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1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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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의 비극' 때 당신도 있었죠?"…일본 감독, '뼈 때리는' 질문에 웃다 [아시안컵]

기사입력 2024.01.19 05:45



(엑스포츠뉴스 이태승 기자) '뼈 때리는' 질문이었다.

일본 축구사 가장 비극적인 경기 중 하나가 바로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던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이라크전이다.

당시 한국, 일본, 북한,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국이 중립지 도하에 모여 풀리그로 2장의 월드컵 본선 티켓을 다퉜다. 당시 일본은 사우디와 비기고 이란에 패했으나 3차전과 4차전에서 북한과 한국을 각각 3-0, 1-0으로 제압, 순위가 본선 진출 가능권인 2위로 올라섰다.

이라크와 최종전을 이기면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이라크전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1-1에서 오프사이드 논란이 있었던 후반 24분 나카야마 마사시의 골이 터질 때 일본 열도가 들썩였다. 당시 일본 중계방송 캐스터는 "아메리카의 골든게이트(샌프란시스코 금문교)가 보인다"며 흥분했다. 20여분 버티면 월드컵 티켓은 일본의 것이었다.

하지만 후반 45분이 막 넘어가려는 순간 사건이 텨졌다.

이라크의 자파르 옴란이 2-2 동점으로 승부를 마무리짓는 골을 넣은 것이다. 자파르의 골이 터질 때 일본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쓰러진 장면은 유명하다. 같은 시간 다른 구장에서 북한을 3-0으로 완파하고도 그라운드를 터벅터벅 걸어나오던 한국 선수들은 갑자기 들려온 자파르의 동점포 및 일본-이라크전 2-2 무승부 소식에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2승3무를 기록한 가운데 한국과 일본인 나란히 2승2무1패를 찍었으나 골득실에서 한국이 +5를 기록, +3인 일본을 제치고 미국 월드컵 본선 티켓을 뒤집기로 획득했다. 한국 축구계는 이를 '도하의 기적', 일본 축구계는 거꾸로 이를 '도하의 비극'으로 부른다.

시간이 31년 흘러 2024년 1월18일 카타르 도하에서 당시 비극이 회자됐다. 일본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도하의 비극' 때 그라운드에 있었던 일본 선수 11명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일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경기장에서 이라크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D조 2차전 이라크전을 치른다.

모리야스와 도하, 이라크가 겹치면서 '도하의 비극'도 18일 열린 사전기자회견 질문으로 나왔다.

일본 기자와 이라크 기자가 각각 한 번씩 당시를 떠올렸다.

모리야스 감독은 '도하의 비극'을 인지하면서도 담담하게 넘어가려는 모습이었다. "1993년 도하에서 일본 대표팀 현역 선수로 경기를 뛰었는데, 경기장 안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기 힘든 것 같다. 모리야스 감독은 어떤가"라는 일본 기자의 질문이 먼저 나왔다.

모리야스 감독은 이에 "경기장 내에 큰 화면이 있어 그걸 보고 시간을 확인한다. 이번 대회에서는 추가시간이 많은 것 같은데 별 상관은 없다"면서 "1993년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당시 이라크에 추가시간 동점골을 허용한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나와 선수들 모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이어 "지난 베트남전에서 일본 대표팀은 전·후반 각각 추가시간에 좋은 활약을 보였다"고 '도하의 비극' 같은 일이 다신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자 이번엔 아랍어로 비슷한 질문이 들어왔다.

당시 '도하의 비극' 멤버로 이라크를 카타르에서 상대하는 것이 어떤 것 같느냐는 질문이었다. 모리야스 감독은 다시 한 번 냉정하게 받아쳤다.

쓴웃음을 지은 모리야스 감독은 "당시 선수로서 1993년에 비극적인 일을 겪었지만 지금 난 감독이다.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라면서 동석한 수비수 이타쿠라 고를 가리키면서 "내 옆의 이타쿠라는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다. 나와 선수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없다. 지금 일본 선수들은 각종 유럽 리그에서 뛰며 이미 자신의 실력을 세계 무대에 증명하고 있다"는 말로 '도하의 비극' 같은 아쉬운 경기를 카타르에서 다시 하지 않을 것임을 알렸다.

31년 전 악몽을 미디어가 먼저 떠올리게 한 가운데 모리야스 감독이 이라크를 상대로 도하에서 복수극을 펼칠지 궁금하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승 기자 taseau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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