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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국제축구학교 영향? 달라진 북한 축구…세밀함 높이고 투박함 줄였다 [항저우AG]

기사입력 2023.09.20 11:45



(엑스포츠뉴스 중국 진화, 김지수 기자) 3년 만에 국제대회의 모습을 드러낸 북한 남자 축구가 달라진 경기 스타일을 앞세워 승전고를 울렸다. 상대가 약체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전 북한 축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운영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북한은 지난 19일 중국 진화시 저장사범대학 동경기장(zhejiang Normal University East Stadium)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대만을 2-0으로 이겼다. 다득점, 클린 시트 속에 승점 3점을 확보하고 토너먼트 진출 가능성에 청신호를 켰다.

북한 남자 축구 대표팀의 최근 국제대회 공식 경기 승리는 지난 2020년 1월 16일 태국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23세 이하) 아시안컵까지 조별리그 D조 3차전이었다.



북한은 당시 박항서 감독이 이끌던 베트남을 2-1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비록 앞선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전 패배로 조 3위에 머무르며 8강 진출은 좌절됐지만 전력상 한 수 위로 여겨졌 베트남을 이겼다.

하지만 북한 축구는 베트남전을 마지막으로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 전까지 국제 무대에서 실종됐다. 북한은 2020년 2월부터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에 빠지자 감염 우려와 안전을 이유로 국경을 걸어 잠갔다. 축구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대회 출전도 불허했다.

이미 진행 중이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을 기권한 것을 시작으로 2년 전 열린 2020 도쿄올림픽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 중 유일하게 참가하지 않았다. 제재가 뒤따랐지만 스포츠 '쇄국정책'을 유지했다.



북한은 우방 중국에서 열리는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다시 메이저 국제 스포츠 대회 출전을 재개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북한은 이번 대회에 18개 종목, 남자 79명, 여자 112명 등 총 191명의 선수단을 등록했다.

북한 남자 축구 대표팀이 북한의 항저우 아시안게임 첫 주자였다. 신용남 감독이 이끄는 북한은 경기 내내 대만을 압도한 끝에 완승을 따냈다. 전반 6분 리조국의 선제골로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했고 전반 12분 김국진의 추가 득점으로 승기를 잡았다.

눈에 띄는 건 북한의 경기력이었다. 지난 3년 8개월 동안 북한 내부에서 자체 경기만 치렀던 탓에 사실상 제대로 된 실전 경험이 없는 상태였지만 안정적으로 게임을 풀어갔다.



포메이션의 경우 골키퍼 강주혁을 비롯해 수비수인 주장 장국철, 김경석, 김유성 등 3명으로 백3 카드를 들고나왔다. 미드필드 라인은 김국범, 백청성, 강국철, 리일성 등 4명을 배치했고 공격은 김범혁, 리조국, 김국진 등 최종 엔트리에 공격수로 분류된 5명 중 3명을 선발 출전시키는 공격에 무게를 둔 라인업을 구성했다. 강주혁과 장국철, 김국범이 만 24세 이상 와일드카드 3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은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매끄러운 패스 플레이를 선보였다. 선수들의 퍼스트 터치, 볼 키핑, 킥 등 기본기가 준수해 보였다. 전력이 약한 대만이 약속된 압박 플레이가 없었고 미드필드와 수비 라인의 간격이 크게 벌어진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북한 선수들 간 연계와 돌파, 대만 수비 뒷공간을 노린 침투 패스가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가장 눈에 띈 선수는 등번호 20번의 백청성이었다. 이날 오른쪽 측면에 배치돼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드리블 돌파로 대만의 수비수들을 괴롭혔다. 



후방에서 넘어온 볼을 안정적으로 키핑한 뒤 돌파 혹은 대만 수비 라인 뒷공간을 노린 침투 패스, 측면을 파고들고 박스 안으로 연결하는 크로스까지 눈에 띄는 움직임을 선보였다. 사실상 전반전 북한 공격을 이끄는 에이스 역할을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반 12분 김국진의 추가골은 백청송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수비수를 앞에 둔 상황에서 가볍게 압박을 벗겨낸 이후 오른발로 택배 크로스를 보냈고 김국진이 컷백으로 마무리했다. 

결승골의 주인공 리조국도 인상적이었다. 공간이 생기면 지체 없이 슈팅을 시도하면서 적극적으로 골을 노렸다. 후반전에도 자신 있게 박스 안에서 돌파 후 슛을 날렸다.



북한의 수비 집중력도 나쁘지 않았다. 대만이 유의미한 공격 기회를 거의 창출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공중볼 다툼, 압박, 공수 간격 유지가 원활하게 이뤄졌다. 

리드 상황에서 볼 점유율을 높이며 빌드업을 이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경기장을 폭넓게 활용하면서 대만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북한 축구는 2010년대 초반까지 전형적인 선수비-후역습 전술을 구사했다. 34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에도 탄탄한 수비가 밑바탕이 됐다.




당시 북한은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8경기 3승 3무 2패, 승점 12점을 따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에서 앞서며 본선 진출의 기쁨을 맛봤다. 골은 7득점에 불과했지만 5실점만 내준 짠물 수비가 빛을 발했다.

그러나 북한 축구는 남아공 월드컵 이후 침체에 빠졌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은메달의 깜짝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2020년 초까지 성인 레벨에서 고전했다.

다만 북한이 축구영재 양성을 목표로 2013년 평양국제축구학교를 설립한 이후 성장한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여럿 뛰는 것으로 알려진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선배 세대와는 다른 스타일이어서 향후 변화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지난 6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평양국제축구학교는 지난 10년간 국제대회에서 7개의 우승컵과 수많은 금메달을 쟁취했으며, 6명의 최우수선수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조선중앙통신도 올해 보도에서 "개교한 때로부터 학교에서는 교육과 훈련 방법을 끊임없이 혁신하면서 학생들을 전도유망한 축구선수 후비(앞날을 대비해 준비하는 사람)들로 키우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졸업생들 가운데는 지금 국내에서 진행되는 여러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평양국제축구학교는 2013년 6월 김정은의 '체육강국' 구상에 따라 평양 능라도에 설립됐고, 전국 각지에서 선발한 7∼17세 남·녀 학생들이 외국어를 비롯한 일반 과목과 축구 실기 교육을 함께 받는다. 개교 당시 입학했던 10대 초반 학생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성인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시점인 만큼, 이번 아시안게임이 성과를 확인하는 국제 무대가 될 수 있으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실제 신 감독이 평양국제축구학교에서 지도자를 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제자들을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상당수 데려왔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오는 21일 1차전과 같은 장소에서 키르기스스탄과 F조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키르기스스탄을 꺾는다면 16강 토너먼트 진출을 조기에 확정할 가능성이 높다. F조 2위를 하게 되면 E조 1위가 유력한 한국과 16강에서 남북대결을 벌일 수 있다.

북한 축구가 향후 조별리그 경기에서도 분전해 한국을 만나게 될지도 흥미롭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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