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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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토크](20) 실패로 끝난 2006 브라질

기사입력 2010.03.25 08:54 / 기사수정 2010.03.25 08:54

박문수 기자

-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한 2006 브라질 대표팀

[엑스포츠뉴스=박문수 기자] 2006 독일 월드컵은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이 대회는 유로 2006이란 명칭을 얻을 만큼 유럽팀의 강세가 돋보였으며(4강에 진출한 팀이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이란 점에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 대회 직전까지 우승 후보 0순위로 분류된 브라질은 5위라는 다소 초라한 성적과 함께 대회를 마감했다.

당시 브라질은 골키퍼 디다를 시작으로 마르코스 카푸, 루시우, 주앙, 호베르투 카를루스, 이메르송, 제 호베르투, 호나우지뉴, 카카, 아드리아누, 호나우두라는 초호화 베스트 멤버를 자랑했다. 또한, 이들의 백업으로 호비뉴, 시시뉴, 지우베르투 시우바, 주니뉴 페르남부카누 등 만만치 않은 멤버를 보유하며 역대 최고의 브라질 대표팀이란 찬사를 얻었다.

그런데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명암이 갈렸다. 유능한 선수들의 존재는 팀의 전력을 강화하기는커녕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속담처럼 원활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키 플레이어 카카와 호나우지뉴는 동선이 겹쳤으며 정적인 투 톱 호나우두와 아드리아누는 문전 앞에서 자주 고립됐다.

그렇다면, 2006 브라질 대표팀의 실패 원인은 무엇일까? 이번 삼바 토크 20편에서는 브라질 대표팀의 월드컵 역사 마지막 편으로 당시 대표팀을 논하겠다.

지난 1994 미국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에 대한 분석에서 언급했듯이, 2006 브라질 대표팀 사령탑 카를루스 파헤이라는 안정성을 추구하며 효율적인 축구를 보여준 감독이다. 2002년 우승에 성공한 펠리페 스콜라리의 후임으로 브라질을 이끈 그는 월드컵 2연패라는 부담에도, 부임 초기부터 그의 축구 철학을 대입하며 짜임새 있는 브라질을 만들고자 시도했다.



▲ 2004년 남미 예선과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의 브라질 대형

파헤이라는 남미 예선 중반부터(2004년) 브라질의 기본 틀을 마련했는데, 이 팀은 스콜라리의 스리백을 대신해 전통적인 포백을 다시 사용했으며 중앙 미드필더의 숫자를 늘렸다. 이 때문에 그는 에드미우송을 포백 위에 바로 위치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면서 중앙 미드필더로 제 호베르투와 주니뉴를 배치했다. 이들의 윗선에는 호나우지뉴와 카카를, 최전방 포워드로는 호나우두를 내세웠다.

이를 세분화하자면 에드미우송과 제 호베르투가 수비적인 임무를 맡으면서 상대와의 중원 싸움에서 활발하게 움직인다면, 주니뉴가 공격의 연결 고리를 담당하면서 카카와 호나우지뉴를 보좌했다. 카카는 호나우지뉴보다는 아래에 있으며 전매특허인 스루패스를 통한 공격의 흐름 조절을 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직접 공격에 가담했다. 호나우지뉴는 호나우두의 투 톱 파트너이자 횡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그에게 기회를 만들어줬으며, 호나우두는 득점에 주력했다.

그러나 기존의 파헤이라 철학과 함께 안정성을 갖춘 브라질에 거대한 딜레마가 발생했는데 이는 아드리아누호비뉴의 존재였다.

아드리아누는 2003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호나우두의 대체 자로서 주목을 받은 이후, 파르마와 인테르 밀란에서 폭발적인 활약을 선사하며 차세대 브라질의 기대주로 부상했다. 유럽인의 신체적 능력과 브라질리언의 기술력이 더 해졌다는 평가와 함께 당대 최고의 포워드 중 하나로 불린 아드리아누의 존재는 브라질 대표팀의 판을 다시 짜게 만들었다.

실제로 파헤이라는 호나우두가 부재한 상황에서 치른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아드리아누와 함께 우승에 성공하며 이후, 그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컨페드컵 당시 브라질은 4-2-2-2와 4-3-2-1의 중간 형태로 대형을 짰으며 호비뉴, 호나우지뉴, 카카로 이어지는 라인은 종횡무진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며 조국의 우승에 크게 이바지를 했다.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농락하는 모습은 월드컵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삼바 축구의 위엄을 제대로 드러냈다.

당시 아드리아누는 시시뉴의 패스를 받고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팀의 선제 득점을 올렸으며 공격 1선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적극적인 모습까지 보여줬으니 모든 감독의 사랑을 독차지할만한 인재였다. 물론 최근의 아드리아누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거북이이다. 지난 아일랜드전에서 드러나듯이 전방에서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의 곰 같은 그는 이 당시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로 실력이 추락했다.

한편, 이 대회는 호비뉴에 대해서도 재평가를 할 수 있었다. 산투스에서 지에구 히바스, 엘라누와 함께 순항하며 제2의 펠레 혹은 가린샤로 불린 호비뉴는 어린 나이에도, 대표팀 선배들 사이에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가벼운 발놀림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농락하는 모습과 공격 상황에서 횡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호나우지뉴와 카카에게 종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장면은 인재 발굴에 대한 기쁨보다는 전술을 또 다시 바꿔야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을 낳았다.

결국, 파헤이라는 4-2-2-2로 전술을 바꿨는데 이는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는 성공을 거뒀지만(당시 전술과 파헤이라의 전술은 차이가 있지만, 히벨리누와 가린샤, 토스탕과 펠레를 공존하게 했다는 것과 호나우지뉴와 카카, 호나우두와 아드리아누를 동시에 내세운 점은 유사하다) 기대를 모은 황금 4중주의 1982 스페인 대회에서는 실패했다.

1982 대표팀의 실패 원인은 지난 삼바 토크 17편에서 밝혔듯이, 텔레 산타나가 이끄는 지쿠와 소크라테스의 브라질은 수비 상황에서 뒷공간을 자주 내줬으며 수비에 가담하는 선수가 적었기 때문에 상대를 압박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남기며 이탈리아에 무릎을 꿇은 팀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상태에서 파헤이라는 월드컵에 나서게 됐고 이는 곧바로 브라질의 부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지난 2002 월드컵과 확연히 달라진 색깔로 대회에 나섰음을 의미했으며, 1골이 먹히면 2골을 넣는다는 다소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전락했다.

실패로 끝난 2006 독일 월드컵



▲ 2006 월드컵에서 파헤이라가 선보인 브라질의 두 가지 전술

크로아티아, 호주, 일본과 함께 F조에 속한 브라질은 3전 전승으로 16강 진출에는 성공하지만, 경기 내용은 형편없었다.

첫 경기 크로아티아전은 호나우두가 비대해진 몸으로 문전 앞에서 자주 고립됐으며 대회 직전까지 MVP 0순위로 꼽힌 호나우지뉴도 부진했다. 운이 좋게 카카의 중거리 슈팅으로 1-0으로 이겼지만, 경기를 지켜본 관계자들은 브라질이 우승 후보라는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득점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크로아티아에 완전히 밀렸다.

2차전 호주전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조직력을 바탕으로 F조 2위를 차지했던 히딩크의 호주는 브라질을 적극적으로 압박하며 공격의 흐름을 끊었다. 행운의 브라질은 호나우두의 패스를 받은 아드리아누의 골과 후반 교체 투입된 호비뉴의 강력한 슈팅이 우측 골대에 맞고나서 프레드의 발에 연결되며 2-0으로 이겼지만, 경기 내용은 나아지지 않았다. 왼쪽을 선호하는 호나우지뉴와 카카는 불협화음을 일으켰으며 호나우지뉴가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서 공을 배급하는 우스운 광경까지 연출했다.

3차전 일본전은 브라질의 자존심을 살린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주전 선수들을 제외하며 조국의 전설적인 스타 지쿠가 이끄는 일본에 맞섰지만, 일방적인 공격 끝에 4-1로 승리했다. 만일 가와구치 골키퍼의 눈부신 선방이 없었다면 일본은 1-n(자연수)이란 굴욕적인 스코어로 패했을 것이다.

한편, 이 경기는 과거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즉 초창기에 파헤이라가 썼던 전술을 채용한 브라질은 지난 호주전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호비뉴라는 동적인 선수가 기존의 아드리아누와 호나우두의 정적인 포워드보다 낫다는 걸 입증했다. 호나우두 뒤에 있던 호비뉴는 지난 2005 컨페드컵처럼 카카, 호나우지뉴와 그라운드를 활발하게 움직였으며 득점은 없었지만, 아드리아누보다는 훨씬 위협적이었다. 이 때문에 복수의 브라질 언론은 아드리아누를 대신해 호비뉴를 투입해야 된다는 의견을 게재했었다.

일본에 큰 점수 차로 승리하며 16강에 진출한 브라질은 가나에 3-0으로 이겼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또 다시 실망감을 줬다. 호나우두가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을 때만 해도 경기 분위기는 브라질의 몫이었지만, 가나 선수들은 적극적인 압박을 통해 브라질과의 중원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고 브라질을 줄곧 위협했다. 아사모아 기안이 득점 기회를 날리고 나서 퇴장을 당하는 역적 짓만 하지 않았다면, 가나의 8강행도 가능했을 것이다.

문제는 프랑스와의 8강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파헤이라는 기존의 4-2-2-2를 대신해 4-3-2-1로 경기에 나선다. 경기 직전 인터뷰에서 "브라질은 디에고 마라도나도 대인 방어를 하지 않았다”라며 지단에 대한 경계심을 부인한 파헤이라는 정작 중앙 미드필더의 숫자를 늘리면서 지단을 봉쇄하고자 했으나 이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아드리아누를 대신해 주니뉴를 투입한 브라질은 지단의 발놀림에 농락을 당했지만, 단 1실점만 허용한 것은 어찌 보면 운이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훗날 밝혀진 경기 직전까지 음주 가무에 취한 선수들의 나태한 정신은 당연한 패배를 불러왔다.

이 경기에서 브라질이 패한 요인은 단 한 가지였다.

브라질은 미드필더 싸움에서 프랑스에 밀렸으며 카카와 호나우지뉴가 비에이라와 마케렐레에 완벽하게 봉쇄당하며 공의 배급을 전개하지 못했다. 이는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은 브라질 선수들의 심리적 압박을 낳았으며, 조급해진 상황에서 짜임새 없이 행해지는 공격력은 비효율적이란 결과와 함께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게 했다.

지단의 원맨쇼도 눈부셨지만, 그는 직접적인 득점을 만들지 못하며 2% 부족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몸놀림과 브라질 미드필더들의 정신을 빼놓는 감각적인 패스는 ‘축구는 역시 아트 사커다’라는 수식어에 어울렸지만, 이 경기의 진짜 MVP는 비에이라와 마케렐레였다.

당시 프랑스는 4-2-3-1전술로 대회에 임했는데 예선 초반 고전한 것과 달리 비에이라와 마케렐레가 살아나면서 스페인과 브라질, 포르투갈에 연승했다. 특히 브라질전에서 카카와 호나우지뉴를 완벽하게 차단한 이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경기의 진정한 수훈갑이 됐다.

카카가 가벼운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브라질의 공격 전개를 아예 막은 점은 그들의 위력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 브라질은 호나우두가 수비라인까지 내려오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음에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의 배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프랑스에 주도권을 내줬고 유효 슈팅이 거의 없는 굴욕적인 경기 내용과 함께 패했다.

지난 1982 브라질의 전철을 밟은 파헤이라의 브라질은 프랑스에 경기력에서 완벽하게 밀리는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며 8강에서 화력을 멈췄다.

만일 선수들의 컨디션이 조금만 좋았다거나 파헤이라가 당근보다는 채찍질 하며 라커룸 분위기를 정비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아쉽지만, 브라질은 실패했다. 그렇지만 이 대회에서 브라질은 한 가지의 교훈을 얻었다. 지난 대회에서 드러나듯이(특히 1994년과 2002년)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기 보다는 하나의 팀으로서 월드컵에 나선다면 브라질은 우승이란 성과를 얻었다.

대회 이후, 파헤이라가 밝혀 듯이 자신의 축구 철학을 버리고 더욱 공격적이고 이름 값있는 선수들을 기용해야 되는 행복한 고민은 과감하게 배제해야 될 것이다.

 


 

 




▶ 기자와 브라질 팬 페이지 회원들과 뽑은 브라질 역대 베스트일레븐

클라우디우 타파렐: 브라질을 대표하는 수문장 중 하나인 타파렐은 1994 미국 월드컵 결승 승부차기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며 조국의 4번째 우승에 크게 이바지했다. 게다가 골키퍼 개인 통산 월드컵 최다 출전자란 기록도 그가 왜 브라질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인지 대변한다.

마르쿠스 카푸 : 월드컵 결승 무대를 세 번이나 연속으로 밟은 전설의 오른쪽 풀백 카푸는 꾸준한 기량으로 후배들의 자리를 독차지한 이기적인 선수였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팀플레이에 적극적이며 주장으로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모습은 매우 훌륭했다. 이러한 꾸준함이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와 조르지뉴보다 그를 더욱 높게 평가하는 요인일 것이다.

루시우 : 현재 진행형인 전설적인 수비수이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인테르로 이적한 첫 시즌, 팀이 4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크게 이바지한 것에서 그의 진가가 드러난다고 보면 된다. 대인 방어는 자타공인 현존 최고이며 공격 가담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도 일품이다. 게다가 브라질의 2002 한일 월드컵 주축이니 더는 언급하지 않아도 그의 가치를 인정할 것이다.

알다이르 : AS 로마의 6번은 영구결번인 알다이르는 뛰어난 축구 지능으로 자신의 단점을 메우며상대 공격진을 제압한 선수였다. 대표팀 일원으로 월드컵 우승도 경험했으며 90년대 말까지 브라질 부동의 중앙 수비수였다.

호베르투 카를루스 : 지난 10년간 브라질을 대표한 왼쪽 풀백인 카를루스는 가장 완벽한 축구 선수 중 하나였다. 카푸와 함께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그라운드를 누볐으며 날카로운 킥력까지 갖췄으며 카푸에 이어 브라질 A 매치 출장 기록 2위에 올랐다.

카를루스 둥가 : 현재 브라질 대표팀의 감독이며 1994년과 98년 월드컵에서 주장으로 활약했다. 상대 중원을 집어삼키는 적극적인 움직임과 동료에게 사기를 복 돋아주는 카리스마를 지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 박지성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날카로운 킥력을 바탕으로 동료에게 공격의 물꼬를 틀어주는 역할도 수행했으며, 때에 따라서 직접적인 공격 가담을 시도했는데 이것은 브라질의 또 다른 무기로 자리 잡았다.

제르손: 1970 브라질이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클로도아우두와 함께 브라질의 중원을 책임진 선수였다. AC 밀란의 안드레아 피를로처럼 빌드업 과정에서 팀 공격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플레이메이커의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수비력까지 준수한 만능 플레이어였다.

가린샤: 걸음걸이마저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신체적으로 열악한 선수였지만, 자신의 신체적 단점을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소아마비 때문에 오른쪽 다리는 굽어 있었고 왼쪽 다리는 6cm나 작았던 그는 믿기지 않는 주력을 바탕으로 탁월한 방향 전환과 드리블, 바나나 킥으로 불리는 위협적인 중거리 슈팅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지쿠: 프리킥과 드리블, 패스가 완벽한 선수인 지쿠는 무관의 챔피언이라 불리는 텔레 산타나의 1982 월드컵 핵심 멤버이기 때문에 월드컵 우승이 없다. 그럼에도, 상대 수비진의 혼을 빼놓는 예술적인 발놀림과 예측 불가능한 패스, 대포알 같은 슈팅과 정확한 프리킥 등은, 진정한 마에스트로였다.

펠레 : 브라질 축구는 펠레의 등장 이후 진정한 강호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던 브라질이 펠레의 발끝에서 3번의 월드컵을 우승하며 줄리메 컵의 영구 주인이 된 점이 그의 상징성에 대한 단적인 예이다. 너무나도 완벽해서 불가사의하며 창조적이고 충격적인 그의 재능은 오늘날 브라질 축구의 진정한 아버지로 볼 수 있다. 173cm라는 단신에도, 빼어난 개인기와 드리블 능력, 동물처럼 감각적인 공격에서의 반응속도와 침착성, 가속력, 점프력, 헤딩력 등, 펠레는 공격수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지닌 선수다.

호나우두 : 월드컵 최다 골의 주인공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다. 초기에는 뛰어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무너뜨리는 드리블러로 주목받았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득점력이 더해졌다.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그의 결정력은 갑상선 비대증 때문에 거대해진 신체에도, 폭발력을 보여주며 코린치안스의 지난 시즌 코파 두 브라질과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의 우승을 이끌었다. 1998월드컵에서 브라질이 프랑스에 0-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대회 MVP에 선정됐고 2002년 월드컵에서는 8골을 기록하며 득점왕과 대표팀의 우승을 석권했다.

[사진=2006 FIFA 독일 월드컵 16강전에서의 호나우두 ⓒ 오 글로부 캡쳐 / 도움=브라질 당사 (club.cyworld.com/selecao)]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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