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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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 안 마주친' 북한 공격수, "좋았습네다"와 "고맙습네다"가 전부였다 [항저우 리포트]

기사입력 2023.09.20 07:20



(엑스포츠뉴스 중국 진화, 김지수 기자) 북한 남자 축구대표팀이 3년 8개월 만에 거둔 국제무대 승전고에도 '입'을 닫았다. 사령탑은 공식 인터뷰를 정상적으로 소화했지만 선수들은 경기 종료 후 아무 말 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북한은 19일 중국 진화시 저장사범대학 동경기장(zhejiang Normal University East Stadium)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조별리그 F조 1차전 대만과의 경기에서 2-0으로 이겼다. 

북한의 국제대회 공식 경기 승리는 지난 2020년 1월 16일 태국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23세 이하) 아시안컵까지 조별리그 D조 3차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당시 박항서 감독이 이끌던 베트남을 2-1로 꺾었다. 비록 앞선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전 패배로 조 3위에 머무르며 8강 진출은 좌절됐지만 유종의 미를 거뒀다.



하지만 북한은 이후 국제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2020년 1월 말부터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창궐로 팬데믹 상황에 빠지자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계의 모든 시계가 멈춰 섰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 등 메이저 대회는 물론 아마추어 대회까지 개최가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북한은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이유로 이미 진행 중이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에 기권했다. 이후에도 주요 국제 대회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는 기조를 꾸준히 이어갔다.

북한의 '스포츠 쇄국정책'은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해제됐다. 북한은 최근 2024 AFC U-23 아시안컵 예선에 뚜렷한 이유 없이 불참을 선언해 논란을 빚었지만 중국에서 열리는 하계 아시안게임은 선수단을 파견했다.



북한 선수단의 항저우 아시안게임 첫 출발을 끊은 남자 축구는 일단 기대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비록 상대가 한 수 아래 전력인 F조 최약체 대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인 조직력,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은 나쁘지 않았다.

전반 6분 리조국의 선제골은 상대 밀집 수비를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로 허문 뒤 생긴 공간을 놓치지 않은 게 돋보였다. 리조국은 아크 정면에서 슈팅 찬스가 생기자마자 지체 없이 슈팅을 시도했고 공은 대만 수비수의 몸에 맞고 굴절돼 행운의 골로 연결됐다.

추가 득점도 빠르게 나왔다. 전반 12분 김국진이 추가골을 터뜨려 스코어를 2-0으로 만들고 일찌감치 승기를 굳혔다. 백청송이 오른쪽 측면에서 완벽한 택배 크로스를 박스 안으로 올려준 것으로 쇄도하던 김국진이 컷백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용남 북한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은 경기 종료 후 공식 인터뷰에 참석해 "우리 선수들이 하나로 단합을 잘했다. 모두가 감독이 의도한 대로 잘 뛰었다"며 "그동안 (아시안게임) 준비와 훈련을 열심히 많이 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승리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신용남 감독을 제외한 북한 남자 축구 선수단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북한 선수들은 게임이 끝난 뒤 믹스트존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빠르게 지나쳐 버스에 탑승했다.

이날 북한과 대만의 조별리그 1차전 현장 취재에 나선 남한 취재진은 총 5명이었다. 이들 모두 게임 종료 후 믹스트존에서 결승골의 주인공 리조국을 비롯해 추가 득점을 기록한 김국진, 경기 내내 번뜩이는 플레이를 선보였던 백청송, 주장 장국철 등 북한 대표팀 주축 선수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북한 선수들은 믹스트존에서 대기 중이던 남한 기자들이 승리 소감과 경기 내용에 대한 질문을 건넸지만 대부분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내부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취재 요청에 응하지 말고 믹스트존을 지나치라는 지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던 막내급 선수들 중 한 명이 "승리했는데 기분이 어떠냐"라는 남한 기자의 질문에 발걸음을 옮기며 "좋았습니다"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북한 선수단 관계자도 마찬가지였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믹스트존을 지나가던 코칭스태프로 추정되는 중년 남성이 "승리를 축하한다"는 남한 기자의 덕담에 "고맙습니다"라고 답했을뿐이다.

신용남 감독도 최대한 절제된 표현과 단답으로 공식 인터뷰에 임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었던 선수들의 플레이, 앞으로의 각오만 짤막하게 얘기했다.

북한 축구의 강점, 추구하는 전술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도 "아직 경기가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하기는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16강전에서 남북대결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기장에서는 꼭 이기도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로 끝을 맺었다.



한편 북한 남자 축구는 오는 21일 오후 8시30분 같은 경기장에서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과 2차전을 치른다. 이어 24일 오후 5시엔 인도네시아와 조별리그 최종전을 벌인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축구는 총 23개국이 출전해 A, B, C, D, E, F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른다. 각 조 1, 2위는 16강에 직행하고 3개국이 편성된 D조를 제외한 A, B, C, E, F조 3위 중 상위 4개 팀이 와일드카드로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구조다.

최근 D조에 편성됐던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이 갑작스럽게 불참하면서 홍콩, 우즈베키스탄이 16강에 자동 진출하는 행운을 얻었다. 북한은 1차전 승리로 승점 3점을 확보, 키르기스스탄을 꺾는다면 조기에 16강을 확정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AFP/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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