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20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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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의 몰락과, 한국의 첫 경험

기사입력 2006.02.06 08:46 / 기사수정 2006.02.06 08:46

손병하 기자

FIFA는 천신만고 끝에 열렸던 지난 브라질 월드컵 대회의 성공으로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세계가 전쟁과 경제난 등 외부적인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월드컵과 올림픽 등의 스포츠 축제는 세계인의 환영과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었고, 국력과 상관없이 치러지는 순수한 경쟁인 스포츠에 많은 나라가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월드컵은 지난 브라질 대회에서 무려 1,337,000명의 관중을 동원하는 메가톤급 인기를 과시하며, '전쟁의 상처'로 신음하던 전 세계를 축구로 치유하게 해주었다. 이후 FIFA는 어떠한 외부의 영향이나 악재에도 굴하지 말고, 세계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을 굳게 지킬 것을 결의하게 된다.

앞서 열렸던 4번의 월드컵이 대회의 뿌리를 내리게 하고 단일 종목의 세계 제패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월드컵의 근간이 되었다면 스위스 월드컵 대회부터는 본격적으로 세계를 삼켜버리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스포츠 축제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제5회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개최 배경

▲ 스위스 월드컵 포스터

fifaworldcup.com
1946년 7월 25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FIFA 총회는 전쟁으로 중단되었던 월드컵의 4회 대회와 5회 대회의 개최국을 결정하기 위해 열렸다. 4회 대회는 전쟁의 상흔이 가장 적었던 남미로 결정되어 유치 신청을 했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중 브라질로 결정되었다. 비교적 순조롭게 4회 대회의 개최국을 정했지만 문제는 5회 대회의 개최였다.

당시는 유럽과 남미의 '월드컵 개최권 분활'이라는 암묵적인 명분이 있어, 4회 대회를 남미가 유치했기 때문에 5회 대회는 유럽의 국가 중 한 나라가 개최를 해야 했다. 당시 유럽과 아메리카를 제외한 제3세계의 국가들(아시아, 아프리카 등)은 경제적이나 스포츠 적으로 낙후된 후진국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런 큰 대회의 개최능력이 없어, 결정 대상에서 제외되었었다. 결국, 유럽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피해가 가장 컸던 유럽은 어느 나라도 유치 신청을 하지 않아 FIFA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전쟁의 후유증도 그렇지만, 바닥을 치며 급락한 경제 한파로 인해 월드컵 유치에 필요한 자본을 마련하기 힘들었던 경제적 이유가 더 컸다. 여기에 전쟁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국가 기본 기간시설이 망가진 상황이라 유럽 국가들은 월드컵 개최에 혀를 내둘렀다.

룩셈부르크에서 어려움에 빠졌던 FIFA는 구세주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중립국으로 전쟁에 피해를 전혀 보지 않은 스위스의 존재였다. 게다가 스위스는 FIFA의 본부가 있는 곳이고 5회 월드컵이 열릴 1954년은 FIFA의 탄생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하여 FIFA는 경제적 정치적 손실이 가장 적고 여러 가지의 의미와 명분을 내세울 수 있는 스위스를 제5회 대회의 개최지로 전격 결정하게 되었다.

1946년 총회에서 8년 뒤에 있을 5회 대회의 개최지까지 선정한 FIFA는 이후 계획적이고 질서있게 경쟁력 있는 개최국을 선정할 수 있었고, 축구의 양대산맥인 유럽과 남미의 최고의 축구축제 개최권 분할도 숨통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 우승을 차지한 서독 선수들
ⓒ fifaworldcup.com
▲월드컵 뒷얘기

-베른의 난투극

헝가리와 브라질의 8강전. 유럽 챔피언인 헝가리와 남미 최강 브라질의 한판 대결은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다. 많은 축구팬이 명승부를 보기 위해 베른으로 모였지만, 최악의 난투극만을 보고 말았다. 이 최악의 난투극은 경기 시작 3분 만에 헝가리의 히데쿠티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발단 되었다. 히데쿠티가 슈팅 하는 순간 그를 방어하려던 브라질 선수가 히데쿠티의 바지를 잡아당겼고, 히데구티는 찢어진 유니폼 바지 사이로 시원함을 느껴야 했다.

곧 헝가리와 브라질 선수들의 말다툼이 시작되었고, 이는 금세 선수단의 패싸움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흥분한 관중이 운동장에 난입하고 경찰과 대회 진행 요원들이 이를 말리면서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후반에도 브라질의 산토스와 헝가리의 보시크가 주먹다짐을 벌여 퇴장당하는 등,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경기로 평가받고 있다.

-월드컵 결승에서 멈춘 '최강' 헝가리의 연승 행진

왜? 하필 월드컵 결승이었을까? 지금까지 많은 나라가 아쉽게 월드컵 트로피를 놓쳤지만, 1954년 스위스 대회에서의 헝가리만큼 안타까운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당시 헝가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팀이었다. 당시 획기적인 4-2-4 전술로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았던 헝가리는 월드컵 결승전까지 32연승을 구가했었다. 그야말로 최강 중 최강이었다.

결승에서 맞붙은 서독은 조별 예선에서 헝가리가 무려 8-3으로 대파했던 팀. 헝가리의 우승은 당연시되었었다. 하지만, 브라질과 펼친 8강 난투극의 후유증으로 헝가리는 월드컵 우승과 A-매치 연승 기록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 브라질과의 경기 이후 준결승에서 우루과이와 연장전 접전 끝에 힘겹게 승리하는 등, 점점 체력적 한계를 드러낸 헝가리는 결승에서 서독에게 2-3 역전패를 당해 우승 트로피를 양보해야 했다.

이후 헝가리는 1956년 구소련의 침공으로 인하여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서 축구도 함께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헝가리의 축구 영웅 푸스카스는 스페인으로 국적을 옮겨 1958년 월드컵에선 스페인 대표로 참가하기도 한다.

-스페인, 가장 억울한 본선 탈락.

월드컵 지역 예선 결과가 발표되자 스페인은 쾌재를 불렀다. 월드컵 본선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한 터키와 같은 조가 되었을 뿐 아니라, 6조에는 스페인과 터키 단 두 나라밖에 배정되지 않아 터키만 이기면 본선 진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스페인에 웃지 않았고, 스페인은 가장 억울한 본선 탈락을 해야만 했다.

1954년 1월 스페인에서 열린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6조 첫 번째 경기에서 스페인은 터키를 4-1로 대파하며 신바람을 냈다. 하지만, 터키에서 치러진 2차전에서 0-1로 패하면서 재경기에 들어가야 했다. 지금 같으면 골 득-실 차로 스페인이 당연히 진출했겠지만, 당시엔 그런 세부 규칙이 확정되지 않아 재경기를 치렀다. 재경기에서 2-2로 비긴 양 팀은 결국 추첨을 통해 본선 진출국을 가렸고, 스페인은 억울하게 터키에 본선 티켓을 양보해야 했다.

▲한국, 월드컵 도전사

◇첫 경험,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스위스 월드컵-한국 출전 기록

*한국 경기 기록

-2조-
1954.6.17 [취리히] 헝가리 0 : 9 패
1954.6.20 [제네바] 터 키 0 : 7 패
(서독과는 경기를 펼치지 않음)

*출전 선수단

단 장: 김윤기
감 독: 김용식
G K: 홍영덕, 함흥철
D F: 박규정, 이종갑, 박재승
M F: 주영광, 이상의, 김지성,
강창기, 민병대, 한창화
F W: 이수남, 박일갑, 정남식, 최정민,
성낙운, 정국진, 최영근, 이기주, 우상권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한국의 첫 월드컵 출전으로 더욱 잘 알려진 대회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은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일본을 누르고 본선행 티켓을 따낸 한국은,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초라하게 돌아와야 했었다.

하지만, 기나긴 여행 피로와 처음으로 해외에서 경험하는 대회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월드컵 본선에 발을 내디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대회였다. 게다가 한국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던 서독과 헝가리는 이 대회 우승과 준우승팀이다 보니, 한국의 예선 탈락은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다.

수치스러운 기억이긴 하지만 한국은 스위스 월드컵을 시작으로 오는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총 7번 월드컵에 진출하는 아시아 유일의 국가가 되었고,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6회 연속 본선 진출을 기록하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스위스 월드컵은 한국에 있어 세계로 내디딘 소중한 첫 발이였다.

▲ 본선 경기 장면
ⓒ fifaworldcup.com

◆대회 기록

*대회기간 : 1954.6.16-1954.7.4(19일간)

*참 가 국 : 대한민국,오스트리아, 벨기에, 브라질, 체코슬로바키아, 잉글랜드, 프랑스, 헝가리,
이탈리아, 멕시코, 스코틀랜드, 스위스, 터키, 우루과이, 서독, 유고슬라비아 (16개국)

*개최도시 : 취리히,제네바, 로잔, 베른, 바슬, 루가노 등 6개도시

*총 득 점 : 140골, 평균득점 5.38골

*총 관 중 : 943,000명, 평균관중 36,269명

*득 점 왕 : 콕시스(11골. 헝가리)

*결 승 전 : 서독 vs 헝가리( 3 : 2, 서독 우승)

한국의 첫 출전으로 더욱 오래 화자 되고 있는 스위스 월드컵은, 이후 월드컵의 근간이 되는 조별 예선과 결선 토너먼트라는 확고한 틀이 자리 잡혔다는 점에서 월드컵 역사에 있어 중요한 대회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최강' 헝가리의 몰락으로 세계 축구 열강들의 최고를 위한 자존심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었던 대회였다.



손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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