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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한국 쇼트트랙의 전설, 김기훈을 말하다

기사입력 2010.01.30 11:59 / 기사수정 2010.01.30 11:59

[엑스포츠뉴스=김지한 기자] 한국이 동계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것은 지난 1948년 생모리츠 대회 때부터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 경쟁에 뛰어든 것은 1992년 알베르빌 대회 때부터였다. 이후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등 빙상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 한국 동계스포츠는 총 4번에 걸쳐 종합 10위권에 진입하는 위업을 달성해내며 국제적인 위상을 알려 왔다.

그 시초는 바로 사상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김기훈 현 남자대표팀 코치였다. 선수로서 통산 올림픽 3개의 금메달을 따냈던 김기훈은 16년이 지난 2010년, 지도자로서 새로운 신화 창조를 꿈꾸고 있다.

▲"이번 올림픽 기대해주세요" 쇼트트랙 국가 대표팀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한국 쇼트트랙은 '김기훈'에서 시작됐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계보는 김기훈에서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라이벌' 이준호와 함께 한국 쇼트트랙 1세대로서 선구자 역할을 해냈던 김기훈은 쇼트트랙 입문 3년 만에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당시에는 시범 종목)을 따내는 등 뛰어난 자기 노력으로 세계 정상에 선 영웅이었다.

원래 김기훈은 쇼트트랙 입문 전까지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했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해 주로 장거리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김기훈은 국가대표보다는 재미삼아 타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1984년 국내에 도입돼 막 태동하려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 코치의 권유로 참가하게 됐다. 그냥 한 번 나가보자는 마음에 뛰었지만 결과는 국가대표 선발. 이때부터 김기훈의 스케이트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수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데에는 타고난 신체 조건과 재능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기훈은 그 반대였다. 체육과학연구원에서 체력 테스트를 받은 결과, '보통'으로 나왔을 만큼 자질만 놓고 보면 그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뛰어난 자기 관리와 굳은 의지를 바탕으로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면서 세계 최고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캘거리 동계올림픽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부상 시련 딛고 세계 최고로 거듭난 오뚝이

1989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3관왕, 세계선수권 1000m 금메달 등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김기훈에게 뜻하지 않은 위기가 찾아왔다.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아픔을 딛고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에 잇따라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내기는 했지만 이대로 방치할 수 없겠다 싶은 마음에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아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타고난 정신력, 승부욕을 바탕으로 남들보다 훨씬 빨리 재활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의 독무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는 쇼트트랙이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남자 개인 1000m, 5000m 계주가 치러졌다. 이 대회에서 김기훈은 이준호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내는 데 성공하며,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선수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새겼다. 이어 5000m 계주에서도 뛰어난 팀플레이, 빼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라이벌 국가들을 모두 물리치며 금메달을 따내는데 성공, 대회 2관왕까지 차지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기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어 미국 덴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김기훈은 자신의 독무대를 펼치며 사상 처음으로 5관왕 전관왕 달성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해냈다.

전 종목에 걸쳐 예선부터 결선까지 모두 1위를 차지할 만큼 깔끔한 경기력을 보였던 김기훈의 퍼펙트 우승은 '덴버의 연인'이라는 찬사까지 받으며 '위대한 쇼트트랙 선수'로 거듭났다. 이후 기량이 쇠퇴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2년 뒤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도 남자 1000m 금메달을 따내는 데 성공하며 올림픽 2연패 달성이라는 성과도 냈다.

쇼트트랙 주법의 혁신, '호리병 주법'의 창시자

김기훈은 올림픽, 세계선수권에서 낸 성과도 대단했지만 그만이 개발한 독특한 주법으로 쇼트트랙 역사의 새 지평을 연 것이 무엇보다 인정받을 만한 성과였다. 바로 호리병 주법이 그것이다.

보통은 직선 주로에서 바깥쪽으로 추월해 스케이팅을 한다. 하지만, 김기훈은 인코스로 상대를 따돌릴 주법을 생각해냈다. 직선 주로에서 안쪽으로 파고들다가 나오면서 다시 트랙을 끼고 도는, 당시 쇼트트랙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주로를 보면 호리병 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붙인 '호리병 주법'은 이후 쇼트트랙 주법의 정석으로 사용됐다.

이후에도 새로운 기술을 창조해내며, 세계 쇼트트랙계에 '가장 창조적인 선수'로 이름이 난 김기훈은 끊임없이 최고를 지키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며 최고 자리를 지켰다.

공부하는 지도자, 이제는 지도자로 새 신화 쏠 준비한다

은퇴 이후에도 쇼트트랙에 애착을 가지면서 더불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던 김기훈은 지난 2007년, 울산과학대 교수가 돼 후진 양성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해, 남자대표팀 코치를 맡아 16년 만에 지도자로서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된다.

그가 맡은 남자팀을 두고 많은 사람은 '에이스' 안현수가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하고, 경험이 많이 없는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서 불안하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김기훈은 이러한 우려를 정면 돌파하며, 모든 선수들의 정상급 기량 향상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남자팀은 선수 전원이 메달 후보로 거론될 만큼 세계 최강의 전력을 갖추면서 내심 올림픽 사상 첫 전종목 석권도 노리고 있다.

어려운 꿈일 수도 있지만 선수 시절,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낸 김기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사상 첫 동계올림픽 한국인 금메달리스트로서 이제는 후배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낼 김기훈 코치의 도전은 이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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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기훈 남자대표팀 코치  (C) 엑스포츠뉴스 김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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