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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 뷰] 동유럽 축구를 주목하라 - ① 동유럽의 전설들

기사입력 2009.11.05 22:59 / 기사수정 2009.11.05 22:59

박문수 기자



- '야신'부터 셰브첸코까지…동유럽 축구 전설의 이름

[엑스포츠뉴스=박문수 기자] 세계 축구를 이끄는 두 대륙은 유럽과 남아메리카이다.

양대륙은 남미가 브라질의 5회 우승을 기점으로 아르헨티나, 우루과이가 각각 2회씩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9회를 차지했으며, 유럽이 이탈리아가 4회, 독일이 3회,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1회 우승을 기록하면서 남미와 동률인 9회의 기록을 남겼다.

그렇다면, 유럽에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국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우리에게 유럽의 강호라는 인식을 강하게 남긴 서유럽에 가까운 지형에 위치한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동유럽은 서유럽에 비해 축구 변방에 가까우며, 이들의 전력에 대해서 과소평가하는 시선이 많다. 비록, 1930년 우루과이에서 개최된 이래로 지구촌 최대 축구 축제로 자리 잡은 월드컵에서 단 한 번의 우승 경력도 없지만 레프 야신과 페렌크 푸스카스 등 내로라하는 전설적인 선수들을 배치하며 서유럽과 남미에 대항하는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2006 FIFA 독일 월드컵 이후 서유럽과 남미에 대항하는 하나의 축구 세력으로 성장한 동유럽 축구의 특징은 무엇일까?

우선, 동유럽의 지배자 헝가리의 푸스카스와 '역대 최고의 골키퍼' 레프 야신을 비롯한 동유럽이 낳은 전설적인 선수들에 대해 알아보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적인 선수로서 '마법의 마자르 군단' 1950년대 헝가리 대표팀의 포워드인 페렌크 푸스카스는 한국대표팀이 처음 출전한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9-0이라는 치욕스러운 참패를 가져다준 장본인 이기도 하면서 동시대 유럽축구계에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리며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였다.

제2의 조국인 스페인에서 더욱 명성을 날린 점은 안타깝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그가 기록한 528경기 512골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적 기록은 동유럽 골게터의 계보의 시발점이다. 지난 2006년 알츠하이머병 때문에 향년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푸스카스는 늠름한 드리블과 환상적인 득점력 때문에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었다.

1999년 20세기 러시아(구소련)를 대표한 최고의 체육인상을 수상한 레프 야신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월드컵 최고 수문장에게 수여되는 야신상의 주인공이다.

흑표범 같은 선방으로 러시아의 올림픽 우승과 유로 대회 우승을 이끈 야신은 '브라질의 전설' 펠레와 '아르헨티나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의 이름에서 유래한 상이 국제 대회에서 존재하지 않음을 고려할 때 위대한 업적을 남긴 수문장이다. 오래된 흑백 영상 속에서 야신이 보여준 수준급 선방은 오늘날 골키퍼에게 큰 영감이 되며, 야신상은 모든 골키퍼의 꿈과 희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럼에도, 동유럽 축구는 위기에 처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전설적인 수문장과 골게터의 존재는 그들의 위상을 높였지만 1982년 유벤투스에 이적하며 폴란드의 1982년 스페인 월드컵 3위를 이끈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를 제외한 마땅한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하지 못했다.

1962년 체코가 칠레 월드컵에서 브라질에 덜미를 잡히며 준우승을 차지한 기록과 4위를 차지했던 구 유고연방의 선전이 있었지만 이 기록은 야신의 소련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4위를 기록하기 이전에 펼쳐진 대회라는 점에서 유효하지 못하다. 1974년 서독 월드컵과 1982년 스페인 대회에서 폴란드가 3위를 차지하며 체면치레는 성공했지만 서유럽 국가들이 순항한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의 행보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동유럽 축구는 1980년대 중후반, 서유럽 클럽들의 독무대였던 現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1985-86시즌, 루마니아의 FC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가 우승을 차지하며 파장을 일으킨다.

세비야의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슈테아우아는 크루이프 체제의 바르셀로나를 승부차기 끝에 꺾으며 31번의 시즌 동안 이어진 동유럽 클럽 無 우승 행진에 종지부를 찍었다. 1990-91시즌에는 現 세르비아의 레드스타 베오그라드가 프랑스의 올림피크 마르세유를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며 동유럽 축구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두 클럽의 유럽 대회 제패는 동유럽 축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슈테아우아 출신 '발칸의 마라도나' 게오르게 하지는 루마니아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16강과 94 미국 월드컵 8강, 98 프랑스 월드컵 16강 진출에 결정적인 이바지를 했으며 125경기에 그가 넣은 35골의 기록은 여전히 유효하다.

'엘 클라시코 더비 주인공'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에 모두 선수 생활을 보낸 특이한 이력을 지닌 그는 선수 생활 말미인 2000년에는 '터키의 명문' 갈라타사라이가 아스날을 꺾고 UEFA컵 우승을 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몬테네그로 연방 출신인 사비체비치는 밀란의 전설이다. 1991년 레드 스타가 유럽 챔피언에 오를 당시, 발롱드르 2위에 오른 경력이 있으며 반 바스텐의 빈자리를 완전히 메우며 밀란의 전설로 우뚝 섰다. 밀란에서 7번의 트로피를 손에 거머쥔 그는 현재는 몬테네그로 축구 협회장 직을 맡으며 동유럽 축구 발전에 애를 쓰고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불가리아를 4위에 올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도 동유럽 축구 부흥에 큰 이바지를 했다. 그 해, 발롱드르를 수상한 스토이치코프는 바르셀로나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를 통해 전설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하며 요한 크루이프의 드림팀 구성원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스트라이커와 윙 어를 넘나들며 발굴의 실력을 보여준 그는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에 합류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로부터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선수'라는 칭호를 얻었다.

20세기 중반, 체코의 전성기를 이끈 파벨 네드베트와 우크라이나의 살아있는 전설 안드리 셰브첸코도 동유럽 축구 발전에 한 몫을 차지했다.

1996년 유로 대회에서 조국 체코의 준우승을 이끌며 주목을 받은 네드베트는 두 개의 심장을 지닌 강철 체력이란 별명에 걸맞은 뛰어난 드리블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스피드, 정확한 패스능력, 과감한 중거리 슛 능력과 팀에 대한 애정, 카리스마를 한 번에 겸비한 만능이었다.

'체코의 명문' 스파르타 프라하를 3번의 리그 우승으로 이끈 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SS 라치오 행을 선택한 네드베트는 세리에 A에서 발굴의 능력을 선사하며 자신의 진가를 재입증한다.

웬만한 포워드에 버금가는 득점력은 1998-99시즌 라치오가 컵 위너스컵(국내 리그 컵 대회 우승팀이 참가한 대회지만 지금은 라치오의 우승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결승전인 마요르카전에서 결승 골에 성공. 소속팀의 우승에 견인차 구실을 하며 '체코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1999-2000시즌 라치오의 리그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끌며 고군분투한 네드베트는 지단의 대체 자로 유벤투스에 입성. 축구 인생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공격의 선봉장으로 능수능란하게 지휘자 역할을 맡은 네드베트는 월드컵과 적은 인연 때문에 유로 96 이후, 마땅한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칼치오폴리 때문에 강등된 유벤투스에 남아 끝까지 최선을 보여준 점에서 21세기 최고의 체코 선수로 부상했다.

1997년 11월 5일 '바르셀로나의 홈 구장' 누 캄프는 디나모 키예프 소속의 어린 포워드 안드리 세브첸코의 독무대였다. 그는 난적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 호나우두를 떠난 보낸 아픔에 잠겨있는 바르셀로나 팬의 심금을 울렸다.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던 우크라이나 출신의 셰브첸코는 이 날 이후, 대스타로서 발돋움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동시에 제압하며 팀의 4강 진출을 이끈 세브첸코는 우크라이나 올해의 선수로 뽑히며 전성기에 돌입. AC 밀란에 입성하며 본격적인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밀란에 입단한 세브첸코는 구소련 출신의 선수들이 서유럽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며 고향을 떠났음에도 홀로 진가를 발휘. 데뷔 시즌에 24골로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하며 밀란의 간판스타로 성장하게 된다.

동구의 반 바스텐, 백색 호나우두라는 애칭을 얻으며 21세기 4대 포워드 대열에 합류한 셰브첸코는 포워드가 갖춘 모든 재능을 지녔다는 점에서 무결점 스트라이커로 불렸다. 비록, 첼시 이후 신체적 능력에서 하락한 모습을 보여주며 누리꾼들의 조롱과 함께 '원소속팀' 디나모 키예프로 돌아갔지만 그가 보여줬던 화려한 퍼포먼스는 아직도 팬들 뇌리 속에 남아있다.

[관련기사] ▶ 동유럽, 더이상 축구의 변방이 아니다

☞  [풋볼 뷰] 동유럽 축구를 주목하라 - ② 동유럽의 현재와 미래

[사진=디나모 키예프에서 자신의 축구 인생을 마감 중인 '밀란의 전설' 안드리 셰브첸코 ⓒ 밀란뉴스 공식 홈페이지 캡쳐]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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