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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무비 레시피] '은밀하게 위대하게', 김수현은 왜 '동네 바보'가 됐을까?

기사입력 2013.06.10 04:58 / 기사수정 2013.06.20 18:28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은 '메가톤급'이었다. 개봉 첫날 50만에 가까운 관객들을 끌어 모은 이 영화는 36시간 만에 142만의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개봉 첫 주말 300만을 돌파하는 무서운 기세를 보이고 있다.

요즘 극장을 찾는 이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티켓을 구하고 있다. 올 여름 한국 영화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힌 이 영화는 '웹툰의 블록버스터'로 불린 원작의 힘을 등에 업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은밀하게 위대하게' 웹툰의 고정 독자는 100만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 최정예 스파이가 동네 바보, 록커 지망생 그리고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위장한다는 기발한 설정이 대중들을 매료시켰다. 여기에 세 명의 캐릭터(원류환, 리해랑, 리해진)의 독특한 매력도 이 작품의 흥행 성공에 큰 밑거름이 됐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웹툰이 스크린으로 옮겨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특히 주인공인 원류환 역에 김수현이 캐스팅 됐다는 소식은 웹툰 팬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 희소식으로 들렸다.

이렇듯 '거대한 기대'를 받은 작품은 수많은 관객들을 충족시킬 '큰 그릇'을 완성해야 한다.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소재를 참신한 아이디어로 살려냈다. 남북 분단이라는 거대한 줄기에 자잘한 재미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대중들을 열광시켰다. 이러한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겼기는 점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웹툰의 스토리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지만 엉성한 구성과 영화적 상상력 부재로 완성도 높은 오락 영화는 되지 못했다.

무비 레시피 재료 :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최소한 필요한 그림과 재치 넘치는 대사 그리고 여백을 메우는 내레이션으로 아기자기한 재미를 제공했다. 영화 역시 이러한 원작의 재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웹툰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라갔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영화적 재미'를 살리지 못했다. 우선 웹툰의 내레이션은 간결한 그림으로 구성된 극의 재미에 살을 붙이고 있다. 독자들도 하여금 주인공 원류환의 숨겨진 사연과 두 개의 다른 존재(북한 스파이 원류환, 동네 바보 방동구)로 살아야하는 고충도 내레이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자주 반복되는 내레이션은 극의 흐름을 끊고 있다. 영상 속에서 전개되는 서사로 인해 관객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장면에서도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불필요한 주인공의 내레이션은 영화의 군더더기가 됐고 극의 몰입을 끊는다.

전반부에서 제공한 유머는 나름 관객들을 즐겁게 만든다. 그러나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안정적인 극의 흐름은 무너진다. 원류환이 속한 북한 5446부대의 목표가 불투명해지면서 북한 스파이들의 운명은 벼랑 끝에 몰린다. 원류환의 독백대로 '들개로 태어나 괴물로 길러진 나'는 남한의 초라한 달동네 바보로 위장만하다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사라져야하는 '허무함'을 맞이해야 한다.

이러한 주인공이 겪는 '허무함'을 위로하는 것은 '모성애'다. 원류환이 생활하고 있는 곳은 달동네의 허름한 슈퍼다. 이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아주머니의 보살핌이 그를 변화시킨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초반부는 '휴먼 코미디'가 지배한다.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보 동구는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지만 늘 웃는 표정으로 주민들과 살갑게 지낸다. 하지만 후반부에서는 액션은 물론 첩보전과 배신 등이 순식간에 터진다. 이 지점에 다다라도 왜 원류환이 동네 바보로 위장을 해야 했는지 또한 리해랑이 하필이면 록커 지망생으로 살아야 했는지에 대한 설득력은 조용히 사라진다.

서사의 개연성이 사라진 상황에서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꽃미남 배우들의 현란한 액션과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결말이다. '웃음'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나는 한국 흥행 영화의 공식을 이 영화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초반부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원류환과 슈퍼 아주머니의 관계는 영화 막판에 과대하게 포장되고 있다.

총 66화로 구성된 웹툰은 적어도 서사의 개연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123분짜리 영화는 너무나 많은 것을 정해진 시간 안에 넣으려는 욕심 때문에 놓친 것들이 많았다.



또한 이 영화는 김수현이란 최고의 청춘스타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젊은 여성들에 어필할 수 있는 깨끗한 이미지를 연기한 김수현이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환상을 깨트리는 ‘망가지는 연기’를 시도했다. 그 정점은 비오는 날, 자신이 평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20대 여성 유란 앞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장면이었다.

김수현은 북한 스파이와 달동네 바보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하지만 허술한 스토리라인은 김수현이 연기한 원류환은 물론 리해랑과 리해진의 캐릭터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상업영화는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야기와 지루하지 않은 연출력 그리고 출연 배우의 스타성을 갖추고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이러한 요소 중 '스타 파워'에 가장 의존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영화를 찾는 상당수의 관객들은 10대에서 20대의 젊은 여성들이다. 주연배우들의 팬 층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일반 관객들까지 그 열기가 확산되고 있다.

스토리가 탄탄하고 극의 흐름이 매끄러운 상업영화는 장기 흥행에서도 승승장구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천 만 관객 돌파에 성공한 '왕의 남자'(2005)와 '괴물'(2006) 그리고 '광해-왕이 된 남자'(2012) 등이 있다. 물론 완성도가 그리 높지 못한 '해운대'(2009)도 천 만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경우가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개봉 초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각종 흥행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금의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천 만 관객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여성관객들을 매료시키는 멋진 배우들과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를 받쳐줄 스토리라인이 약한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킬컷]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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