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9 07:41

[주목 F-1 드라이버] 코바야시, 아시아 최초 우승을 꿈꾼다

기사입력 2011.05.31 08:08 / 기사수정 2011.05.31 08:08

서영원 기자

[엑스포츠뉴스=서영원 기자] 2011 F-1이 개막이후 6번의 레이스를 거쳤다. 모두가 세바스티안 베텔, 페르난도 알론소, 루이스 해밀턴을 주목하지만 묵묵히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드라이버들도 있다. F-1 24인의 드라이버 중 유일한 아시아인 카무이 코바야시는 향후 F-1 입상대에서 만나볼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드라이버로, 한국인 드라이버 탄생을 꿈꾸는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선수다. 카무이 코바야시, 과연 그는 누구인가.

 

레이스를 좋아했던 평범한 소년

코바야시는 1986년 오사카 인근의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초밥집을 운영하는 아버지 덕분에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며 자라났다. 그가 뛰어본 스포츠들은 야구, 축구, 육상, 그리고 카트였다. 특히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의 팬인 코바야시는 랜디바스(80,90년대 한신 4번타자)를 꿈꾸며 베트를 휘두르는 야구 소년이었다.

일본의 스포츠 인기상 대게 운동신경이 뛰어난 학생들은 야구 그리고 축구 순으로 진출하기를 원하지만 코바야시는 달랐다. 코바야시의 어린시절 일본은 아시아인 최초 드라이버 나카지마 사토루를 배출했고 34살의 나이로 로터스 혼다에 데뷔한 나카지마는 F-1에서 최고 4위까지 기록하며 일본의 모터스포츠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런 나카지마를 보고 자라던 코바야시는 9살의 나이에 소년 카트로 모터스포츠에 발을 딛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카지마의 레이스 영상을 보여주었고 부자는 F-1에 도전해보자고 굳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코바야시의 가족들은 코바야시를 위해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코바야시의 레이스는 그렇게 시작됐다.  

F도요타, F르노, F-3 그리고 F-1까지

코바야시의 재능은 바로 드러났다. 그리고 코바야시는 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아이기도 했다. 코바야시가 레이스를 접할 때는 ‘선구자’ 나카지마가 있었고 90년대에는 스즈키 아구리, 2000년대에는 사토 타쿠마가 각각 3위 입상에 성공하며 아시아인 드라이버의 경쟁력을 어필하는데에 성공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경과 코바야시 스스로의 노력에 맞불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총 5년간 코바야시는 단계별로 직선으로 올라가는 고속성장을 보여주었다. F도요타와 F르노를 연달아 2년간 우승을 하며 급성장했고 유럽 레이싱 세계로 진출하게 된다.

 

<사진: 코바야시의 인상적인 데뷔를 알리는 기사(F-1공식홈페이지 캡쳐)>

이탈리아선수권과 F르노를 우승하며 더블챔피언을 기록한 그는 F-3마져 쓸어담으며 F-1진출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손을 내민 곳은 당시 F1에 참전하던 토요타모터스였다. 

토요타는 2008년 코바야시를 팀의 세 번째 드라이버로 기용하면서 언제든 출전이 가능하도록 맹훈련을 시켰다. 팀의 세번째 드라이버라는 위치는 백업 멤버지만 언제든 출전이 가능해야했고 테스트 드라이버의 역할까지 더해저 연습량은 실전에 투입되는 것 못지 않았다. 하지만 2009년 데뷔를 목전에 앞두고 모기업 토요타는 리콜 사태, 기술력 부족, 자금의 중과부적으로 F-1 철수를 결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따랐다. BMW사우버에서 바로 출전을 준비할수 있게끔 입단 계약이 성사됐고 3번째 드라이버로 대기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8전 브라질그랑프리 직전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티모 클록을 대신해 출전하게 된 것. 무난한 데뷔전을 치른 코바야시는 다음 라운드인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6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 F-1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찾아온 2010년 코바야시는 아시아인 최초로 풀타임을 소화한 드라이버가 됐다. 그리고 2011년 현재 그는 매 라운드별 포인트를 쌓아나가며 훌륭한 드라이버가 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스타 4인에 선정 그리고 만화책 주인공으로

상승세를 거듭하는 코바야시는 NHK가 선정한 일본이 자랑하는 스포츠스타 4인에 선정되었다. 골프의 이시카와료, 야구의 다르빗슈 유, 축구의 혼다 케이스케와 함께 뽑힌 그의 일본내 영향력은 상당하다. 

만화 작가 마시히로 소다는 코바야시의 선수로써 도전기를 그린 만화 '카페타'를 출간했다. 아직도 연재 중인 이 만화는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며 사이버 포뮬러, 이니셜D와 함께 레이싱 만화의 표본으로 꼽힌다. 

 

<사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카페타'의 오프닝 장면(캡쳐)>

이 만화의 제작 과정에는 작가의 엄청난 조사가 있었다. 마시히로는 2003년 코바야시가 유럽에서 한창 유망주로써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때부터 눈 여겨 보아 많은 팩트를 수집, 만화책을 발간하기에 이르었다. (현재도 발간 중이며 코바야시의 F-3진출까지 이야기가 진행됐다)

코바야시는 마시히로에게 고마운 표현을 남기며 종종 자신의 F-1경기에 초대를 하고 있다.

아시아 최초 우승 꿈만은 아니다

우리에겐 부럽지만 코바야시는 우승 가능성을 항상 보여주고 있다. 레드불, 페라리, 맥라렌, 메르세데스의 거대 머신들에 둘러쌓여 아직은 힘들지만 늘 포인트를 챙기는 성실함으로 그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코바야시는 올 시즌 개막전을 제외한 나머지 5번의 그랑프리에서 총 19점의 포인트를 얻으며 분전하고 있다. 게다가 F-1의 전설 미하엘 슈마허보다 높은 포인트를 보여주며 총 랭킹 10위에서 도약을 꿈꾸고 있다. 올해 머신 개발에 예산을 삭감한 모기업 사우버와 다소 평균 이하의 피트스톱을 보여주는 피트크루의 수준을 고려할 때 앞으로 엄청난 발전력을 보여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후한 편이다. ESPN F-1은 “코바야시가 좀더 좋은 머신을 타고 피트크루의 지원을 받는다면 지금보다 몇계단 높은 순위 진입이 예상된다”며 백그라운드의 개선이 필요함을 어필했다. 언론의 예상으로 코바야시는 현재기량만 유지할시 향후 2시즌 이내 메르세데스, 르노와 같은 지원이 좋은 팀으로 이적이 예상된다고 BBC스포츠가 밝혔다.

자기의 기량으로 머신의 빈약함을 커버하는 드라이버는 많지 않다. 비록 부족한 순위라 할지 몰라도 코바야시는 분전하고 있다. 아시아인 최초 우승이 꿈만은 아니다. 그리고 코바야시로 인해 우리도 한국인 드라이버의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 F-1 무대를 밟은 아시아인 드라이버의 총 8명이며 그중 6명이 일본인이다. 나머지 두명은 인도 국적이다. 아시아인 최고 기록은 3위이며 한 시즌을 소화해낸 드라이버는 코바야시 카무이의 2010시즌이 유일하다. 이는 1987년 아시아인 최초 F-1진출이후 23년 만에 이루어낸 기록이다.



서영원 기자 pres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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