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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미지근한 월드컵 분위기…'그래도 괜찮다'

기사입력 2010.06.09 15:08 / 기사수정 2010.06.09 17:20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월드컵이 다가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외국 유명 베팅업체의 월드컵 배당률이다.

이번에도 윌리엄힐, 레드브록스, 스포츠베팅 등 외국 유명 베팅업체들은 월드컵 출전국과 조별편성이 정해지자마자 발 빠르게 우승은 물론 조별리그 순위, 득점왕, 개별경기 배당률 등을 발표했다. 현재 우승 배당률에 있어선 '우승후보 0순위' 스페인과 브라질이 각각 4/1, 9/2를 받았고,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역시 대한민국의 우승 배당률. 대한민국은 스위스와 함께 나란히 250/1을 받았다. 전체 32개국 중 공동 24위. 우리 아래로는 슬로바키아(300/1), 일본(400/1), 북한(2000/1) 등 각 조 최약체들이 포함되어 있다.

B조 1위를 예상하는 베팅 업체들의 대답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르헨티나가 2/5의 배당을 받았고, 나이지리아와 그리스가 각각 9/2, 8/1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은 9/1의 고배당을 받았다. 조 1,2위에 관계없이 16강 진출 여부로만 따지는 배당률에서도 아르헨티나는 1/9, 나이지리아 1/1, 그리스 7/5, 대한민국 21/10을 받았다. 그만큼 각 베팅업체가 한국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를 보고 '역시 이번 월드컵에서도 16강 가능성은 낮구나!' 내지는 '이번에도 안돼'라는 식의 판단은 지나치게 섣부르다.

보통은 베팅업체의 배당률이 객관화된 자료에 기초한 판단에서 나온 것이란 신화에 빠지기가 쉬운데, 베팅업체의 배당률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대상팀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란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베팅하는 일반 대중에게 아시아 축구 대표팀은 유럽, 남미, 아프리카 팀보다 약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유일한 자대륙 대회였던 2002한일월드컵을 제외하면 조별리그에서 통과한 것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본선에서 약했다. 이런 편견은 때론 실제 전력을 넘어서는 굳은 확신으로 자리 잡는다.

베팅업체는 확률뿐 아니라 베팅 자체의 수요에 따라서 배당률을 정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팀에 대해 돈을 거는 사람들의 믿음이 강력하거나 약할 경우 한쪽에 베팅이 몰리는 상황에 발생하고, 그에 따라 베팅업체는 손실을 막기 위해 배당률을 높이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한다. 따라서 베팅업체의 배당률에서 한국이 B조 최약체로 평가받는 것은 전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아니 모든 베팅업체가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그리스-대한민국 순의 배당률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의 축구 전문가들이나 축구 전문지 중 '한국이 조 2위, 심지어는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라는 전망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전문가나 전문지는 축구 내적인 관점에서 조별리그 전망하지만 베팅업체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배팅업체의 배당률에 대해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예전만 못한 2010 남아공월드컵에 대한 국내 열기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 대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서 '만들어진 월드컵 열기'만 공허하게 맴돌 뿐, 대중에 의한 자생적인 응원 열기는 2002년과 2006년에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다. 천안함 사태나 침체된 내수 경기 등 사회경제적인 요인에서 이를 분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베팅업체의 배당률이 보여주는 타국인의 시선 못지않게, 낮은 국내 축구팬과 일반인들의 기대치 때문이 아닐 까란 생각이 든다.

역대 대표팀 중 가장 많은 유럽리그소속 선수를 보유하고 있고, '영원한 아시아의 라이벌' 일본의 언론이 자발적으로 '역대 최강의 전력'이란 평가를 받은 우리 축구 대표팀에 대해 이런 낮은 기대는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홈에서 열리지도 않을뿐더러, 2002년의 기적 덕분에 높아진 기대치만큼이나 실망감과 허탈감도 컸던 4년 전의 기억 탓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2002년 6월의 뜨거웠던 함성과 기적같은 승리의 연속으로 4강 진출의 쾌거를 일궈냈던 기억은 4년 전 우리 모두를 다시 한번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첫 승 상대로 꼽던 토고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강력한 우승후보 프랑스와 1-1 무승부를 거둘때만해도 다시 한번 기적의 역사가 시작되는 듯 했지만, 결과적으로 스위스에 안타까운 패배를 당하며 원정 첫 16강 진출이란 목표는 좌절됐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새벽에 벌어진 스위스 전이 끝난 뒤 오전 시간의 차분하다 못해 고요한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오랜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현실과 맞닥뜨린,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그 때부터 이미 이번 월드컵에 대한 기대와 열기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대표팀은 이번에도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와 같은 쉽지 않은 상대들을 만났고, 비관적인 평가가 많은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일본 언론의 호들갑 정도는 아닐지라도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우리 대표팀의 전력이 결코 예전처럼 만만한 조별 최약체 급이 아니란 사실이다. 향후 10년간 한국 축구의 자랑이 될 것이 분명한 '양박-쌍용'은 물론 이영표, 안정환, 이운재처럼 외국에서도 인정받는 베테랑들, 그리고 이승렬, 김보경, 김재성 등 젊은 재능이 조화로운 전력을 갖춘 것이 우리 대표팀이다. 또 한번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팀이다.

여담 한가지. 8년 전, 월드컵을 앞두고 한 유명 피로회복제 광고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 광고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는 성우의 광고 카피와 함께 전광판에 '8강, 4강'이란 글자를 내보내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광고는 금새 당시 네티즌과 여론에 뭇매를 맞았다. 여지껏 월드컵 1승도 못한 나라에서 무슨 8강이고 4강이냐, 현실감각 없는 이들이 만든 광고다라는 비난을 넘어선 조소를 받은 것이다. 결국 이 광고는 월드컵 직전 전광판에 나오는 글자를 1승과 16강으로 바꿔 다시 전파를 탔다.

그러나 한달여 뒤, 광고 속 전광판 글자는 모두 현실이 되었고,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란 말을 비웃던 이들은 서울월드컵경기장 한쪽에 새겨진 '꿈은 이루어진다'를 보며 가슴뭉클해 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국민 모두가 함께 광장에 나와 즐기는 축제 문화가 없는 우리나라에 4년 만에 찾아온,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월드컵 응원의 축제는 큰 기회이자 축복이다. 6월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달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호프집이나 영화관도 좋지만, 그보다는 광장에 쏟아져 나온 붉은 물결과 함께 믿음과 뜨거운 열정을 준비하는 건 어떨까.

지구 반대편에서 최선을 다해 뛸 선수들에게 박수와 함성을 보내보자. 우리는 할 수 있다.

[엑스포츠뉴스 브랜드테마] 전성호의 스카이박스. 대한민국 축구를 가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진=축구 대표팀, 붉은악마 ⓒ 엑스포츠뉴스 DB]

 



전성호 기자 pres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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