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른손이앤에이
(엑스포츠뉴스 이예진 기자) 생성형 AI가 숏폼 드라마 제작 현장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작품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흥행 경쟁력에서는 여전히 실사 콘텐츠가 우위를 보이면서, 실제 배우와 AI 기술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제작'이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한 숏폼 드라마가 빠르게 늘면서 콘텐츠 제작 현장도 변화를 맞고 있다. AI가 제작 시간과 비용을 줄이며 작품 공급을 빠르게 늘리고 있지만, 상업적 완성도와 시청자의 몰입도를 확보하기 위해 실제 배우의 연기와 AI 기술을 함께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제작'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네트워크시청각협회가 발표한 '2026년 1분기 숏폼 드라마 창작 지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에서 공개된 숏폼 드라마는 약 12만8,000편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AI 숏폼 드라마는 약 12만2,000편으로 전체의 95% 이상을 차지했다.
시장 규모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아이(DataEye)에 따르면 올해 AI 애니메이션·숏폼 드라마 이용자는 2억8,000만명으로 늘어났다. 중국 기업용 데이터 분석기업 명략과학기술 역시 지난 3월 공개한 조사에서 올해 1월 AI 숏폼 드라마의 재생량이 전월 대비 약 2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관련 시장도 성장세를 이어가 향후 240억위안, 한화 약 5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쏟아지는 AI 작품…흥행 경쟁력은 여전히 '사람'
AI가 작품 공급량을 크게 끌어올리고 있지만 개별 작품의 흥행 경쟁력에서는 실사 콘텐츠가 여전히 우위를 보이고 있다.
중국네트워크시청각협회에 따르면 올해 춘제 기간 공개된 실사 숏폼 드라마의 수는 AI 작품의 약 5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전체 재생 횟수는 오히려 실사 작품이 AI 작품보다 25배 많았다.
AI가 제작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강점을 보이더라도, 그것이 곧 시청자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생성형 AI는 판타지 배경이나 가상 캐릭터, 특수효과처럼 실사로 구현하기 어렵거나 높은 비용이 필요한 장면을 제작하는 데 유리하다. 반면 인물의 섬세한 감정 표현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 장면 사이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업계에서는 제작 전 과정을 AI로 대체하기보다는, AI가 강점을 보이는 영역과 실제 촬영이 필요한 영역을 구분해 활용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 국내 제작 현장에도 AI…CJ ENM, 배우 연기와 가상공간 결합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도 생성형 AI 활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25년 4분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국내 콘텐츠 사업체의 생성형 AI 활용률은 32.1%로 집계됐다. 같은 해 2분기 20.0%와 비교하면 12.1%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생성형 AI를 도입한 기업이 가장 많이 활용한 분야는 콘텐츠 제작으로 62.7%를 기록했다. 사업기획이 43.7%, 콘텐츠 창작이 32.8%로 뒤를 이었다.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 CJ ENM은 지난 4월 AI 하이브리드 영화 '더 하우스(The House)'를 공개했다. 배우의 연기는 실제 촬영으로 진행하고, 배경과 시각효과는 구글의 이미지·영상 생성 AI 기술을 활용해 구현했다.
배우와 제작진이 별도 로케이션으로 이동할 필요가 줄어들면서 주요 실사 촬영 역시 4일 만에 마쳤다. AI가 촬영 이후 작업뿐 아니라 제작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는 사례다.
■ 실제 배우와 AI 캐릭터가 한 작품에…바른손이앤에이 '렌더링 러브'
AI 캐릭터를 단순한 시각효과를 넘어 작품 서사의 핵심 요소로 활용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배급사 바른손이앤에이는 MBC씨앤아이와 함께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원하는 2026년 뉴미디어 신기술 콘텐츠 랩을 통해 AI 하이브리드 콘텐츠 '렌더링 러브'를 제작하고 있다.
'렌더링 러브'는 버추얼 아이돌의 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본캐들과 우연히 만나면서 벌어지는 역하렘 로맨틱 코미디다. 향후 OTT와 숏폼 플랫폼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전체 콘텐츠의 약 80%는 실제 배우가 출연하는 실사 촬영으로 구성된다. AI 기술은 작품의 핵심 소재인 버추얼 아이돌 '레브릿' 구현에 집중된다.
기존 AI 하이브리드 콘텐츠가 실사로 구현하기 어려운 CG나 배경을 AI로 대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렌더링 러브'는 AI 캐릭터 자체를 작품의 주요 소재이자 서사의 한 축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제작 과정에서 인간과 AI의 역할도 명확히 나뉜다. 레브릿의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은 기존 콘텐츠 기획 방식대로 사람이 직접 설계하고, 이후 AI를 활용해 캐릭터 디자인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AI가 창작의 핵심을 대신하기보다, 사람이 설계한 세계관과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구조다.
■ 제작 진입 장벽 낮아질수록 '이야기와 IP'가 관건
생성형 AI가 보편화되면서 이미지와 영상 제작의 기술적 진입 장벽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콘텐츠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과 창작자의 범위가 넓어지고, 작품 공급 역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차별화된 이야기와 캐릭터를 설계하는 기획 역량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하나의 작품을 후속 시리즈나 캐릭터 상품 등 장기적인 지식재산권(IP)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능력 역시 콘텐츠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요소로 꼽힌다.
창작자의 역할도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AI가 반복 작업이나 초기 시각화를 맡게 되면 인간 창작자는 세계관과 서사를 설계하고,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선별·수정하는 역할에 더 집중하게 된다. 여기에 저작권과 윤리 문제를 검토하는 과정도 창작자의 중요한 업무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AI를 활용해 제작비와 기간을 줄이는 것만으로 콘텐츠의 흥행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며 "결국 시장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차별화된 이야기와 캐릭터이며, AI 시대에는 이를 지속 가능한 IP로 발전시키는 기획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AI 활용이 늘면서 콘텐츠 제작 방식은 계속 세분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사 촬영과 생성형 AI를 어떤 비율과 방식으로 결합할지에 따라 제작 공정과 비용 구조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향후에는 기술 활용 자체보다 작품 성격에 맞는 적용 방식이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이예진 기자 leeyj012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