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유희은 기자) ‘류’ 유상욱 감독이 젠지를 선택했다. 그 선택의 배경에는 BNK 피어엑스를 이끌며 경쟁력을 증명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올해 LCK 컵 전패와 정규 시즌 중반 부진을 지나 플레이오프 진출과 ASI 초대 우승을 만들었고, 다전제에서 변수를 만드는 밴픽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그럼에도 유상욱 감독은 피어엑스에서의 3년을 “굵직한 성과를 만들고 싶었지만 롤드컵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시간”이라고 정리했다. 약체라는 평가 속 신인 중심 로스터로 이변을 만들었음에도 처음 세웠던 지점에는 닿지 못했다는 자평이다. 성장 과정 자체에는 의미가 있었지만, 더 높은 무대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그를 젠지로 이끌었다.
지난 5일 젠지e스포츠 사옥에서 엑스포츠뉴스와 마주한 유상욱 감독은 젠지를 “체급과 조직력 모두에서 완성도 높은 팀”이라고 평가했다. 롤드컵 우승이라는 젠지의 오랜 과제를 바라보며, 더 정교한 운영·밴픽·선수 관리로 자신의 경험을 증명하겠다는 계획을 덧붙였다. 그는 어떻게 젠지를 선택했고, 어떤 팀을 만들 계획일까.
Q. 2025 ASI 이후 길게 쉬는 시간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지냈나.
시즌과 ASI가 끝난 뒤에는 일단 쉬는 데 집중했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고, 본가에서 롤드컵을 보며 그동안 못 챙겼던 휴식 시간을 가졌다.
Q. 롤드컵은 어떻게 봤나.
재밌게 봤다. 특히 KT가 결승까지 간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결승 진출이 가능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실제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놀라웠다.
Q. 젠지에 온 지 얼마나 됐고, 첫 인상은 어땠나.
선수단 휴가 일정과 겹쳐서 저번 주에 한 번 들러 인사 정도만 나눴고 오늘(5일)이 사실상 첫 출근이다. 예전에 피어엑스에서 함께 했던 '듀로'를 제외하면 나머지 네 명은 처음 같이하는 선수들이다. 다 잘하는 선수들이라 직접 마주했을 때 신기한 느낌이 컸다.
Q. 피어엑스에서 보낸 3년을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처음 들어갈 때 “3년 안에 롤드컵 진출 같은 굵직한 성과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ASI 초대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가져오긴 했지만, 정규 시즌 성적이나 롤드컵 진출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만족스럽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아쉬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마지막 시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즌 전에는 가장 약한 팀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는데, 그래도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 국제전을 거치면서 이변을 꽤 만들어냈다고 본다. ASI에서 우승까지 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이번 해가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Q. LCK 컵 전패, 시즌 중반 불안한 흐름 등 힘든 구간도 있었다. 아쉬움은 없나.
LCK 컵에서 전패를 했을 때는 코치진과 선수들 모두 힘들었다. 시즌 중반에도 불안한 장면들이 여러 번 나왔다. 그래도 결국에는 팀이 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줬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성과로 어느 정도 이어졌다고 본다.
Q. 디플러스 기아, 농심 레드포스를 잡은 플레이오프에서 밴픽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미드 모르가나와 같은 픽은 어떻게 준비한 것인가.
피어리스가 도입된 후에는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이상 가는 시나리오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스크림을 하다 보면 상대 팀이든 우리 팀이든 ‘이건 대회에서 써볼 만하다’ 싶은 챔피언이 나온다. 그런 픽이 보이면 패치 상황과 팀 성향을 같이 보고, 맞는다고 판단되면 실제 무대에서 쓰도록 밀어주는 편이다.
Q. 직접 플레이하면서 찾는 편인가, 아니면 외부 경기를 참고하나.
직접 게임을 할 때도 있고, LPL에서 눈에 띄는 픽을 참고할 때도 있다. LCK는 새로운 픽을 꺼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LPL은 좋다고 생각하면 바로 꺼내는 것 같다. 또 선수들에게 “이 챔피언이 패치됐는데 어떻게 보느냐” 물어보기도 한다. 선수들의 의견과 여러 데이터를 종합해서 판단하는 편이다.
Q. ASI 초대 우승 당시 국제대회 밴픽을 처음 경험해봤는데 어땠나.
LCK 외 팀들을 상대하다 보니 데이터가 많지 않았다. 다만 예전 경기들을 통해 쌓아둔 정보가 어느 정도 있었고, 그걸 기반으로 준비했다. 실제로 상대해보니 지역마다 선호 챔피언과 경기 성향이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차이를 직접 경험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Q. 올해는 신인 위주 로스터로 피어리스까지 염두하며 경기를 병행해야 하는 구조였다. 밴픽에서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썼나.
기본적으로 상대와 우리 팀의 챔피언 폭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본다. 서로 잘하는 픽이 겹친다면, 그 챔피언을 상대보다 먼저 꺼내 쓰는 쪽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팀이 전체적으로는 신인이었지만 챔피언 폭이 넓은 선수들이 있었다. 그 선수들을 축으로 챔피언 폭이 좁은 선수들을 보완하려고 했다. 선수들도 그런 방향성을 이해하고 따라와 줘서, 결과적으로는 잘 맞아떨어졌다고 본다.
Q. 결국 BNK 피어엑스에서 감독으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무엇인가?
첫 감독직을 피어엑스에서 시작했는데, 구단에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성과 운영 방식을 많이 믿어줬다. 그 덕분에 여러 가지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었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는 표현이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경기 안팎에서 상황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게 된 부분이 크다.
Q. 감독·코치가 되고 나서 피드백 방식도 달라졌나.
선수 시절에는 피드백을 세게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강압적인 피드백이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감독이 된 이후에는 선수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쪽을 택하려고 한다. 내 의견이 맞다고 생각해도, 바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천천히 설득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픽을 바꿔주거나 그 선수 쪽으로 게임 플랜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결국 이기는 방법을 같이 찾는 게 중요하다.
Q. 이번 스토브리그도 변화가 꽤 있었는데, 어떻게 지켜봤나?
가장 먼저 느낀 건 원딜 선수들의 이동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각 팀의 색깔도 꽤 바뀌었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전보다 LCK 팀들이 더 강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드와 원딜처럼 딜러 포지션이 바뀌면 팀 성향이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Q. 여러 팀에서 러브콜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 중에 젠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외부에서 과분할 정도로 많은 제안을 받았다. 젠지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상대 입장에서 젠지를 상대해보며 “체급이 정말 좋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별다른 특이한 게임 플랜이 없어 보일 때도, 체급과 운영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강점을 잘 활용하면 내가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팀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팀이 젠지라고 판단했다.
Q. 젠지 감독직은 그동안 1년 계약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3년 계약이다. 파격적인 행보라 보는데, 협상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아주 세부적인 내용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팀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젠지가 이미 좋은 성과를 내온 팀인 만큼, 앞으로 3년 동안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에 대한 큰 방향을 맞추는 과정이었다.
Q. 3년이라는 기간을 수락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한 팀에 오래 있는 걸 선호한다. 1년은 어떤 일을 하기에 너무 짧다고 느낀다. 팀을 만들고, 방향을 잡고, 결과를 내기까지는 최소한 3년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3년 계약이 맞다고 봤고, 그 기간 동안 책임감을 갖고 해보고 싶었다.
Q. 젠지는 국내 최고의 팀 중 하나이고, 다른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지만 롤드컵에서는 항상 마지막이 아쉽다는 평가가 있다. 외부에서 볼 때 이유를 어떻게 보나.
내부 상황을 직접 겪어본 게 아니라 정확한 이유를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다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시즌 내내 좋은 성적을 내다 보니, 마지막 단계에서 한 번 삐끗했을 때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결국 아주 높은 수준에서 싸우다 보니,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한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Q. 젠지의 밴픽에 대해서는 평소 어떻게 생각했나.
밴픽이라는 건 어느 팀이든 항상 잘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젠지는 선수 개개인의 체급이 워낙 높다 보니, 내 기준에서는 불리해 보이는 조합으로도 라인전에서 이기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그런 경기를 보면서 “내가 생각할 때는 불리한 조합인데, 젠지가 하면 유리하게 보인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그 정도로 선수들이 상황을 이기는 힘이 강하다고 느꼈다.
Q. 최정상급 베테랑이 모인 팀은, 신인 위주 팀보다 밴픽이 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동의하나.
어느 정도 동의한다. 경험 많은 선수일수록 자기 생각이 분명하다. 그래서 밴픽 준비 단계에서 서로 생각을 맞추는 과정이 더 중요해진다. 따라서 밴픽을 준비할 때 선수들과 최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방향을 맞추려 한다. 신인이든 베테랑이든 기본 구조는 비슷하지만, 젠지에서는 그 부분을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Q. 현재는 젠지 코칭스태프 구성에 대해 유상욱 감독과 김다빈 코치 2인만 발표가 난 상황인데, 추가 코치 영입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코치 한 명 더 영입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다만 아직 선수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 각 선수들의 성향과 팀 내 분위기를 더 보고 어떤 유형의 코치가 필요할지 판단하려 한다. 현재 얘기 중인 코치가 있는데 나와 잘 맞고 게임적으로도 잘 본다고 생각한다.
Q. 젠지 선수들 가운데 가장 기대되는 선수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쵸비’ 정지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예전부터 상대 입장에서 경기를 볼 때 숨 막히는 장면이 많았다. LCK 미드 모두 훌륭하지만, 특히 ‘쵸비’는 라인전 단계에서 보여주는 힘이 독보적이라고 느꼈다. 라인전 이후 게임을 어떻게 풀어가는지, 콜을 어떤 식으로 주고받는지 직접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Q. 다른 선수들과의 첫인상은 어땠나.
젠지 계약 후에 '기인', '캐니언', '듀로'와 먼저 보고있고, 나머지 선수들은 훈련소 일정 때문에 아직 자주 보지 못했다. 휴가 기간에 잠깐 모두 모였을 때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처음에는 다들 말이 별로 없고 조용할 줄 알았는데, ‘기인’, ‘캐니언’ 모두 생각보다 말도 많고 유쾌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분위기가 밝다는 느낌을 받았다.
Q. 케스파컵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아직 본격적인 팀 연습에 들어간 상황은 아니다. 케스파컵의 경우 1군 선수들이 모두 다는 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현재는 대회 서버 패치와 메타 흐름을 보면서, 그 안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픽과 조합을 고민하는 단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Q. 내년 LCK 컵에서 ‘코치 보이스’가 도입된다. 어떻게 보고 있나.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재밌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실제로는 혼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있다. 직접 적용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상대적으로 운영 경험이 부족한 팀 입장에서는 짧은 코멘트만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 운영이 이미 탄탄한 팀들은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지만, 약팀에게는 분명히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Q. 확실히 약팀에게 더 유리한 제도로 보여지나?
지금 단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팀이 더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간단한 정보 정리나 교전 선택, 오브젝트 타이밍 같은 부분에서 코칭스태프의 한두 마디가 방향을 잡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을 잘 활용한다면, 전력 차이를 어느 정도 메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
Q. 내년에는 협곡과 아이템 구조가 크게 바뀐다. 어떤 양상을 예상하나.
이렇게 판이 크게 바뀌는 패치는 힘들지만, 동시에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다. 게임적으로 단순하게 보면 탑의 비중이 조금 더 커질 것 같고, 포탑 골드 추가 등으로 전체적으로 골드를 벌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나 운영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에는 스플릿 운영이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이런 변화로 다시 스플릿 게임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Q. 본인의 상징처럼 회자되는 이른바 ‘류또죽’ 장면은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된다. 이에 대해 불편한 마음도 있나?
개인적으로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들로 나를 기억해 주신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웃음). 당시 함께 뛰었던 '페이커'가 지금까지도 최정상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신기하면서도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런 부분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추억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Q. 3년 간 젠지를 이끌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멀리 바라보는 목표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목표는 롤드컵 우승이다. 그 과정에서 젠지가 지금까지 쌓아온 “단단한 강팀”이라는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LCK에서 강한 팀, 국제대회에서도 꾸준히 높은 위치에 있는 팀이라는 이미지를 흐리지 않으면서, 젠지의 마지막 퍼즐인 롤드컵 우승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
Q. 정말 젠지를 롤드컵 우승으로 이끌 수 있나?
롤드컵 우승하고 싶어서 젠지에 왔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수준이 아니라, 3년 안에 롤드컵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 목표를 기준점으로 삼고 준비하겠다.
Q. 마지막으로 롤드컵 우승을 기다리는 젠지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젠지는 몇 년째 롤드컵에서 아쉽게 미끄러지고 있다. 팬분들도 그만큼 많이 지치고 아쉬우셨을 것 같다. 이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젠지와 함께 끝까지 준비해서, 기다려주신 만큼 경기력과 결과로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사진 = 라이엇 게임즈, 엑스포츠뉴스 유희은 기자
유희은 기자 yooheeki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