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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피겨 인사이드] '피겨 대모' 이인숙, "김연아-이규혁, 평소대로만 해다오"

기사입력 2010.02.12 12:18 / 기사수정 2010.02.12 12:18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김)연아가 등장하고 난 뒤, 음지에 있었던 한국 피겨 스케이팅은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올림픽은 매우 의미가 크지요. 연아의 기량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평소대로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12일(한국시간) 개막되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누구보다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가 있다. 현 국민생활체육회 스케이팅연합회장인 이인숙(55) 씨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피겨 스케이팅 외길 인생을 걸어온 '산증인'이다.

또한, 빙속 국가대표인 이규혁(32, 서울시청)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이규혁이 4번이나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던 모습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바라봤던 이가 바로 그였다.

이인숙 회장은 피겨 스케이팅의 격동기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던 시절, 명맥을 이끌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활동해왔다.

7세 때부터 시작한 피겨 스케이팅은 그의 인생에서 뗄 수 없는 '공기'가 됐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인숙 회장은 대학시절까지 선수생활을 한 뒤, 곧바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피겨 여왕' 김연아(20, 고려대)를 지도했던 류종현(42), 변성진(40), 지현정(39), 김세열(38) 코치 등도 모두 이인숙 회장의 손을 거쳐간 제자들이다.

또한, 방송 해설가인 방상아(44)와 국제심판인 고성희(37) 등도 모두 이인숙 회장의 수제자들이었다. 현재 피겨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피겨 지도자들을 대부분 육성해낸 그는 지도자는 물론, 피겨 행정가 및 방송 해설가로도 폭넓게 활동해 왔다.

이인숙 회장은 "한국 피겨가 관심을 많이 받게 된 날이 온 점은 매우 뜻깊다. 마침내 올림픽 메달을 바라볼 수 있다는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지금의 현상을 보면 그저 연아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올림픽을 앞둔 소감에 대해 밝혔다.

피겨 스케이팅 외길 인생, 그 찬란하고 아련한 추억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레저 활동을 도모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피겨의 저변을 넓히는 것은 물론, 유망주 발굴에도 전념하고 있다.

"엘리트 중심이 아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스케이팅의 저변을 넓히는 일이 저희 단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스케이트를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수준이 아니라 유망주 발굴에도 신경을 쓰고 있죠. 연아도 전문적인 선수로 시작하기 전에 저희가 주최하는 대회에 두 번 출전했었어요"

현재는 지도자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한때는 국내 선수 대부분을 육성해낸 '명 코치'였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는 그의 수제자였던 변성진을 출전시켰고 1992년에는 이은희(37, 현 피겨 코치)를 데리고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 참가했다. 또한, 남자 싱글부분에서는 정성일을 1988년 캘거리, 1992년 알베르빌, 그리고 1994년 릴리함메르까지 세 번 연속 출전시켰다.

그리고 김연아의 첫 번째 스승으로 유명한 류종현 코치도 이인숙 회장의 수제자였다. 특히, 이 회장은 류종현 코치를 남자 싱글 선수가 아닌, 아이스댄싱 전문 선수로 키워냈다.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북한의 페어 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북한에 페어 스케이팅이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는데 연기도 매우 훌륭했습니다. 또한, 그 대회에서 메달도 획득했는데 구 소비에트연방에서 페어 스케이팅을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북한도 저 정도로 하는데 우리도 못할 것이 있겠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페어 팀을 만들어보자는 계획을 가지고 당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던 류종현을 섭외했어요"

그러나 생각보다 쉽게 페어 팀은 완성되지 못했다. 빙판 위에서 이루어지는 리프트(남자 스케이터가 여자 스케이터를 들어올리는 기술)도 요령이 있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쌀가마 들어올리듯이 리프트를 시도해 애로가 많았다고 이 회장은 회고했다.

페어의 기초를 익히기 위해 미국까지 갔지만 좋은 페어 팀은 쉽게 완성되지 않았다. 결국, 아이스댄싱으로 전향한 류종현 코치는 박윤희(36, 현 피겨 코치)와 짝을 이루게 됐다. 변변찮은 페어와 아이스댄싱팀이 없었지만 이 회장과 선수들의 노력으로 인해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아이스댄싱팀이 탄생하게 됐다.

또한, 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할 수 있는 여자 싱글 선수들도 이인숙 회장의 조련을 통해 완성됐다.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때는 변성진 코치와 지현정 코치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죠. 이 선수들이 활약했을 때의 막내가 바로 현재 국제심판으로 활동 중인 고성희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계보가 알베르빌 올림픽에 출전했던 이은희로 이어졌지요"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에 이윤정이 참가했지만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는 여자 싱글 계보가 끊겼다. 하지만, 남자 싱글 부분은 차남인 이규현(30, 현 피겨 코치)을 데리고 출전했다.

이규현은 정성일 이후, 한국 남자 싱글의 계보를 이어나갔다. 1998년 나가노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에 출전했던 이규현은 이인숙 회장이 완성한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박빛나(26, 현 피겨 코치)가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출전에 성공하면서 나가노의 아쉬움을 달랬다. 특히, 박빛나는 이인숙 회장의 지도를 받던 변성진 코치의 애제자였다.

비록, 좋은 성적을 못 냈지만 국제무대에서 선전한 제자들은 현재 피겨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월 초에 열린 '제64회 전국종합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는 13세의 초등학생인 김해진(13, 관문초)이 여자 싱글 우승을 차지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현재 김해진을 지도하고 있는 한성미(30) 코치도 이인숙 회장의 제자였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3위에 오른 박소연(13, 나주초)도 이 회장의 수제자였던 지현정 코치가 지도하고 있다.

"현재 유망주들을 지도하고 있는 제 옛 제자들을 보면 모두 대견스럽게 보입니다. 이들이 모두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훌륭한 선수를 많이 양성했으면 좋겠어요"

한 치도 앞을 알 수 없는 올림픽, 김연아-이규혁 "평소대로만 해다오"

김연아가 피겨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살던 곳에 가까이 있던 과천에 아이스링크가 개장하면서 어린 김연아는 그곳을 찾아가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었다. 그리고 각기 분업화된 체계적인 기본기 훈련을 받은 김연아는 '현존하는 최고의 스케이터'로 성장하게 됐다.



당시 과천아이스링크의 시스템은 스케이팅, 점프, 프로그램, 안무 등을 각기 다른 지도자가 가르치는 구조로 형성돼 있었다. 이러한 점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이인숙 회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 과천시민회관에 있는 스포츠센터를 국민생활체육회가 5년 동안 위탁 관리하게 됐어요. 제가 체육센터의 이사로 있었는데 피겨에 대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스링크에 관심이 가게 됐죠. 류종현과 변성진을 비롯한 제 제자들을 데리고 와서 선수들을 육성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신채점제가 도입된 환경에서는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지도방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피겨 스케이팅은 빙질이 좋을 때 타게 했어요. 빙질이 좋지 않으면 새 기술을 익히는데 방해가 됐기 때문이죠"

피겨를 처음 배우던 김연아는 류종현 코치에게 스케이팅과 지상훈련을 배웠고 변성진 코치에게는 프로그램을 지도받았다. 그리고 김연아의 점프는 오지연(42) 코치가 가다듬었다. 김연아는 이러한 시스템에서 성장한 '1세대 유망주'였다.

"처음에는 현장 코치들이 '연아란 아이는 정말 대단하다'라고 귀띔을 많이 해줬어요. 실제로 보니까 점프를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체형도 동양인 체형이 아닌, 서구 쪽의 체형을 갖추고 있었어요. 연아를 데리고 첫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인 헝가리 주니어 그랑프리(2004-2005 시즌, 당시 이인숙 회장은 국제심판 겸, 팀 단장으로 이 대회에 참가함) 대회에 출전했는데 트리플 점프 5가지를 완벽하게 뛰는 상태라서 내심 5위안에 들것이라는 예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메달을 획득하고 나니 정말 감회가 새롭더군요"

김연아는 처음으로 출전한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그것도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다. 그 전까지 트리글라프 트로피 대회와 골든베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김연아는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주니어 그랑프리 첫 대회를 우승으로 장식했다. 이날(2004년 9월 5일)의 우승은 김연아의 첫 번째 주니어 대회 우승이자 한국 피겨 스케이팅 최초의 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 우승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현재, 김연아는 모든 대회를 휩쓸었고 마지막 고지인 올림픽만을 남겨놓고 있다. 이 회장은 올림픽 금메달도 중요하지만 한국 피겨의 위상을 여기까지 끌어올린 공로도 칭찬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이 정도까지 온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죠. 또한, 피겨 스케이팅이 이 정도의 관심을 얻게 된 점도 연아의 공이 컸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연아에게 고마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현재 연아가 지니고 있는 실력은 세계 최고입니다. 하지만, 올림픽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지요.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줘야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대로만 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예상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연기에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심정은 비단 김연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남인 이규혁은 5번째 올림픽에 도전하고 있다. 늘 세계 정상에 있었지만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어서 매우 안타까웠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도 이규혁이 자랑스럽다고 어머니인 이 회장은 털어놓았다.



"월드컵 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대회에서 (이)규혁이는 좋은 성적을 꾸준히 냈습니다. 그리고 기록도 계속 경신했기 때문에 여한이 없죠. 하지만,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올림픽만 5번 출전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면 더욱 자랑스럽겠죠.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돌아왔으면 합니다"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발전을 위해선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김연아란 세계챔피언이 등장하면서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입지는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선수들에 대한 지원과 시스템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김해진과 박소연 같은 유망주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유망주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또한, 이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죠. 한국 피겨의 발전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려면 피겨 인들의 '소통'과 '협력'이 필요합니다. 저희 단체와 연맹은 물론, 코치, 학부모들의 의견이 조화롭게 형성돼서 좋은 선수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선수들에 대한 '맞춤형 교육'도 이 회장은 강조했다. 신채점제의 시대가 이미 오래전에 도입된 이상, 이제는 천편일률적인 지도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장단점이 다르듯, 그 선수에 적합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그 선수에게 전지훈련이 필요한지의 이유도 명확하게 알아야 하고 그것이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지도 따져봐야 해요. 이러한 방침 없이 일방통행적인 지도만을 고집한다면 선수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그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기술인지 안무인지를 확인하고 이 부분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되겠죠"

1908년 스케이팅이 국내에 도입된 이래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역사는 100년의 세월을 거쳐왔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챔피언이 탄생하고 그 선수를 이어나갈 유망주들도 속속히 나타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할 일이 많은 시점이라고 밝힌 이인숙 회장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올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것이 한국 피겨계의 과제"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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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인숙 (C)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김연아 (C) 엑스포츠뉴스 김혜미 기자, 이규혁 (C) 엑스포츠뉴스 백종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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