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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위에서 3위까지…벵거, 아스널 어떻게 변화시켰나

기사입력 2012.03.26 07:32 / 기사수정 2012.03.30 19:34

박시인 기자


[엑스포츠뉴스=박시인 기자] 2011년 8월 29일. 아스널에겐 치욕스런 하루였다.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한 아스널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맞아 2-8로 대패했다. 아스널이 기록한 8실점은 115년 만에 최다 실점 경기로 기록됐다.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맨유와 함께 프리미어리그를 양분했던 아스널의 위상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살필 수 있는 경기였다. 비록 3라운드가 끝난 시점이지만 아스널의 순위는 강등권 언저리에 걸친 17위에 불과했다.

1996년 아르센 벵거 감독이 아스널을 맡은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은 셈이다. 벵거 감독 부임 기간 동안 아스널은 챔피언스리그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러나 올 시즌은 상황이 달랐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비롯해 사미르 나스리, 가엘 클리시, 엠마누엘 에부에 등 주축선수들이 모두 팀을 떠나 상당한 전력 누수를 떠안아야 했다. 그나마 남은 월드 클래스는 로빈 판 페르시가 유일했다.

비록 맨유전 참패 이후 이적시장 마감 이틀을 앞두고 박주영, 미켈 아르테타, 페어 메르테자커, 요시 베나윤, 안드레 산토스를 영입하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지만 전문가들은 떠난 선수들을 대체하기엔 부족한 영입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일 머니의 힘을 업은 맨체스터 시티는 이미 맨유의 아성에 대항할 전력을 보유했으며 토트넘 역시 한 해가 지날수록 성장하고 있었다. 많은 돈을 투자해 폭풍 영입에 나선 리버풀도 빅4 후보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현재 아스널은 순위표 위에서 세 번째에 자리 잡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아스널은 지난 25일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 30라운드 홈경기에서 3-0 승리를 거두고 5위 첼시와의 승점차를 8점으로 벌려놨다. 최근 7연승을 질주 중인 아스널의 상승세를 감안할 때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기정사실로 되는 분위기다.



탁월한 안목과 믿음의 축구…경기력 향상 꾀하다

아스널은 2006년을 기점으로 큰 과도기를 맞았다. 역사적인 하이버리 구장을 폐장하고 애쉬버튼 그로브(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6만 명 이상의 관중 동원이 가능한 신식 경기장 건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최근 몇 년 동안 경기장 건립에 따른 부채를 갚기 위해 긴축재정에 들어가야 했고 벵거 감독은 안정적인 재정 상태와 결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선수 영입에 많은 돈을 투자하지 못했다. 결국 벵거 감독의 선택은 값싼 유망주를 발굴해 키워내는 것이었다.

비록 7년째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지만 챔피언스리그 진출의 마지노선인 4위권 진입에 성공하며 재정적인 손실을 최소화했고 경험을 축적한 어린 영건들은 아스널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벵거 감독의 탁월한 안목과 경제학적인 혜안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벵거 감독은 지난해 여름 '수퍼 퀄리티'라고 칭한 알렉스 옥슬레이드-챔벌레인 영입을 위해 무려 1200만 파운드(약 216억 원)를 쏟아부었다. 아스널 팬들은 즉시 전력감을 데려오기도 모자를 판국에 유망주 영입에 많은 돈을 투자한 벵거 감독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1993년생 챔벌레인은 즉시 전력감으로 손색이 없었다. 전반기 동안 칼링컵과 같은 비중이 낮은 대회에 출전하며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한 챔벌레인은 후반기 들어 잠재력을 폭발하기 시작했다. 챔벌레인은 1월 열린 맨유전에서 깜짝 선발 출전해 기대 이상의 활약을 선보인 이후 벵거 감독의 신뢰를 받고 있다. 아프리칸 네이션스컵을 치르고 돌아온 제르비뉴는 챔벌레인에 밀려 벤치에 앉는 횟수가 늘어났을 정도다. 빠른 스피드와 슈팅력, 테크닉을 갖춘 챔벌레인의 가세로 아스널 공격진은 또 하나의 옵션을 추가하게 됐다.

지난 시즌 영입한 로랑 코시엘니도 벵거 감독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2010년 여름 아스널로 오기 전까지 코시엘니의 1군 경력은 2009/10시즌 프랑스리그 로리앙에서 1년을 뛴 게 전부다. 이전까지 깅강, 뚜르 등 2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해온 무명의 코시엘니가 2년차로 접어든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센터백으로 성장했다. 빠른 스피드와 안정적인 볼 처리, 위치 선정 능력은 아스널 수비를 한껏 안정시켰으며 독일 대표팀 출신 메르테자커의 가세로 제공권이 더욱 강화됐다. 세트 피스 실점률이 높았던 아스널의 약점은 올 시즌 들어 확연히 사라졌다. 최근 견고한 수비와 득점력을 과시하고 있는 베르마엘렌에 이르기까지 아스널은 양질의 센터백을 보유하게 됐다.

또한 벵거 감독은 현지팬들로부터 비판에 시달리는 시오 월콧을 끝까지 신임했다. 한때 잉글랜드 최고의 재능으로 평가 받은 그였지만 기복있는 경기력과 더딘 성장세는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판 페르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은 월콧의 부진과도 맞닿았다. 그러나 월콧은 벵거 감독의 신뢰에 부응했다. 월콧은 스피드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플레이에서 벗어나 자신의 단점을 한층 보완한 특급 윙어로 거듭났다. 월콧은 지난 아스톤 빌라전에서 환상적인 볼 터치와 공간을 활용하는 플레이로 상대 수비를 초토화했다. 크로스 타이밍을 잡는 판단력이 대폭 향상됐으며 넓은 시야, 지능적인 움직임 또한 돋보였다. 전반 25분 터진 월콧의 골 장면은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완벽했다. 벵거 감독의 굳건한 믿음이 어린 선수들의 성장으로 이어진 대목이었다.

지난 1월 티에리 앙리를 단기 임대 영입한 벵거 감독의 결정 역시 신의 한 수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앙리의 활약을 기대하는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앙리는 훈련장 안팎에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고 중요한 순간마다 결승골을 터뜨리며 클래스를 과시했다.



파브레가스 없이 사는 법, 전술 변화로 극복

벵거 감독은 시즌 초반 파브레가스가 떠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심했다. 믿었던 잭 윌셔가 장기간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평소 아스널은 좌우 측면 크로스 대신 페널티 박스 에어리어 부근에서 빠른 패스 전개와 세밀한 부분 전술을 통해 수비 블록을 무너뜨리는 패턴을 주요 전술로 삼아왔다. 그 중심에는 파브레가스가 있었다. 파브레가스는 빌드업 과정에서 양질의 패스를 뿌려줌과 동시에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하며 골까지 잡아내는 역할을 모두 소화했다.

그러나 벵거 감독은 파브레가스 중심에서 탈피해 팀 전술을 재정비했다. 전체적인 공격의 무게중심을 좌우 측면으로 옮기고 1.5선의 공백은 판 페르시가 활발한 움직임과 원활한 연계 플레이로 메우도록 했다. 좌우에서 제르비뉴, 월콧의 드리블 돌파로 수비를 흔들거나 판 페르시에게 정확한 패스를 공급해 많은 골을 합작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때마침 부상 없이 건강한 몸상태를 유지한 판 페르시는 모든 대회 통틀어 33골을 쓸어담는 괴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벵거 감독은 영입생 아르테타로 하여금 에버턴 시절과는 다른 역할을 부여했다. 아르테타는 2선과 3선을 오가며 포백 라인을 보호함과 동시에 알렉스 송이 공격 진영으로 올라갈 경우 빈 공간을 메워주고 있다. 아르테타의 가세로 아스널의 빌드업은 한층 안정감을 찾았다. 팀 내 궂은일을 도맡으며 공격 비중을 대폭 줄인 아르테타의 희생 덕분에 동료들이 마음껏 공격에 치중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 시즌 경기당 평균 1.89골을 기록한 아스널은 올 시즌 리그 30경기에서 61골(평균 2.03골)로 증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로시츠키 중용, 아스널 특유의 팀 컬러 되찾다

벵거 감독은 4-2-3-1 포메이션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애런 램지를 중용해왔다. 그러나 램지는 파브레가스의 대체자로 턱없이 부족했다. 왕성한 운동량과 기술은 탁월하지만 잦은 패스 미스와 경기 운영 미숙을 드러냈다.

결국 벵거 감독은 지난달 4일 24라운드 블랙번전에서 램지 대신 노장 토마시 로시츠키를 선발로 기용해 톡톡히 효과를 봤다. 아스널의 상승세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아스널은 모처럼 화력을 뽐내며 블랙번을 7-1로 대파했다. 이후 아스널은 강호 토트넘, 리버풀, 에버턴 등 강호들을 모두 제압하며 리그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렸다.

최근 로시츠키의 활약은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고 있다. 2006년 아스널 유니폼을 입은 로시츠키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하향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26라운드 토트넘전에서 2년 6개월 만에 골을 신고하며 자신감을 되찾은 뒤 자신의 기량을 뒤늦게 만개하고 있다. 로시츠키의 빠른 패스와 역동적인 움직임에 힘입은 아스널은 특유의 팀 컬러를 회복했고 스피드를 주무기로 하는 월콧, 챔벌레인의 위력을 한층 배가시켰다. 로시츠키의 부활이 어느 때보다 반가운 이유다.

[사진 = 벵거, 월콧, 아르테타, 로시츠키 ⓒ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캡처]

박시인 기자 cesc@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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