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2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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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동부를 지켜온 힘 '제6의 수호신들'

기사입력 2006.10.17 23:37 / 기사수정 2006.10.17 23:37

김종수 기자

원주동부 역사속 주요 식스맨들 돌아보기 

[엑스포츠뉴스 = 김종수 기자] 몇 시즌 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강호' 원주동부, 이번 시즌 역시 삼성과 함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지목되며 변함없는 위용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프로농구가 첫 깃발을 내걸 때만 해도 원주 동부(당시 나래블루버드)는 언론으로부터 그야말로 찬밥신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스포츠의 불모지인 강원도 지역을 연고로 실업약체인 한국·산업은행 농구단을 인수했으며 알려진 선수라고 해봤자 '3점슛왕' 정인교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강병수, 장윤섭, 이인규 등 타팀에서는 식스맨 자리도 꿰차기가 쉽지 않은 선수들은 똘똘 뭉쳐 준우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내며 원년최고 돌풍의 팀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었다. 물론 여기에는 원년만이 가지고 있는 적은 경기수와 '득점왕' 해리스, '최우수용병' 윌리포드로 이어지는 용병풍년이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어쨌든 가장 약해 보였던 팀이 준우승까지 차지한 것은 분명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세 번째 시즌 이후 대대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농구천재' 허재를 데려와 원주뿐만 아니라 전국구 팀으로의 재구성에 성공한다. 그러나 시즌을 거듭할수록 풀리지 않는 원주의 아킬레스건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허약한 벤치였다.

'에이스'인 허재는 물론이거니와 주전포워드인 양경민 조차 점차 노장의 반열에 들어서는 상황이었으나 주전멤버조차 힘겹게 구성해놓은 상황인지라 당장의 해결은 쉽지 않았고, 이후 이 문제는 원주 동부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남아 바로 직전 시즌까지만 해도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올 시즌은 다르다. 김주성과 왓킨스의 '트윈타워' 양경민과 손규완의 '쌍포'를 그대로 유지한 가운데 이세범, 배길태, 강대협, 김영만등 준척 급 선수들을 무더기로 영입한 것이다. 여기에 '올라운드 플레이어' 정훈까지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넉넉한 백업멤버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식스맨! 항상 원주동부를 힘겹게 만들었던 세 글자,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은 원주 동부는 식스맨 층이 얇았을 뿐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동안 원주동부를 지켜왔던 '제6의 수호신들', 그들의 정성어린 활약상을 원주동부의 굴곡진 식스맨 역사 속에서 돌아보았다.

'성실맨' 장윤섭 (은퇴)

정인교, 강병수, 이인규 등과 함께 원년 준우승의 공신인 그는 프로 첫 해 '수비5걸'에도 들어간바 있는 알짜선수였다. 국민대 출신으로 187cm의 단신포워드인 장윤섭은 신장의 열세를 악착같은 수비와 정확한 슈팅으로 커버해나가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갔으나 양경민, 신종석 등 신장과 운동능력을 갖춘 젊고 유능한 후배들에 밀려 결국은 벤치멤버로서도 중용되지 못하며 조용히 은퇴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원년과 두 번째 시즌 이외에는 별다르게 활약을 하지 못했던 선수인지라 필자 역시 그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은데, 유독 한 경기 만큼은 지금까지도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다. 1999년 1월 16일에 펼쳐진 원주 동부(당시 나래)와 LG전, 엎치락뒤치락하며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하던 양 팀은 종료직전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접전을 펼쳐나간다.

원주 동부는 '에이스 용병' 토니 해리스가 34득점(3점슛 6개)을 기록하며 공격을 이끌었고, LG는 '일대일의 달인' 버나드 블런트가 무려 50득점을 폭발시키며 괴물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경기에서 결국 원주 동부가 84대 83, 1점차로 승리를 가져가는데, 이날의 승부에 마침표를 찍은 선수는 '농구천재' 허재도, '용병에이스' 해리스도, '총알탄 사나이' 신기성도 아닌 잊혀져가고 있던 벤치멤버 장윤섭이었다.

1점차로 뒤지고 있던 경기종료 7초전, 장윤섭은 상대선수의 파울로 자유투를 얻었고, 자주 출장하지 않아 경기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두 개의 슛을 모두 성공시키며 팀의 역전승을 이끌게 된 것이었다. 장윤섭은 결승골 포함 총 7득점을 해내며 이날 역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터보 가드' 김승기 (은퇴)

1972년 2월 26일생, 182cm, 87kg, 별명 터보가드, 프로의 시작은 삼성에서 시작했지만 김승기는 동부맨이라는 이미지가 굉장히 강하다. 물론 전성기를 동부에서 보낸 탓도 있겠지만 때로는 리딩가드, 때로는 슈팅가드로 심지어는 상대 가드를 묶는 수비수의 역할까지… 주전 같은 식스맨으로 활약한 선수이다.

허재, 양경민과 함께 트레이드를 통해 원주 동부로 들어온 이후 열악하기 그지없는 벤치 현실 속에서도 곳곳의 구멍난 포지션들을 메워주며 팀의 소금 같은 존재로 자리 매김 했던 그, 어려운 시절 누구보다도 고생이 많았음에 창단 후 첫 우승이라는 영광의 순간에도 당당히 공신의 하나로 기억될 수 있었다.

중앙대학교 재학시절, 양경민, 조동기, 김희선, 김영만, 홍사붕 등 호화멤버일색인 라인업 속에서도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잃지 않았었고, 넘치는 파워와 잠시도 쉬지 않고 코트를 뛰어다니는 불파이터의 기질로 말미암아 '터보가드'라는 영광스러운 닉네임까지 얻었던 그, 국가대표로 국제무대에 섰을 때는 국내선수 중 그나마 파이팅을 보여줬던 많지 않은 이 가운데 하나로 자주 거론되었었고, 삼성입단 당시만 해도 김현준, 문경은 등 호화멤버를 진두지휘할 주전 가드로 각광을 받았었다.

'컴퓨터 가드' 이상민과 함께 대학리그를 양분했던 '터보가드'의 명성을 찾지 못하고 은퇴의 수순을 밟고 말았지만 헌신적으로 코트를 누볐던 그의 열정만은 오랫동안 코트에 남아있을 것이다.

'2라운드의 보물' 신종석(현 KT&G)

원주 동부의 식스맨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이름, 신종석!

대구 오리온스와의 2002-2003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3점포 5방을 포함 17득점을 2쿼터에 집중시키며 팀의 우승에 큰 공헌을 했던 그는 2004-2005시즌까지 꾸준하게 벤치의 핵으로 원주동부를 지켜왔던 선수이다. 패스, 리바운드, 수비, 슛 등 다양한 재능을 갖추고 있는 만능선수임였다. 사실 그는 98신인드래프트에서도 2라운드 7순위로 지명을 받은 정말 기대하지 않던, 말 그대로 '진흙 속의 진주'이다.

2라운드에서만 해도 박도경, 황인성, 남진우, 김병천, 강기중, 정락영 등이 먼저 지명을 받았으며 원주 동부에서 그를 택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정도로 아슬아슬한 운명을 겪었었다. 역시 1라운드 7순위로 지독한 저평가 속에서 원주 동부에 입단했던 신기성과 함께 첫해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신종석은 언론으로부터 '신씨브라더스'라는 공동 닉네임까지 얻으며 충실히 자신의 자리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비교적 좋지 않은 순위에서 향후 팀의 주축이 되어주었던 선수를 무려 둘이나 뽑았으니 말이다. 사실 신종석에 관한 기억을 회상해보면 공격적인 면 하나만 놓고 봤을 때는 현재보다도 신인 때가 더 돋보였던 것 같다.

신인 첫해, 광주 나산전에서 15득점(3점슛 3개), 대구 동양전에서 19득점(3점슛3개), 8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수시로 10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당시로서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던 양경민의 몫까지 분담했던 그는 들쭉날쭉한 출장시간과 공격에만 집중할 수 없는 팀 사정 때문에 6득점, 2.3리바운드로 시즌을 마치지만 슈터로, 수비수로 '전방위 활약'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시즌 종료 후 '식스맨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당시의 신종석은 3점의 정확도에서 결코 양경민에 뒤지지 않는 수준을 보여줬었는데 이후 슈터라는 이미지가 퇴색될 만큼 그 재능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기도 하다. 어느 한 부분에만 특별한 재능이 있어 집중조련을 받는 스타일이 아닌, 너무도 다양하게, 하지만 약간은 어설프게(?) '올라운드'였던 그의 플레이가 결국은 식스맨 이상의 위치까지 올라가는데 발목을 잡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쉬운 이름' 이형주(현 KCC)

원주 동부의 빈약했던 식스맨 역사를 감안했을 때 이형주라는 선수는 참으로 아깝게 느껴지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182cm의 단신포워드이기는 하지만 정확한 3점포를 무기로 연세대학교의 주포로 활약하던 그는 일명 '많이 쏘고, 많이 실패도 하고, 많이 성공도 하는' 주변에서 밀어주는 에이스급 슈터였다.

대학선발에도 꼬박꼬박 선발되며 한국의 외곽을 담당했던 경력의 소유자인지라 원주 동부는 200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7순위로 그를 선발한다. 단신 슈터라는 핸디캡이 있는 선수였으나 과거 신기성과 신종석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원주 동부에는 럭키 7순위지명이라는 묘한 행운의 징크스가 있었고, 그런 만큼 많은 기대를 받았었다.

전창진 감독 역시 그에게 식스맨 이상의 주전까지 기대를 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개막을 앞두고 부상을 당한 그는 제대로 활약을 펼쳐볼 사이도 없이 침체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야 했고 상무입대 후 이동준과 함께 KCC의 장영재와 트레이드되고 만다. 이형주 입장에서는 고향인 전주팀에서 제2의 농구인생을 펼칠 수 있어 플러스적인 요인도 있다하겠지만, 대학 때의 좋은 기량을 프로에서는 전혀 펼치지 못한 아쉬움 역시 분명히 있을 것이라 보인다.

이형주를 보면 과거의 명슈터 정인교가 생각난다. 단신에 운동능력도 썩 좋지는 않지만 정확한 슛으로 어필하는 그런 선수, 하지만 속공위주의 요즘 농구에서 그 같은 스타일의 단신슈터는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조성원이나 황진원 같은 경우 단신슈터이면서도 뛰어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한 스피드가 있어 활용도가 높지만 이형주, 그리고 그와 비슷한 신동한, 이정래 같은 경우는 작은 선수가 한 가지 특기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보여주고 있는 한 예가 아닌가 보인다. 현 소속팀인 KCC의 선수층이 부쩍 얇아진 만큼 이런 기회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아 대학 때의 명성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그 외… 언제나 한결같이 묵묵히 궂은일을 맡아주던 '순둥이센터' 정경호, 기본기가 좋았던 포워드 장영재, 중요할 때 미들슛 한방씩을 꽂아주던 윤제한, '당찬 신인' 이상준 등도 허약한 원주동부의 벤치를 지켜주던 핵심선수들이었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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