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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엑스] 디자이너 조명희, 가방 속에 '은화오환'을 담다

기사입력 2017.03.24 10:41 / 기사수정 2017.03.29 19:35


[엑스포츠뉴스 스타일엑스 서재경 에디터] 기존의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단어를 고르고 골라 표현해 봐도 아쉬움이 남을 때, 이 아름다움에 걸맞는 단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디자이너 조명희는 이런 고민 끝에 자신이 느낀 아름다움을 딱 맞춰 표현한 단어를 만들었다. 그의 전시회 타이틀인 '은화오환'은 이렇게 탄생했다. 한국적인 소재인 자개와 옻칠을 활용해 은은하고, 화려하며, 오묘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담은 가방들은 비로소 제 이름을 찾았다. 

지난 16일부터 다음달 16일까지 강남구 논현동 갤러리로얄에서 '은화오환' 전시를 진행 중인 조명희를 만났다. 이번 전시에 대한 소개와 작품을 향한 그의 철학을 직접 들어봤다. 


▲ 자개를 활용한 화려한 장식과 기와 모양의 잠금 장치로 포인트를 준 미니백

Q. 이번 전시에 대해 소개해 달라.

"이번 전시는 '은화오환(隱·華·奧·幻)'이란 타이틀로 은은하고 화려하면서도 오묘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담고자 했다. 자개의 빛과, 옻칠의 색이 화려함 속에서도 은은하게 보일 수 있도록 가방을 디자인해 전시를 기획했다."  

Q. '은화오환'이라는 타이틀을 짓게 된 계기가 있다면?

"내가 너무 좋아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만들기가 어렵지 않나. 고민하던 차에 남자친구가 "그 느낌은 이렇게 표현하는게 어때?"하고 만들어 준거다. 듣고 보니 정말 잘 어울려서 타이틀로 정하게 됐다. 이번에 남자친구의 덕을 좀 봤다. (웃음) 예술이 한 마디로 표현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그걸 한 마디로 표현해주니까 참 좋았다. 


▲ 옻칠로 은은하면서도 기품있는 색감을 살린 가방들

Q. '조명희'하면 소재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개와 옻칠로, 이전에 한지나 천연염색으로 작업을 하기도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국적인 소재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자이너 생활을 하면서 관심이 갔다. 한복이나 민화에서 느낄 수 있는 한국적인 색깔, 은은함과 화려한 기품에 매료되기도 했고. 한국에서 디자이너 생활하며 답답할 때 인사동에 자주 가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유학을 다녀오며 이런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고, 다들 디자이너로서 아이데티티 같은 것이 생기지 않나. 나는 내 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해서 '서양의 것'을 따라가는 것과 이미 '내 것'을 체득하고 있는 것은 다르지 않나. 그래서 한국적인 것을 가장 잘 할 수 있을 거라 결론을 내렸다. 떠나 있다가 한국에 와보니 너무 독특하고 아름다운 나라더라. 한강이 이렇게나 아름답다는 것도 처음 느꼈다. DNA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특별히 '한국을 빛내야 겠어'라며 사명감을 갖고 시작했다기 보단 일을 하다 보니 사명감이 생겼다. 

사실 사람들이 한국적인 것을 전통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그 시대가 말하는 한국적인 것들이 있다.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지 꼭 전통만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람들이 나를 '전통적인 것을 하는 사람' 이렇게만 생각하는데, 다르게도 봐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냥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적이다, 전통적이다' 보다 '오리지널하다, 유니크하다'라는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기도 하고.  

Q. 전통-현대, 서양-동양, 과거-미래 등 어울릴 수 없을 거라고 느껴지는 것들을 작품 속에서 잘 녹여낸 것 같다. 

"이질적인 것들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것은 그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 것을 좋아한다. 뻔히 나온 답이 아니라, 궁금증을 항상 가지는 편이다. 사람들이 하지 않았던 것을 '왜?'라는 의문을 갖고 해보려 한다. 


▲ 만화경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문양이 들어간 가방

Q. 이번 전시의 큰 모티브 중 하나가 유년기인 것 같다. 만화경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만화경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를 또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나.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종이로 된 만화경을 접했다. 이걸 보면서 '이거 내가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던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걸 구입해서 집에 돌아와 자개에도 대보고 하면서 패턴을 세 가지 만들어서 계속 변형을 시켰다. 그래서 총 36가지 패턴이 나왔고, 이걸 작품에 접목시켰다. 돌이켜 보면 만화경이 환상을 다시 꺼내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현실의 아픔, 힘듦보다 따듯함과 추억을 꺼내볼 수 있게. 

Q. 어린 시절엔 어떤 소녀였을지 궁금하다.

"엉뚱했다. 사람들이 추측할 수 없는, 사색을 많이 하는 엉뚱 소녀였던 것 같다. (웃음) 공상 많이 하고.

어린 시절이 정말 작품 세계에 영향을 확실히 주긴 하는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 노랑색이랑 주황색을 참 좋아했다. 엄마가 원피스에 스타킹을 예쁘게 입혀 놓으면 내가 갑자기 사라졌다더라. 찾고 보면 내가 빨간 내복에 노란 슬리퍼를 신고, 옆에 물통을 탁 차고 있었다고. (웃음) 어릴 때부터 내 스타일이나 주장이 강했던 것 같다. 인간적으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지만, 작품에 있어서 만큼은 용감하고 도전적인 편이다.  

Q. 작품 활동을 할 때 전통 장인들과 협업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협업이 들어갔는지?

"보통은 전승공예인들하고 작업을 많이 한다. 통영에서 자개하는 분들, 옻칠하시는 분들과 함께 했다."

Q. 힘든 점은 없었나?

"우리나라가 위대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것들에 대해 방치한다는 생각이 들어 슬프더라. 영국은 역사, 전통은 그대로 보존한다. 학교에 따로 학과도 있을 정도다. 그렇게 똑같이 보존을 해서 역사를 마주했을 때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 거다. 현대는 그걸 통해 계속 발전을 해가는 거고. 근데 우리나라는 전통을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없더라. 전통은 전통, 현대는 현대더라. 서로 인정하지 않고, 협업을 하지 않아서 그런 부분에서 힘든 점이 있었다. 프랑스 르사지 공방처럼 국가적으로 장인 분들을 서포트해줄 수 있어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 조명희가 영국 유학 시절 디자인한 소반 모양의 자개 핸드백

Q. 영국 센트럴 세인트마틴에서의 유학생활 당시 기억을 '소반 모양'의 자개 핸드백 디자인에 담았다고 들었다. 

"영국에 공원이 많지 않나. 거기서 커피나 샌드위치를 먹는데, 그냥 먹으면 잘 넘어지지 않나. 그래서 소반에 놓고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디어를 내 받침이 올라간 가방을 만들었었다. 이게 리버티 백화점에서 잘 팔렸다. (웃음)" 

Q. 리버티 백화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STORI (조명희 디자이너의 브랜드)'가 입점하게 된 일화가 영화 같더라. 

"옛날 얘긴데.  (웃음) 사실 신인 디자이너의 작품을 누가 보겠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바이어들한테 보내봤자 소식도 없고. '내 가방이 이렇게 좋은데 왜 안보는 거야' 그런 생각이 들더라. (웃음) 그래서 무작정 가방을 메고 리버티 백화점을 어슬렁거렸다. 그랬더니 진짜 거기 판매사원이 너무 예쁘다면서 말을 걸더라. 때는 이 때다 싶어서 챙겨갔던 카달로그를 보여줬다. 그 판매사원이 '이 정도 백이면 잘 팔릴 것 같다. 바이어에게 전해주겠다'고 하더라. 근데 설마 바이어에게 진짜 연락이 올 줄 몰랐는데, 그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온거다. 근데 그 당시엔 입점을 하지 못하고, 다음 시즌에 다시 컬렉션을 준비해서 바이어를 찾아갔다. 바이어가 소파에 기대어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내 컬렉션을 보더라. 그렇게 해서 5년 간 리버티 백화점에 입점하게 됐다. (웃음)"

Q.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한국적인 소재가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 전시가 끝나면 6월에 효자동 우물 갤러리에서 지승으로 섬머백 전시를 열 예정이다. 지승에 패턴 접목 시켜서 쇼퍼백을 만드는 등 여름에 어울릴 만한 화려한 디자인을 선보일 계획이다. 지승이 종이를 꼬아서 만든건데, 가죽보다 질기다고 하더라.

그리고 또 하나 생각 중인 것이 자개가 굉장히 깨지기 쉬운 소재 아닌가. 지금 자개를 부드럽게 만들어 실용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소재 연구를 여러 방면으로 다양하게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좋은 소재들이 지금 시대에 맞는 쓰임새를 갖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앞으로 또 도전해보고 싶은 전시가 있다면?

"상업적인 것을 떠나서, 가방이 하나의 오브제로서 영감을 줄 수 있는 전시를 해보고 싶다. 그게 뭐가 될 진 모르겠지만, 생각해보고 있다. (웃음)"

inseoul@xportsnews.com / 사진=스타일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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