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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e스토리] '스코어' 고동빈, 그가 써내려간 5년의 이야기

기사입력 2016.02.07 00:02 / 기사수정 2016.02.07 00:31

박상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박상진 기자] 2016년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가 개막하기 전 미디어데이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인상적인 질문을 들었다. 방송 오프닝에 왜 특정 팀의 특정 선수들만 나오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OGN은 이미 많은 피드백이 있었고, 이번 시즌은 다르게 만들겠다고 답변했다.

롤챔스 개막 후 Lorde의 Every Body Wants to Rule the World를 배경으로 오프닝이 공개됐다. 확실히 예전과는 달리 모든 팀의 대표 선수가 영상에 등장했고, 말미에는 이번 시즌 롤챔스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매드라이프’ 홍민기와 ‘스코어’ 고동빈이 있었다.

이 두 명은 2011년 한국에 리그 오브 레전드가 정식으로 소개된 후 지금까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고 있는 선수다. 그중 ‘스코어’ 고동빈은 지금은 사라진 스타테일에서 데뷔해 이후 kt 롤스터에 입단하여 탑 라이너와 원거리 딜러, 그리고 정글러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계속 활약 중이다.

한국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 씬에서 두 명 남은 원년 멤버 중 한 명인 ‘스코어’ 고동빈. 과연 고동빈은 5년 동안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갔을까.



울산 출신인 거로 알고 있는데,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는다.

20살 되던 해 겨울에 서울에 올라왔으니 서울 생활도 벌써 5년째다. 그리고 티비 속 목소리를 따라 하다 보니 사투리를 잘 안 쓰게 되더라. 하지만 고향 친구들과 있으면 자연스레 사투리를 쓴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그리고 리그 오브 레전드는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

아시는 팬들도 있겠지만, 카오스라는 AOS 게임을 했었다. 그 외에도 건즈라던가, 겟엠프드라는 게임도 했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한국에 베타를 하기 얼마 전 처음 접했다. 같이 카오스를 하던 사람들이 전부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러 갔고, 그래서 나도 같이 하게 됐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사람보다 늦게 시작한 편인데, 30레벨도 되기 전에 ‘류’ 류상욱과 ‘마파’ 원상연이 팀을 꾸리는데 같이 해보자는 제의를 했다. 지금 SK텔레콤 T1 코치로있는 (김)정균이 형이 준비하던 스타테일 팀이었다.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프로게이머라면 당연히 스타크래프트를 해야 하는 거였고, 카오스를 하고 있던 나에게는 꿈만 같던 이야기였다. 친형이 컴퓨터를 좋아해서 동생인 나도 자연스레 컴퓨터를 많이 접했고, 막연히 컴퓨터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던 중 정균이 형이 상욱와 상연이를 통해 준 제의를 승낙하고 스타테일 팀에 들어갔다.



스타테일에서 아이디는 ‘스코어’가 아닌 ‘조커'였다. 그리고 포지션도 지금과 다른 탑 라이너였는데, 이유가 있나.

지금 사용하는 닉네임인 ‘스코어’는 카오스 시절 사용했었다. 스타테일에 들어가서 스코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려고 하니 어감이 이상했다. 뭔가 아닌 거 같았다(웃음). 여러 닉네임을 써봤는데, 당시 조커라는 캐릭터를 좋아해서 닉네임을 조커라고 짓게 됐다.

내가 팀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지금 사용하는 EU스타일의 개념이 없었다. 굳이 정하자면 처음에도 정글러였는데, 정균이 형이 정글러를 하고 싶다고 했고, 그래서 내가 남는 탑으로 갔다.

스타테일 시절을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힘든 시기를 보낸 거 같다. 일단 따로 월급이 없었다. 그리고 성적도 잘 안 나왔다. 팀을 모은 정균이 형도 무보수였는데, 예전에 모아둔 돈으로 우리에게 저녁을 자주 사줬다. 팀에서 저녁을 잘 못 챙겨 먹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 시절 많이 도와줬던 정균이 형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처음이라 다들 재미있게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다. 

주위에서 그렇게 힘든데 왜 계속 프로게이머를 하냐는 이야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하자면, 성적은 안나왔지만 내 실력에 자신있었다. 그리고 일단 시작한 일이니 우승이라는 끝은 보고 떠나고 싶었다. 아직 롤챔스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웃음). 그 생각으로 버틴 거 같다.

스타테일에서 kt 롤스터로 어떻게 이적하게 됐나.

대회에서 두 번 정도 떨어지니 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리고 다들 집안의 반대도 심했다. 보수가 없으니 생활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단 다들 스타테일을 나갔다. 어느 날 스타테일에서 같이 생활하던 ‘비타민’ 이형준 형에게 연락이 왔다. 팀에서 나온 후 먼저 kt 롤스터에 입단했었던 형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해서 kt 롤스터가 2팀을 만들 생각이 있는지 한 번 물어봐 달라고 했는데, 이야기가 잘 풀려 kt 롤스터 2팀에 입단하게 됐다. 

당시 kt 롤스터 1팀은 이미 멤버가 완성되어 있었지만 2팀은 계획이 아직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간다고 하니 2팀을 만들어서 받아줬다. 아직도 우리를 받아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거기다 2팀이 연습하는 방은 원래 이지훈 감독님 방이었다. 계획도 없던 우리가 입단하자 감독님이 방도 빼주셨다. 고맙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2팀 체제에서는 원거리 딜러로 활동했다. 포지션 변경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기 전 플레이했던 카오스에서 올라운더로 활동했다. 랜덤 픽도 자주 했을 정도로 어디를 가든 잘 할 자신이 있었다. kt 롤스터에 들어간 당시 원거리 딜러를 구하기 힘들었다. 구해도 팀에서 원하는 수준의 선수를 구하기 힘들 거 같아서 내가 원거리 딜러를 하겠다고 나섰다. 스타테일을 나와서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해도 원거리 딜러만 했다. 탑을 가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는데, 원거리 딜러는 재미있더라.

원거리 딜러로 내 스타일은 오래 살면서 딜을 넣는 방식이었다. 죽지 않고 꾸준하게 딜을 넣을 자신이 있었고, 내 특징이자 장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건 성적이 말해준다. 내가 그렇게 했고 KDA도 잘 나왔지만, 당시 팀 성적이 나쁘니 내 스타일을 비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내 플레이는 좋았던 거 같다.

kt 롤스터 B팀 시절은 어땠나. 많은 일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시기였다. 꾸준히 상위권에 있었지만 우승을 하지는 못했다. 2013년 롤챔스 서머 준우승이 국내 롤챔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던 시기지만 우리에게 가장 슬픈 기억이 남는 순간이었다. 정말 파죽지세로 결승에 올라 결승 2세트까지 승리를 거뒀다. 

한 세트만 이기면 우승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비가 그쳤다. 그러며 우리 마음이 메마르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자 kt 롤스터 b팀도 힘을 잃었고, 연달아 3패를 하며 준우승을 하고 말았다. 5세트 제드 대 제드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해외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재미있는 추억이 많았다.

2015년 1팀 체제로 바뀌며 또다시 정글러로 포지션을 바꿨다. 무슨 이유였나.

1팀 체제로 바뀌며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와중에 정글러 포지션이 공석으로 남았다. 그리고 나도 정글러가 다시 하고 싶었다. 원거리 딜러는 경기 중반부와 후반부 게임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포지션이다. 하지만 초중반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라인전을 해야 하니 로밍을 갈 수도 없다. 답답했다. 내 손으로 플레이를 만들고 싶었다.

사실 2014년에도 한 번 포지션 변경 요청을 했는데 상황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상황이 되자 다시 요청을 했고, 정글러로 시즌을 보내게 됐다. 하지만 kt 스프링 징크스와 새로 팀 워크를 맞춰야 하는 두 가지 이유로 2015년 스프링은 만족하지 못할 성적을 냈다. 



2015 롤챔스 섬머에서는 준우승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냈는데.

스프링 후반부에 팀원끼리 다시 호흡이 맞았다. 그리고 ‘피카부’ 이종범이 합류하며 팀이 더 안정됐다. 오더를 내가 혼자 하는데, 종범이가 바텀 쪽 오더를 커버하며 잘 풀어나갔다. 팀 내 시너지가 생기자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또 SK텔레콤 T1에 막혔다. 결승 전에는 정말 SK텔레콤 T1을 꺾고 싶어 준비를 열심히 했다. 나에게 많은 걸 빼앗아 간 팀이라 지기 싫었는데 정말 잘하더라. 지고 나서 허탈하기는 했는데 억울하다는 생각조차 안 들 정도로 상대가 잘 했다.

그래도 선발전을 통해 팀의 숙원인 롤드컵 진출을 이뤄냈다. 진에어의 기세가 정말 무서웠다.

SK텔레콤 T1에게 지긴 했어도 선발전 마지막 라운드에 바로 진출하며 시간을 얻었다. 이전에는 매번 하위 라운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힘이 빠졌는데 이번에는 반대 입장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우리가 자신 있어 하는 진에어 그린윙스였다. CJ 엔투스가 올라왔으면 힘든 경기가 될 뻔했는데, 진에어가 올라와서 처음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했다. 

진출이 결정되자 정말 기뻤다. 그러며 kt 롤스터에서 예전에 같이 했던 팀원들 생각이 났다. 다들 그렇게 롤드컵을 가보고 싶어 했는데, 이제서야 가게 되어 아쉬웠다. 그래도 지금 동료들과 같이 롤드컵에 가게 되어 정말 기뻤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예전 kt 롤스터 동료들도 대부분 알아서 롤드컵에 다 왔더라. 그냥 걱정하지 말고 좋아할걸. 하지만 같은 팀으로 가지 못한 부분은 아쉬웠다.



첫 롤드컵인데, 16강 대진이 만만찮았다.

매번 롤드컵을 가지 못하고 탈락해서 따로 챙겨보지도 않았다. 그냥 부럽겠다는 생각이었다. 조 추첨하는 거도 부러웠다. 근데 그 부러웠던 조 추첨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야말로 힘든 팀만 걸렸다. 숙소에 있었던 ‘카카오’ 이병권은 kt 롤스터를 만나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하더라. 우리도 iG를 만나고 싶었다.

해외 대회를 두 번인가 나가봤는데, 역시 롤드컵 분위기는 다르더라. 그리고 죽음의 조라고 했지만 막상 붙어보니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너프는 당했지만 그라가스가 손에 잘 맞았다. 자신감 있게 16강을 1위로 뚫고 올라갔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8강에서 쿠 타이거즈를 만났다.

조가 발표되고 같은 자리에 있는 ‘호진’ 이호진과 눈이 맞았다. 그리고 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망했구나’. 쿠 타이거즈가 미웠다. 왜 플래시 울브즈에게 진 거죠. 왜죠?

그리고 8강에서 탈락했다. 패배는 팀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쿠 타이거즈가 우리를 이기며 각성한 거 같았다. 2013년 SK텔레콤 T1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이기고 각성했다. 쿠 타이거즈도 나를 짓밟고 각성했다. 내가 각성제가 된 거 같은 기분이었다. 8강 경기때 목감기가 걸려 콜록대며 게임을 했고, 지고 나서 너무 속상해서 목감기가 심한 와중에도 열심히 술을 마신 거 같다. 아쉬움이 남는 첫 롤드컵이었다.



선수 교체를 통해 2016년에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팀원들이 떠나는 건 항상 아쉽다. 하지만 다들 사정이 있고, 그래서 각자 갈 길을 간다. 계속 같이 지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하지만 남아있는 선수들과 새로 온 선수들이 잘 뭉쳐서 올 시즌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다. 작년 이맘때와는 다른 분위기다. 다들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달까. 작년에 부족한 부분이었다.

해가 지나면서 계속 기량이 상승하고 있는데, 보통 반대가 정상이 아닌가. 비결이 궁금하다.

딱히 특별한 비결은 없다. 연습시간을 잘 지키고 집중할 뿐이다. 아직은 계속 실력이 늘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며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게임에 집중을 못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우승을 할 때까지는 게임에 계속 집중하려 한다.

올해 목표가 있다면.

팀의 목표는 당연히 롤드컵 우승이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목표는 뱃살을 빼는 거다. 뱃살… 상당히 많다. 다 없애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며 팬들에게 인사 부탁한다.

설날 즈음해서 인터뷰가 나갈 텐데, 팬 여러분도 명절에는 가능하시다면 꼭 집 가셔서 연휴를 보내셨으면 좋겠다. 사정이 있으셔서 못 가시는 분들도 설에는 행복하게 보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제나 열심히 노력할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vallen@xportsnews.com



박상진 기자 vallen@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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