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5-1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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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사담] 추성훈과 데니스강, 엇갈렸던 같은 길

기사입력 2009.07.21 03:52 / 기사수정 2009.07.21 03:52

남기엽 기자

[남기엽의 격투사담] 추성훈과 데니스강, 엇갈렸던 같은 길

모든 분야가 그렇듯, 격투기에도 라이벌이 있다. 그것도 진한 사연을 벗하는.

전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포레스트 그리핀과 TUF출신 파이터 스테판 보너도 그런 관계였다. 파이터들이 합숙하며 서로 싸워 결국 한 명만이 살아남는 서바이벌 시리즈 'TUF'1에서 이 둘은 각각 '리델' '커투어'팀으로 맞붙어 승부를 겨뤘다. 치열한 명승부를 벌인 끝에 그리핀이 승리를 가져가며 TUF 챔프에 오른다.

그리고 둘의 명암은 여기서부터 갈린다.

이 시합은 두고두고 '진정한 진흙탕 싸움', 'TUF 최고의 명승부'라는 수식어를 달며 명경기로 팬들에게 회자된다. 그리핀의 승리로 끝났지만 격투기 포럼에는 보너가 이겼다는 의견이 끊이지 않았고 그렇게 승부는 한쪽으로 갈리었지만 승부에 대한 평가는 양쪽 모두에게 비슷하게 갈렸다. 그 후 그리핀은 쇼군을 물리치고 한때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지만 보너는 그리핀과의 리벤지 매치에서 다시 패하고 최근 조 존스, 콜먼에게마저 패해 입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두 미국인 파이터의 아슬아슬했던 백지장 한 장 차이는 지금 시점, 결국 루비콘 강이 되었다.

추성훈과 데니스강은 둘 모두 미들급(-84kg) 파이터다. 데니스 강은 일본 이벤트인 'PRIDE' 그랑프리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추성훈은 HERO'S에서 챔피언에 올랐다.

둘 모두 현재 가장 인기있는 한국인 파이터이다. 시작은 데니스 강이 빨랐다. 그는 일찍이 격투기에 입문해 국내 이벤트인 'SPRIT-MC'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고 당시

메이저 이벤트 PRIDE에 진출해 무릴로 닌자, 아마르 슬로예프, 고노 아키히로를 차례로 연파했다.

당시 최고의 무대라 일컬어지던 PRIDE에서 데니스강이 그랑프리 결승전이 올랐고 태극기가 날린 것만으로 감격해 하는 국내 팬들도 있었다. 비록 미사키 카즈오에게 아쉬운 판정패를 당했지만 손부상을 안고 싸운 그에게 꾸중하는 이는 없었다.

추성훈의 시작은 이보다는 좀 늦었다. 2004년 연말 이벤트 '다이나마이트'에서 전 복싱 챔피언 프랑소와 보타를 제압한 것을 시작으로 다음해 제롬 르 밴너에게 맞섰지만 1라운드 KO를 당하며 유일한 1패를 기록했다. 비록 밴너가 입식을 전문으로 하는 K-1파이터이긴 하지만 체급 차가 상당했다는 데서 추성훈이 좌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후 마이클 라마, 나카타 카즈히코, 김태영을 연파하며 멜빈 마누프를 꺾고 추성훈은 HERO'S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비록 HERO'S가 PRIDE보다는 다소 처진 이벤트이긴 했지만 그래도 일본 무대에서 한국 혈통을 가진 파이터가 우승했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 후 연말 이벤트에서 가진 사쿠라바와의 일전에서 추성훈은 보란 듯이 승리하지만 경기 전 크림을 도포하여 징계를 받고 경기는 노 컨테스트 처리된다. 일본에서 외국인 파이터의 인기가 많다 한들 효도르, 크로캅, 반달레이 실바를 다 합쳐도 사쿠라바 하나를 못 따라간다. 그만큼

상징인 사쿠라바에게 '무려' 크림을 바르고 시합에 나선 추성훈은 그 때부터 '악마'가 되었다. 그리고 2007 K-1 HERO'S 무대에서 데니스강과 추성훈이 만났다. 당초 데니스강은 다른 선수와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추성훈이 강력하게 데니스강을 희망했다. 사실 당시의 데니스강은 여전히 국내 이벤트의 챔피언이었고 일본내 동체급 최강자인 미사키 카즈오에게 스플릿 판정패를 당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반면 추성훈은 챔피언에 오르긴 했지만 사쿠라바와의 시합에서 명예를 실추 당했으며 그 때까지 추성훈이 이긴 파이터들의 면면은 솔직히 말해 이렇다할 급의 선수들은 아니었다.

따라서 추성훈에게는 잃을 게 없는 경기였고 팬들의 다수는 '구관' 데니스강의 승리를 점쳤다.



▲ 결과는?

이 경기에서 추성훈에게 데니스강은 충격적인 KO패를 당한다. 링코너에 널브러진 데니스강의 눈빛은 청연했으며 실망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그는 퇴장하며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젠틀함을 끝까지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젠틀함은 현장에 있던 몇몇 관계자에게만 보인 것일 뿐, 진짜 스포트라이트는 그 넓은 경기장 안에 '한국 최고!'라고 외친 추성훈에게 가 있었다. 추성훈은 그때부터 거칠 것이 없었다.

연말 이벤트에서 강적 미사키 카즈오를 만나 패하고 '꾸중'을 듣지만 그게 기폭제가 되어 국내에서의 인기는 그야말로 불이 붙었다. 나중에 카즈오의 공격이 반칙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합은 무효처리 되었고 추성훈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광고를 찍고 노래까지 녹음하며 절정기를 달린다. 당시 경기 직후 데니스강은 "추성훈은 강했다"며 "더욱 노력하겠다"고 여전히 젠틀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뒷날 다시 회고한다.

"사실, 그 때 경기 도중 눈을 찔렸다. 물론 이것이 패배의 변명이 될 수는 없었기에 당시에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솔직히 말해 당시까지 내게 향해 있던 국내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모두 그(추성훈)가 가져갔다는 느낌이었다. 반드시 노력해서 되찾아오고 싶다"

절치부심하며 새롭게 설립된 'DREAM'에 데니스강은 출전했다. 하지만, 게가드 무사시라는 복병을 만나 또다시 패했다. 지금에야 게가드 무사시는 해당 체급에서 손꼽히는 톱파이터지만 당시만 해도 데니스강에게는 언더독이라는 이미자가 강했다. 더군다나 경기 양상도 데니스강이 유리하게 이끌어가던 도중 무리하게 가드 안쪽을 파고들어 패했다는 인상이었다. 그 때부터 데니스강에게는 '냉정한 경기 운영이 부족하다' '뒷심이 밀린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 현장에 있던 기자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추성훈, "한국 최고!"  

반면 추성훈은 여전히 운동을 병행하며 오락 프로에도 출연하고 광고도 찍는 행복한 생활을 만끽했다. 

그 과정에서 강하지 않은 일본인 파이터들을 꺾었다. 그즈음 데니스강은 'Raw Combat'에서 왕년의 하드펀처 마빈 이스트먼을 KO로 꺾고 UFC에 입성한다. 그가 당시 했던 "파이터는 운동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인터뷰는 많은 팬에게 "추성훈을 두고 한 말이다", "최홍만에게 일침을 가하는 소리"라며 저마다 해석을 풀어냈다.

데니스강의 UFC 데뷔전 상대는 속된 말로 미들카터(수문장 정도의 역할을 하는 레벨)급의 앨런 벨쳐.승리를 다짐하고 또 다짐한 데니스강은 초반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과 적극적인 테익다운을 통한 포인트 싸움으로 벨쳐를 압도해갔다.

하지만, 포인트로 앞서는 경기를 펼쳤음에도 체력이 달리는 모습을 보이며 2라운드 막판에 길로틴 초크를 당해 통한의 패배를 당해야 했다. 이윽고 추성훈이 UFC에 입성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데니스강은 다음 시합에서는 포우파 포캄을 상대로 판정승을 따낸다.

결국 'DREAM', '전극' 등과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던 추성훈의 UFC 입성이 확정, 발표되고 그의 데뷔전 상대는 앨런 벨쳐로 결정된다. 국내팬들의 관심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추성훈의 경기력이 메이저 무대에서는 어떻게 통할까의 호기심과 더불어 앨런 벨처를 통해 그 둘의 경기력을 가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추성훈은 경건하게 등장하여 야성스럽게 시합에 임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데니스강과의 시합할 때처럼 거침없는 전진 또 전진이었으며 벨쳐를 시종일관 압박했다. 사실 벨쳐는 압박에 능한 파이터이다. 데니스강과의 시합에서도 포인트에 있어 명백히 밀렸음에도 자신감을 갖고 도발을 하며 데니스강을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시합 양상은 데니스강이 이기고 있었음에도 분위기, 소위 주도권은 벨쳐가 갖고 갔다. 결국, 이것은 벨쳐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추성훈 전에서 벨쳐는 달랐다. 추성훈이 초반부터 타격을 몰아쳤지만 그리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벨쳐의 얼굴에 여유는 없었다. 그는 데니스강과의 시합에서와는 달리 끌려다녔다. 추성훈은 시합 도중 로블로를 가격당해 일정시간 쉬어야 했지만 '5 minutes'를 '5 seconds'로 알아듣고 5초만에 시합을 재개했다. 그리고 다시 비장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벨쳐를 몰아쳤다.

분명 경험 면에서 보나, 기술 면에서 보나 필자는 데니스강의 스킬을 더욱 높이 평가한다. 그의 게임 플랜은 많은 경우 들어맞았으며 그 경우 상대는 보통 피를 흘려야 했거나 큰 데미지를 입어야만 했다.

하지만, 데니스강은 자신의 게임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당혹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군다나 눈을 찔렸다거나, 어느 부위에 부상을 입었을 때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추성훈은 기본적으로 '스포츠맨'보다는 '파이터'에 가깝다. 그가 무릎팍도사에 나와 미사키 카즈오와 싸울 수 있다면 쫓아가서라도 싸우고 싶다고 한 말은 허언은 아니다. 추성훈은 멜빈 마누프 전에서도 타격전이 풀리지 않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테익다운 당할 때 몸을 돌려 관절기를 성공시켰다. 데니스강 전에서도 가까이서 지켜본 기자의 눈에 추성훈은 이기기 위해 나온 사람이 아니라 살기 위해 나온 사람 같았다.

팬들에게 친절하다고 알려져 있는 그이지만 시합 전날의 추성훈은 속된 말로 '까칠'하다.  '스포츠맨' '파이터' 어느 하나가 옳다고 볼 수는 없다. 맞는 전략도 아니다. 둘의 절박함도 나름대로 저마다

비슷한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추성훈이 데니스강에게 한발 앞서 나간 폼새다. 맞대결에서도 이겼고 간접 대결에서도 어찌되었건 이겼으니. 그 한 끗발 차이가 지금의 이 둘을 만들었다고 예단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데니스강의 스킬은 추성훈에게 뒤질 이유가 전혀 없다. 결국, 극복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 둘의 재대결이 이루어진다면 엄청난 관심과 이해가 걸린 빅 딜이 될 것이다. 둘 모두 서로를 밟고 UFC에서의 입지를 공고화할 수 있는 기회이며 한국에서의 진짜 슈퍼코리안을 정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광고업계는 실적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 승부는 광고에도 반드시 영향이 있다)

아울러 이 둘의 미래가 또 기대되는 이유는 치열한 전장인 미들급에서의 '생존 전략'이다.

미들급이 비록 일찍이 앤더슨 실바가 다 잡아버린 덕택에 타 체급에 비해 덜 치열해 보이지만 댄 핸더슨, 리치 프랭클린, 탈레스 레이테스, 반달레이 실바 등 강자는 수두룩하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앤더슨 실바를 맞아 데니스 강이 어떤 게임 플랜을 들고 나올지, 특히 추성훈의 그 살기어린 눈빛을 목전에 두고 앤더슨 실바가

또 다시 당랑권을 시전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두 명의 행보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기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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