기민했다. 특히 대들보 센터 신영석(드림식스)의 속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높은 장신을 가진 세계의 강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빠른 플레이가 필요했다. 스피드보다는 '높이와 정확성'을 추구했던 한국배구는 새로운 변화를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세계배구가 '빛의 속도'로 갈 때, 韓배구는?


10년 전과 비교해 남자배구의 경향은 많이 바뀌었다. 특히 서브의 위력이 강해지면서 리시브와 수비에 비중을 두는 동양권 팀들의 경쟁력은 더욱 힘들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배구의 고민거리는 서브와 서브리시브였다. 유럽과 남미 그리고 북미 선수들과 비교해 국내 선수들이 구사하는 서브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배구 강국들이 구사하는 서브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안정된 리시브를 바탕으로 세트플레이를 하는 한국 배구의 장점은 점점 흔들렸다.

수비에 비중을 높이 두는 한국과 비교해 유럽 국가들은 공격에 치중한다. 이탈리아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활약해온 김호철(57, 현대캐피탈 총감독) 대한배구협회 남자배구 관리위원장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국가들은 팀워크에 크게 치우치지 않는다. 그들은 높이와 파워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수비가 안 되도 공격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큰 신장과 파워를 가진 유럽 선수들은 자신의 장점을 십분 살렸다. 서브의 강도가 더욱 높이고 세터의 빠른 토스를 앞세워 더욱 공격적인 배구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포물선을 그리며 높게 올라가는 토스가 아닌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빠른 토스를 때리기 시작하면서 세계 배구의 흐름은 '속도의 싸움'으로 전환됐다.

'숙적'인 일본도 10년 전부터 세계 배구의 흐름에 발맞춰나갔다. 자신들의 장점인 끈끈한 수비력을 살리면서 장신 블로킹 숲을 뚫을 수 있는 빠른 배구를 접목시켰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러한 노력은 결실로 이어졌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예선전에서 한국을 꺾고 올림픽 티켓을 거머줬다.

이와 비교해 한국배구는 여전히 높이와 수비에 치중한 배구를 하고 있다. 세터는 공격수가 때리기 좋도록 볼을 높이 띄워주면 그 볼을 받아치는 방식을 고수했다. 특히 높이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의 공격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기원 감독은 과감하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모험'을 시도했다.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 박 감독은 지난해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스피드 배구'를 시도하겠다고 공언했다.



세계의 흐름에 발맞추되 우리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중요


진천선수촌에서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박 감독은 서브와 공격 그리고 스피드와 콤비플레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예전과 비교해 국내 선수들의 신장이 좋아지면서 공격력과 높이가 향상됐다. 그러나 뒤늦게 시도한 '스피드 배구'는 여러모로 부담이 있었다.

"우리가 스피드 배구를 시도한 것이 다른 국가와 비교해 많이 늦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대표팀에 모인 선수들은 개개인의 능력이 있어서 빠르게 진전을 보이고 있다. 희망은 분명히 보이지만 스피드 배구를 하려면 배구의 근본부터 달라져야 한다. 체력 운동도 변해야하고 공격배구에 대한 이념도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실제로 월드리그를 비롯한 국제대회에서 국내 선수들은 한 템포 늦은 공격으로 애를 먹은 적이 많았다. 외국 선수들의 빠른 공격에 블로킹이 따라가지 못했다. 반면 국내 공격수들이 볼을 때릴 때는 상대 블로커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공격을 차단하는 장면이 많았다.

빠른 배구에 익숙해져 있는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 블로커들을 따돌릴 수 있는 '스피드'가 필요하다. 더 이상 예전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 경쟁력을 살릴 수 없다는 점이 현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배구의 속도'도 중요하지만 한국 선수들만이 가진 장점을 살리면서 세계의 흐름에 따라가자는 시선도 있다. 세계의 흐름에 동참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한국배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김호철 대한배구협회 관리위원장은 "세계의 흐름인 스피드배구는 반드시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버려서는 안 된다. 유럽과 남미 선수들은 신장과 파워가 워낙 좋기 때문에 공격적인 배구를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격만으로는 그들을 넘어설 수 없다. 외국처럼 무조건 빠르게 스피드 배구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선수들의 장점을 살려서 세계화에 발맞출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유럽 선수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것들은 버릴 수 없다. 우리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손재주적인 기술은 그 어느 나라 선수들보다 잘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잘 살리면서 빠른 배구를 접목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만이 경쟁하던 시대는 지났다. 유럽 선수들과 비슷한 체형을 가진 이란은 스피드와 파워로 무장했다. 또한 공격만 뛰어났던 호주도 기술과 스피드를 살리면서 강자로 급부상했다.

이번 런던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한국은 이들과 피 말리는 경쟁을 펼친다. 올림픽 예선전에서 남자부는 전체 1위와 아시아 1위에게만 올림픽 출전권이 부여된다. 세계 배구는 물론 아시아 배구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고 있는 시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남자배구가 살아남으려면 스피드 배구의 완성과 한국 배구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사진 = 남자배구대표팀, 박기원 (C)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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