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우진 기자)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에서 5년 동안 선발 마운드를 지켰던 베테랑 좌완 브룩스 레일리(38)가 미국 메이저리그(MLB) 정상급 불펜투수로 완벽하게 변신한 뒤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빠른 공의 평균 구속이 시속 90마일(144.8km/h)에 불과하지만 강한 타구를 억제하고 타자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자신만의 투구 철학으로 빅리그에서 살아남겠다는 각오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지난 8일(한국시간) "레일리는 압도적인 구위를 갖추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며 필라델피아로 이적한 베테랑 좌완의 경쟁력을 집중 조명했다.
필라델피아는 지난 3일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같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소속 뉴욕 메츠와 트레이드를 단행해 레일리를 영입했다.
올 시즌 필라델피아는 호세 알바라도와 태너 뱅크스 등 좌완 불펜 자원들의 부진으로 고민을 안고 있었다. 이에 필라델피아는 레일리를 데려오면서 올스타 마무리투수 요안 두란으로 이어지는 승리조를 한층 강화했다.
레일리는 이적 전까지 메츠에서 45경기에 등판해 41⅓이닝을 소화하면서 5승5패 평균자책점 1.96, 40탈삼진을 기록했다.
단순히 올 시즌만 반짝한 것도 아니다. 레일리는 2022년 이후 평균자책점 2.42를 기록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메이저리그 좌완 불펜투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치다.
더욱 눈길을 끄는 대목은 레일리가 강속구를 앞세워 타자들을 압도하는 유형의 투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레일리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두고 "타자들이 이야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한 타구를 만들어내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것. 나는 이런 부분을 상당히 잘한다"며 "때로는 그저 타자의 약점을 공략해야 한다. 나는 그것도 꽤 잘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레일리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90마일 안팎에 그친다. 최근 메이저리그 불펜투수들이 시속 100마일(160.9km/h)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높은 회전수를 앞세우는 흐름과는 정반대다.
대신 레일리는 패스트볼보다 커터와 스위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SI'는 "두 구종 모두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다"며 레일리가 구속으로 타자를 압도하는 대신 다양한 움직임과 완급 조절을 통해 타자의 타이밍을 무너뜨리고 약한 타구를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야구팬들에게 레일리는 더욱 익숙한 이름이다.
레일리는 지난 2015년 롯데에 입단해 2019년까지 무려 5시즌 연속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다. 이 기간 152경기에 모두 선발 등판해 910⅔이닝을 던지면서 48승53패 평균자책점 4.13, 755탈삼진을 기록했다.
2015년 11승, 2017년 13승, 2018년 11승을 거두는 등 세 시즌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고, 5년 모두 178이닝 이상을 소화하면서 꾸준함을 자랑했다.
2019시즌에는 승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5승14패에 그쳤지만 181이닝을 책임지며 평균자책점 3.88과 19차례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롯데와 결별한 레일리는 미국 무대로 돌아가 빅리그 재도전에 나섰고, 이후 선발이 아닌 불펜투수로 자신의 야구 인생을 새롭게 개척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변신은 더욱 돋보인다.
'SI' 역시 "38세가 된 레일리는 자신을 재창조하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냈다"며 "모든 투수가 최대한 높은 회전수와 구속을 추구하는 시대에 레일리는 간신히 시속 90마일을 찍으면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필라델피아 데뷔전은 기대만큼 순조롭지 않았다. 지난 6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브래디 하우스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한 데 이어 CJ 에이브럼스에게도 적시타를 맞았다. 필라델피아 역시 연장 11회 끝에 4-10으로 패하면서 레일리의 첫 등판은 아쉬움 속에 마무리됐다.
그럼에도 필라델피아가 레일리에게 거는 기대는 여전히 크다. 올 시즌 메츠에서 평균자책점 1점대의 빼어난 투구를 선보였고, 최근 수년 동안 좌완 불펜투수 가운데 가장 꾸준한 성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단 한 차례 등판으로 그의 가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과거 롯데에서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던 레일리는 이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메이저리그 정상급 불펜투수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압도적인 구속 대신 정교한 제구와 타자의 약점을 파고드는 노련함을 앞세워 살아남은 그가 필라델피아에서도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하며 우승 도전에 힘을 보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 엑스포츠뉴스DB
이우진 기자 wzyfooty@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