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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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하지만

기사입력 2020.04.21 20:27



지난 20일 ‘2020 우리은행 LCK Spring Split’ 플레이오프 1R DRX와 담원의 경기가 열렸다. DRX는 치열한 풀세트 접전 끝에 3대 2로 담원을 잡아냈다.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두 팀의 대결, 심지어 풀세트 접전까지 가는 매치였기에 이번 경기는 많은 화젯거리를 만들어냈다.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이번 경기. 이러한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진 데에는 양 팀의 탑솔러 너구리 장하권 선수와 도란 최현준 선수의 활약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너구리 선수는 이번 매치의 아쉬운 패자가 됐다.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와일드카드전에서 KT롤스터를 잡아냈고, 정규리그 3위 DRX도 거의 잡을 뻔 했지만 한 끗 차이로 실패했다.

비록 패배는 했지만 이번 매치에서 너구리 선수의 활약은 빛이 났다. 단순히 기량이 뛰어나서 빛이 난 것이 아니라 인게임 상에서 불리하고, 세트스코어 상 불리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용맹함’을 계속 보여줬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트스코어 2대0으로 몰린 이후에도 그의 공격성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팀내 독보적인 에이스라는 책임감에 짓눌려 위축된 플레이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의 날카로운 공격성(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이에 너구리 선수는 2대0으로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세트스코어를 2대2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도란 선수는 플레이오프 1차전 단연 최고의 화제인물이다. 특히 그의 5세트 이렐리아 픽은 이번 대결 최고의 화젯거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스플릿에서 많은 성장을 했고 활약도 펼친 도란 선수이지만 그의 이렐리아는 정말 불안한 픽이라는 평을 많이 받았다. 해설진들 역시 그의 이렐리아 픽이 ‘리그 오브 레전드’ 커뮤니티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에 대해 궁금해 할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세트 접전일 때 그 불안한 픽으로 승리를 쟁취했고, 가장 핫한 화제의 인물이 됐다.

LCK 최고의 탑솔러 중 한명인 너구리 선수 상대로 이렐리아를 써서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터프한 상황에서 도박수라고도 할 수 있는 선택을 감행해 성공까지 시킬 수 있는 강심장이라는 사실을 이스포츠팬들에게 어필했다. 무엇보다 담원 같은 강팀 상대로 다전제에서 승리한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이번 시즌이 도란 선수의 첫 주전 시즌이라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사람이 불리할 때, 위태로울 때, 한번만 미끄러지면 끝날 수 있을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태도는 위축되는 것이다.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고, 좀 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고, 위험해 보이는 시도를 하지 않으려 한다.

게임, 이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 이번 ‘2020 우리은행 LCK Spring Split’에서도 전황이 어려울 때 위축된 플레이를 펼치는 팀들, 선수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시즌엔 불리한 팀이 특별한 묘책 없이 드래곤을 손쉽게 유리한 팀에게 내주는 경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드래곤 4스택을 쌓아야 경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드래곤의 영혼’이 완성되기도 하고, 영혼이 완성되기 전에는 드래곤 몇 스택 정도 내준다고 해도 당장 패배로 연결되진 않기 때문이다. 물론 드래곤을 내주는 판단이 승리를 위한 전략적인 판단이 될 때도 많았지만, 패배하는 시간을 잠시 늦출 뿐인 판단이 될 때도 적지 않게 있었다.

멋지지 않은 판단, 멋지지 않은 플레이를 볼 때 많은 팬들이 해당 팀과 선수를 비판하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그러한 모습은 인간이라면 할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인데, 보는 입장에선 재미와 감동이 없을 뿐. 인간이라면 응당 할 수 있는 못나고 위축된 모습을 보려고 LCK를 시청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실 확정적인 패배로부터 잠시라도 도망칠 수 있는 선택, 승리에 가까워지진 않을지언정 욕먹을 가능성은 줄어들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인생의 많은 순간에 꽤나 도움이 된다. 부끄러울지언정 제법 합리적이기는 하다는 이야기.

도란 선수는 이렐리아를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최소한 (패배했을 시) 진 경기 최대의 역적이라는 비판은 면할 수 있었다. 이렐리아만 아니라면 도란 선수는 팀이 졌다고 해도 ‘아직 신인이고 상대가 너구리니까’라는 변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너구리 선수는 (너구리답지 않은) 조심스러운 플레이을 펼쳐 고립데스로 대표되는 ‘너구리가 너구리 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있었다.

프로는 승리와 패배가 거의 전부이긴 하지만, 졌을 때 들을 수 있는 비판을 줄이는 선택지(=가장 큰 비판으로부터 도망치는)도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지일 때가 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그러한 선택지를 선택하지 않았다. 너구리 선수는 불리할 때도 본인다운 플레이로 상황을 돌파했고, 도란 선수는 그런 너구리 선수 상대로 (씨맥 김대호 감독 오피셜) 가장 극단적인 챔피언 이렐리아를 선택해 승리를 쟁취했다. 이러한 선택을 통해 (승패와 무관하게) 양팀의 탑솔러 모두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수가 됐다.

비록 승패는 갈렸지만 이스포츠팬들이 지켜볼만한 가치가 있는 경기, 지켜볼만한 가치가 있는 리그를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어제 두 선수는 좋은 동반자였다고 할 수 있다. 도망칠 수도 있는 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는 모습으로 재미를 뽑아내고 감동을 자아낸 그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편, ‘2020 우리은행 LCK Spring Split’ 플레이오프 1라운드 승자 DRX는 4월 22일 수요일 오후 5시 정규 리그 2위 팀인 T1과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맞붙는다.

결승전은 오는 4월 25일 토요일 오후 5시에 진행되며 정규 리그 1위인 젠지e스포츠 팀과 플레이오프 2라운드의 승자가 2020 LCK 스프링 우승 타이틀을 놓고 대결하게 된다. 2020 LCK 스프링 우승 팀에게는 상금 1억 원(총상금 3억 원)과 함께 LCK 대표로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tvX 이정범 기자 leejb@xportsnews.com / 사진 = DRX-담원게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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