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4-30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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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신애 대표 "심재명·오정완 보며 꿈꿨던 제작자…계속 달려야죠" [엑's 인터뷰]

기사입력 2020.03.02 18:35 / 기사수정 2020.03.02 18:28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자신감 있고, 당당했다. 2월 10일, 국민들에게 남다른 기쁨을 안겨줬던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의 아카데미 4관왕 석권의 뒤에는 제작자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 해 칸국제영화제부터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기생충'과 함께 한 긴 레이스를 마친 곽 대표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순간 울컥했겠다'는 말에도 "봉 감독님 대신 대리수상을 많이 했어서 괜찮았다"는 대답으로 특유의 유쾌한 에너지를 자랑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특별한 경험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까지 4관왕을 휩쓴 '기생충'의 기록에는 아시아 여성 제작자로는 최초로 작품상의 영예를 안게 된 곽 대표의 영광 역시 함께 포함돼있다.

영화잡지 키노의 기자로 활동 후 제작사 청년필름, LJ필름의 기획마케팅실을 거쳐 2010년 바른손이앤에이에 입사해 2013년 대표로 선임됐다. '가려진 시간'(2016)과 '희생부활자'(2017), 4D VR영화 '기억을 만나다'(2018) 등을 제작한 후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 속 주인공이 됐다.

영화 일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만두지 않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며 "업계에서도 제 실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런 타이틀을 쥔 사람이 없어지는 건 아쉽지 않을까요?"라며 여유 있는 넉살도 부리는, 곽 대표의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 '기생충'과 함께 한 여정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외국에 오랜 시간 머물렀어요.


"새벽 4~5시께 눈이 떠지더라고요. 지금은 미국도 아닌데.(웃음) 기절하듯이 또 회사 소파에 누웠다가 다시 눈 뜨고, 그렇게 있다 보면 오전 10시부터 또 졸리고…그러고 있어요. 점점 돌아오겠죠.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이번 출장이 총 40일이었거든요. 40일 출장을 다녀온 것은 저도 처음이에요. LA와 뉴욕을 왔다 갔다 하고 런던을 또 다녀오고…. 시차가 많이 달라서 그럴 때 좀 고생했죠."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했어요. 곽 대표는 아시아 제작자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한 사람이 됐고요.

"그러니까요.(웃음) 저는 제가 최초였는지, 그런 것을 몰랐거든요. 막상 최초라고 하니까 '어쨌든 좋은 일이 된 것이구나' 싶기는 했어요. 저도 어릴 때 심재명 대표님(명필름)이나 오정완 대표님(영화사 봄)같은 제 앞 세대의 영화 제작자 분들을 보면서 '나도 제작자가 될 수 있겠지'하는 생각을 해왔었거든요. 제가 실력만 갖추고 있다면요. 여성 제작자, 그것도 동양 여자 제작자가 나와서 상을 받았다는 모습만으로도 나름대로의 좋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죠."

-작품상 수상 소감 때는 울컥하지 않았나요.

"아니에요.(웃음) 제가 작년에 감독님이 미국에 가 계시고 할 때 대리 수상을 많이 했었거든요. 작품상도 그 때 많이 받았었고요. 수상 소감을 말하다 울컥했을 때는 여성영화인상 시상식 때….(웃음) 주위에서 수상 소감 때 어머니나 자식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라고 하셨었는데, 스스로 통제가 안돼서 눈물이 정말 수도꼭지처럼 나오더라고요. (곽 대표는 지난 해 12월 2019 여성영화인상 시상식에서 제작자상을 수상한 후 소감 중 아들과 남편 등을 언급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 때 딱 한 번 울컥했던 것 말고는 없었어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수상은 어느 정도까지 예측했었나요.

"여태까지 벌어지지 않던 일이잖아요. 저 역시도 쉽게 '받을 수 있을거야'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죠. 국제장편영화상 경우는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긴 했어요. 저희끼리도, 시상식 일주일 쯤 전이었을까요. 국제장편영화상 말고 어떤 상을 받을 것 같은지 내기를 했었는데 각본상이 가장 많았어요. 감독상을 꼽은 사람도 있었고, 저와 송강호 선배님은 작품상을 꼽았었죠. '못 먹어도 고'란 생각으로요.(웃음) 내가 건 것을 다 잃더라도 작품상에 걸겠다 했었죠. 그만큼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또 그렇다고 기대를 크게 할 수도 없었어요. 다만 감독님에 대한 현지 영화인들이나 감독과 배우 같은 동료들, 비평가나 기자들까지 '기생충'을 정말 좋아해주는 것이 옆에서 보이니까, '우리에게 안 주는 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던 것이죠."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에 이어 감독상까지 봉준호 감독의 이름이 불렸죠. 그리고 작품상 수상 후 무대 위에 섰고요.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그리고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여진 기분이 든다"는 소감을 남겼어요.

"감독상을 받고 나서, 작품상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현장에서 들더라고요.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올랐을 때) 정신은 괜찮은데 입이 너무 말라서 안 움직였고요.(웃음) 말을 하려고 입을 움직이는데 이상해서, 너무 흉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우리 영화가 상을 받는다면 정말 새 역사를 만든 것인데, 그렇다면 투표를 해 준 그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것 아니겠나요. '정말 용기 있다, 이 변화에 두려움 없이 한 표를 던지는구나' 싶었어요. 진짜 리스펙트(Respect), 땡큐(Thank you) 그런 느낌이었죠."

-수상 소감을 못 다한 것 같다는 아쉬움은 없었나요.

"없었어요.(웃음) 감독님이 상을 자꾸 받으셨잖아요. 감독님은 안 하신 말 위주로 수상소감을 하시려고 하거든요. (아카데미 시상식 때는) 배우들을 향한 인사까지 정말 싹 다 하셔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한 문장이 남았었어요. 그래서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죠. 우리 영화의 대사처럼, 시의적절하고 상징적인 변화의 역사가 만들어진 것 같다는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어요."


-평소 만나고 싶었던 감독 등 유명 인사들도 현장에서 만나는 기쁨도 있었을 것이고요.

"저는 오히려 브래드 피트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분들은 '잘 생겼구나' 이 생각이 들고 끝인데,(웃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 같은 분들을 보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그 분이 지인들과 앉아계시는 상태여서 그 때 끼어드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다음에 또 만날 날이 있겠지 했는데 못 만났어요. 그래도 로버트 드 니로, 노아 바움백 감독과는 사진도 찍고…할 건 다 했네요.(웃음)"

-늘 단정하게 차려입은 정장 차림도 눈에 띄었어요. 공식적인 자리에 서는 것인 만큼 이 부분도 보이지 않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었을 것 같고요.

"꾸밈 노동이 힘들었어요.(웃음) 최세연 의상실장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실장님이 시키는 대로 했어요.(웃음) 의상은 협찬을 받아준 경우도 있었고, 메이크업의 경우도 많이 하지는 않지만 현지에서 스태프들을 써서 하려면 비용 같은 것들이 또 만만치 않거든요. 그래도 맨 얼굴로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국내에서 메이크업 실장님을 만나 화장품을 검사 받고….(웃음) 실장님이 시키는 대로 배우고, 필요한 것들은 다시 사고 그렇게 준비했죠."

-봉준호 감독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본 사람 중 한 명이죠. 옆에서 바라본 봉준호 감독은 어땠는지요.

"사람이 재밌잖아요.(웃음) 칸영화제 때부터 생각해보면, 우리 영화를 수입해 간 나라별로 8~9명씩 둘러앉아서 하루 종일 인터뷰를 하거든요. 그 때 모습들을 제가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이 몇 장 있는데, 보고 있으면 봉준호 감독님이 조금만 재미있는 멘트를 해도 정말 좋아하는 것이에요.(웃음) 말씀하시는 화법도 그렇고, 다른 감독님들에 비해 덜 심각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닌데, 무겁지 않게 말하는 그런 스타일을 좋아해주는 것이 느껴졌죠. '기생충'도 나름대로 진지한 이야기인데 무겁지 않게, 유머러스하게 잘 이야기해주시잖아요.(웃음)"

-앞으로 제작자로 해야 할 고민들도 많아졌을 것 같아요. '기생충'을 뛰어넘을 작품을 제작하는 것처럼요.(웃음)

"'기생충'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웃음) 봉준호 감독님은 본인의 20년의 인생을 바쳐서 이룬 영화 인생의 성과가 지금의 '기생충'인 것이잖아요. 저는 2015년 초, 본격적으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기생충'을 시작했는데 '내가 제작자인 것이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다른 사람이 하면 더 잘 될 수 있을 텐데' 그런 걱정에 대한 판단이 잘 안됐었어요. 발전시키다 멈춘 작품들도 있었고, 그런 생각이 반복되면서 '영화 일을 그만둬야하나' 싶은 때도 있었죠. 그렇지만 어떤 영화인이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인데, 그것을 놓아두고 일을 그만두겠나요.(웃음) '이것까지는 하자'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고, 2017년과 2018년은 거의 '기생충'에 올인하다시피 했거든요. 과정이 정말 즐거웠고 행복했고,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기도 했죠. 좋은 것 투성이었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지금도 영화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드나요.(웃음)

"아니요.(웃음) '앞으로 5년에서 10년 더 해봐야지'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 나름대로의 큰 변화죠. 그리고 업계에서도, 제 실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이런 타이틀(아카데미 수상)을 쥔 사람이 없어지는 건 아쉽지 않을까요?(웃음)"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연합뉴스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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